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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지분류기를 돌린 뒤 육인심사를 적법하게 하지 않았다는 개표참관인 진술서
▲ 개표참관인 진술서 투표지분류기를 돌린 뒤 육인심사를 적법하게 하지 않았다는 개표참관인 진술서

종이 투표지를 사용하는 공직선거의 개표는 사람이 해야 한다. 전자개표나 전산조직으로는 공직선거의 개표를 할 수 없다.

선관위가 공직선거 개표 때 사용하는 개표기(투표지분류기)는 개표를 보조하는 기계일 뿐이다. 보조 기계여서 개표의 주된 절차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분류기로 분류한 투표지를 이후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심사를 해야 한다. 심사집계부와 위원검열 단계에서 그 일을 한다.

기자는 지난 2012년 12월 19일 이후 여러 편의 개표 영상을 입수해 검토했다. 6.4 지방선거 개표소를 비롯해 개표참관을 여러 차례 했다. 개표소에서 개표하는 모습은 선관위가 설명하는 것과 상당 부분 다르다(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kubKLQN_Qo&feature=youtu.be).

투표지분류기에서 유효하게 분류되었다는 표는 심사집계부 단계에서 대충 훑어보거나 계수기를 돌리는 것으로 심사를 끝낸다. 분류기로 분류하지 못한 '미분류표'만 육안 심사를 진행한다.

분류기로 분류하지 못한 '미분류표'는 전체의 약 5% 정도 나온다. 그 미분류표 속에서 무효표와 유효표를 가려 분류한 표에 더해 최종 득표수를 확정하는 식으로 개표를 진행한다. 한 투표구의 투표수가 약 2천 장 정도면 미분류표는 100여 장 정도다.

결국 사람이 심사하고 판정하는 건 5% 정도 되는 '미분류표'이고, 기계로 분류한 95% 정도 유효분류표는 규정대로 심사하지 않고 최종 결과로 확정하는 식이다.

수차례 개표하는 장면을 봤지만 심사집계부에서 투표구별 투표수 전부를 육안으로 심사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더욱이 검열위원들이 개표상황표를 공표하기 전에 해야 하는 투표수 검열을 선거법 규정대로 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검열위원들은 1분에 두세 투표구의 투표수를 검열했다며 개표상황표에 도장을 찍어 공표하는 정도로, 투표수 검열을 엉터리로 한다.

집중식 개표를 하는 우리나라에서 분류기를 쓰는 이유는 개표를 신속하게 하기 위함이다.
공직선거에 전자개표를 할 수 있는 법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선관위는 단순히 투표지를 구분하는 용도로 쓰는 분류기는 전자개표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분류기를 돌린 다음에는 사람이 육안 개표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게 되는 것이다.

개표하는 중간 단계에 투표지분류기를 돌린 뒤 그 투표지 전부를 사람이 다시 개표한다면 개표에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지게 된다. 분류기가 오히려 개표를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집중식 개표를 하면서 지역선관위의 약 백여 투표구 개표를 적법한 절차로 서너 시간 내 끝내는 건 불가능하다.

현재와 같은 집중식 개표를 하면서 개표를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은 개표하는 절차를 대폭 생략하는 것뿐이다. 투표지분류기를 돌린 투표지 대부분에 대한 투표지심사와 위원검열을 설렁설렁 하는 것뿐이다. 심사집계부에서는 '미분류표'만을 심사해 기계로 분류한 표에 더한다. 그리고 이어 위원검열은 투표수를 일일이 보지 않고 통과의례 식으로 검열한다.

실제로 18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표를 보면 투표지분류기로 유효하게 분류되었다는 득표수를 이후 심사집계부 단계에서 고친 사례를 보지는 못했다. 개표소 현장에서나 개표영상을 보면 8인으로 구성된 검열위원들이 바구니에 담긴 투표지를 보고 개표상황표에 도장을 찍어 옆 위원에게 넘기는 식으로 개표검열을 한다. 어떤 위원회는 투표지바구니도 보지 않고 개표상황표에 검열위원 도장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날림으로 심사집계나 위원검열을 하는 건 모두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개표를 하는 것이다.

투표지분류기를 사용하면 '바르게 기표된 투표지' 효력 판단을 기계가 하게 되어, 사람이 하는 개표 절차를 기계가 대신한다. 기표를 삐딱하게 해야만 '미분류표'로 빠져 사람이 개표하게 된다는 뜻이다.

개표란 투표지에 기표 상태를 보고 후보자별로 구분하는 일이다. 투표지의 기표를 보고 판단하는 일을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투표지분류기를 사용하면, 그 기계로 분류해 표 속에서 무효표나 혼표(A후표 표 묶음 속에 B후보 표가 섞인 것)가 있는지 사람이 찾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역할은 투표지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 기계로 분류해 놓은 표에서 혼표나 무효표를 찾는 일'이니, 그런 행위는 기계로 해 놓은 개표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로 봐야 하기 때문에, 개표에 대한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

첨부하는 영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심사집계부에서는 기계로 분류한 투표지 다발을 들고 훑어보는 일을 두고 사람이 개표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모습은 분류기를 보조적으로 쓴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사람이 기계를 보조하는 행위로 보일 뿐이다.

그 동안에 투표지분류기로 분류한 표를 심사집계부에서 오류를 찾아내 후보자별로 다시 나누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심사집계부에서는 분류된 표를 훑어보기는 할 뿐 재구분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바르게 기표한 투표지'를 사람이 후보자별로 구분하는 개표를 했다는 증명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 나온다. 바르게 기표했다면 기계로 분류하는 것으로 개표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결국은 "투표지에 빼딱하게 기표해야 '미분류표'로 되고, 그래야만 사람이 개표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투표지에 바르게 기표했다면 기계로 분류한 뒤 투표지 다발로 묶여서 보관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기표 상태를 보고 판단해 후보자별로 분류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바르게 기표된 투표지라면 기계가 분류하고, 그러면 사람이 개표하는 절차는 생략된다. 선거소송이 없다면 기계가 유효하다고 분류한 투표지는 사람이 눈으로 하는 개표를 하지 않은 채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폐기된다. 선거일 후 소송기한 30일 동안 선거쟁송이 없으면, 그로부터 30일이 지난 뒤에 폐기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 개인블로그 이프레스에도 올립니다.



태그:#투표지분류기, #개표상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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