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의 배우 정우성이 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두 작품 모두 사랑에 대한 작품이다. 정우성이 주저없이 말했다. "멜로를 좋아한다, 여전히 사랑은 미지의 대상이고 알고 싶은 것이기에 끊임없이 해온 것"이라고. ⓒ 이정민


정우성이 출연했던, 아니 한국 영화가 그에게 기댔던 몇 편의 작품을 우린 알고 있다. 일단 영화 <비트>와 <태양은 없다> 속 정우성을 통해 관객들은 미완의 청년이 남성미를 만났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매력적이 있는지 깨달았다.

여기에 멜로를 빼놓고 그를 논한다면 서운하다. 어쩌면 데뷔 이래 20여 년 간 정우성을 채운 건 팔 할이 멜로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비트> 이후 비슷한 장르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지만, 그가 택한 건 진한 멜로 향기가 담긴 영화 <모텔 선인장>이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새드무비>, <호우시절> 등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 그는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 최근 연이어 발표한 <마담 뺑덕>과 <나를 잊지 말아요> 역시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지난 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물었다. 무엇이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게끔 하는지.

상처에 대응하는 한 여성을 위해

7일 개봉하는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정우성은 불의의 사고로 부분 기억 상실을 경험한 석원 역을 맡았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다. "아니 어쩌면 지난 과거를 모른 체하는 얄미운 녀석일 수도 있다"며 정우성이 설명을 보탰다.

설정 자체만 보면 그의 전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연상된다. 단호하게 그가 부정했다. "시나리오를 받고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를 잊지 말아요>의 한 장면

<나를 잊지 말아요>의 한 장면. 부분 기억 상실증을 앓은 석원(정우성 분)에게 다가온 진영(김하늘 분)은 자신의 상처를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의 중후반 부 두 사람 사연에 대한 반전이 담겨있다. ⓒ CJ엔터테인먼트

"분명 석원은 클리셰(전형적인 설정)다. 기억 상실이라는 코드가 있고, 현실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이다. 그에 비해 진영(김하늘 분)이 현실적인 인물이다. 시나리오상의 그녀는 아픔을 대하는 태도가 성숙해 보였고,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는 한 여자의 영화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남자 입장에서 석원은 참 나약한 놈이다. 내 개인적 성향으로는 솔직히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이상한 기억 상실이나 스스로 만들어 내고!(웃음) 그래서 더욱 진영의 영화가 되길 바랐다.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상처를 대하는 자세가 어른 같지 않나? 그래서 더 보호 받아야 할 존재이기도 하고."

이번 영화로 처음 호흡을 맞춘 김하늘에 대해서 정우성은 "사실 우려는 좀 있었다"고 고백했다. "흔히 자기만의 처세술로 무장해서 사람을 대하는 여배우들이 많은데 이 현장을 잘 이겨낼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우려는 잠시였다. 이내 정우성은 "로맨틱 코미디와 여성스러운 역할 모두 소화한 덕에 연기 폭도 넓었고, 본인의 성격 역시 허물없고 솔직한 친구였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런 값진 여배우를 위한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며 "나중에 다시 같이할 수 있는 멜로 영화가 있다면 또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작자 정우성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의 배우 정우성이 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의 제작자기도 한 그는 장편 연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시기에 맞게 작업을 하겠지만 따뜻한 가족 영화를 보이게 될 것 같다"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 이정민


알려진 대로 정우성은 <나를 잊지 말아요>의 제작자기도 하다. 이미 지난해 단편 <킬러 앞의 노인>을 연출해 주목을 받았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작사 더블유 팩토리를 설립했고, <나를 잊지 말아요>가 창립 작품이 됐다. 이 영화의 연출 역시 <킬러 앞의 노인>의 각본을 썼던 이윤정 감독이다. 2011년 미장센 영화제에 출품한 단편을 이윤정 감독이 장편화했고, 이 과정에서 정우성이 힘을 보탰다.

"감독이 날 염두하고 시나리오를 썼다면서도 선뜻 함께 하자고 말을 못하더라. 선배를 멀찌감치 선망의 대상으로만 놓고 말을 건네지 못하는 후배의 위축된 모습, 그걸 떼어주고 싶었다. 영화 일을 하는 선배라면 후배들의 꿈을 돕는 것도 하나의 임무지 않을까. 단편에 진영에 대한 서술은 없다. 처음에 감독이 단편에 이야기를 덧대서 장편화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난 두 분야는 엄연히 다르니까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근데 제작자이자 동시에 배우로 함께 참여하니 눈에 보이는 게 다르더라. 이 감독으로서는 아마 난 냉정한 선배였을 거다. 현장에서 사람들 표정이 안 좋으면 무슨 일들 있나 생각하게 되고, 밥은 맛있나 걱정하게 되고, 바닥에 깔린 선을 보면 정리 좀 하자고 잔소리하고…. 만약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만 참여했다면 또 다른 자세를 취했을지도 모른다(웃음)."

메가폰을 이미 한 번 잡아본 그이기에 넌지시 또 다른 연출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씩 웃으며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킬러 앞의 노인> 장편화는 아니란다. "두세 작품 갖고 있는 게 있는데 아마 그중에 가족 드라마를 하게 될 거 같다"고 그가 말했다.

"영화계가 양극화돼 있지 않나. 천만보다 이젠 이백, 삼백만 영화가 더 귀해진 요즘이다. 그러다보니 멜로 장르도 희귀해졌고. 영화인들이 그런 면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작품을 만들 때 다양성이 생긴다. 선택의 폭을 넓게 제시하려는 노력을 안 하면 관객은 단순하게 큰 예산의 보기 편한 영화만 찾을 거다. 나 역시 제작사를 차린 이상 저예산 상업 영화에 관심을 꾸준히 두겠다.

실패? 그걸 두려워했다면 지금처럼 못 살지. 여전히 꿈꾸고 있다. 이윤정 감독과의 작업도 후배와 거리감을 좁히면서 동시에 영화를 대하는 내 태도를 성숙하게 하고 싶다는 차원이었다."

"차분히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원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의 배우 정우성이 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로 처음 호흡을 맞춘 김하늘에 대해 정우성은 "연기 폭이 넓고 성격 역시 스스럼없는 사람"이라 전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영화 이후 더 돈독해졌을까. 자신의 인터뷰를 끝낸 김하늘이 정우성을 깜짝 방문했다. 잠시 말을 멈춘 그가 김하늘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 이정민


어쩌면 이번 작품의 제목 자체가 정우성이 영화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설명하는 키워드이지 않을까. '잊지 말라'는 말은 '기억해 달라'와 의미는 같지만 다른 느낌이다. 보다 깊고 슬픈 호소의 느낌이랄까. 인연과 사랑에서 정우성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인연은 함부로 맺어서도 안되고, 일단 맺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가 말했다.

"이윤정 감독도 인연인 거지. 인연은 가볍게 대할 수 없는 무엇이다. 종종 책임 없이 가볍게 대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난 아니라고 본다.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임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사랑? 나름 사명감까진 아니지만 일단 좋잖나. 그래서 계속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설렌다. 사랑이 내 마음을 강하게 때리는 이유가 아마 내 성장 환경 때문이지 않을까. 남중, 남고에 그나마 고등학교마저 중퇴하고 대학도 안 갔다. 미팅 이런 건 전혀 모르지. 이성에 대해 서툰 만큼 판타지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사랑에 대해 원초적인 궁금증과 갈증이 있으니 배우로서의 표현 욕구로 표현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잠시 침묵. 그가 말을 이었다. "진짜 사랑이 필요한 시대"라는 말을 던지며 눈이 깊어졌다. 그는 현재를 "원초적 감정에 대한 결핍의 세상"으로 정의했다. "인간성과 낭만이 상실됐기에 우리 사회에서 복고 열풍이 불지 않나"라며 "차분히 우리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원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말이다"라고 했다.

이 남자, 분명 멜로를 위해 태어났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의 배우 정우성이 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랑이 필요한 시대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복고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 또한 사랑과 같은 본능적 감정에 대한 소구가 있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했다. 어지간한 문화평론가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나름의 분석이었다. ⓒ 이정민



정우성 나를 잊지 말아요 김하늘 멜로 기억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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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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