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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하며 '나로부터 행하는 교육, 공적 글쓰기'라는 주제로 2015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엽니다. 나 자신부터 길러지지 않으면 누구도 교육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종이 위에 있는 나 자신'이라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연마하고 세상과 소통해야 합니다.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실제로 그렇게 걸어나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2015교육문화연구학교는 10월 9일부터 12월 18일까지 총 10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주

나는 기자였다. 월급을 받으며 글을 쓴 기간은 3년이 조금 넘는다. 일은 재밌었다. 불의한 이들을 소재로 지면을 채웠다. 썩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뒤떨어지는 기자는 아니었다. 2년 전, 일을 그만두었다. 바쁜 생활에 대한 회의는 표면적인 이유였다. 김훈 작가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며 기자들의 세상을 떠났는데, 나의 이유는 변변찮다. 공적 글쓰기를 할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교사다. 다시 힘을 내어 공적 책임을 다하고자 다짐하며 배움터경당 교사로 함께하게 되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가르친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새들생명울배움터>에서 연 교육문화연구학교에 참여했다. 이번 주제는 하필이면 글쓰기다. 그것도 공적 글쓰기다. 공적인 글의 세계에서 도망쳤는데, 피하고 싶었던 과제에 다시 맞닥뜨렸다. 결국 인생에서 얽힌 매듭은 풀어야 하나 보다.

'나는 다시 공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고민을 안고 2015교육문화연구학교에 임했다. 3개월 동안의 배움이 나를 스쳐 갔다. 마지막 시간인 2015년 12월 18일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의 강의는 글쓰기의 압박감에 움츠러든 나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글쓰기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돌이켜 소통하기 위한 공적 글쓰기의 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의 강의는 글쓰기의 압박감에 움츠러든 나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사진 제공 강한종)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의 강의는 글쓰기의 압박감에 움츠러든 나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사진 제공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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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소통이 공포와도 같았던 경험이 있느냐고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선한 의도로 말한 것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상황이나, '아'라고 하는데 상대는 '가'라고 알아들으면 어떻게 소통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물론이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공포와 같은 경험이 있다마다. 최 대표는 다른 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길 바란다면 소통의 공포 속에 멍하니 멈춰 있을 수는 없다고 서두를 뗐다. 진심이 거부되는 소통이 단절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 이를 고민하며 최 대표는 '변화와 전진의 공적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참석자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공'과 '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최봉실 대표가 말하는 '공적 글쓰기'는 무엇일까. 그는 '공적'과 '글쓰기'를 나눠서 설명했다. 먼저 '공적'이란 말에 대해 살펴보자. '공적'이란 말은 '국가나 사회에 두루 관계된다'는 뜻이다. 공동체와 타인을 고려한다는 말이다.

자기 방과 같이 홀로 있는 공간을 보통 우리는 사적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건드릴 수 없는 독립적인 영역이라고 여긴다. 허나 이 독립적인 영역은 완전히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최 대표는 사적인 삶은 공적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등교한 학생의 얼굴색을 살피면 어젯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일찍 잠들었는지, 밤늦게까지 게임을 했는지, 남모를 고민에 잠 못 이루었는지 세세하게는 아니더라도 드러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가 딱 잘라 나누어져 있기보다는 서로 연결되어 긴장감을 느끼고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두 영역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사적인 시공간이 공적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최 대표는 조선 중기의 문신 장유의 '신독잠(愼獨箴)'의 내용을 소개했다.

"그윽한 밤 말 없는 그 공간에
듣고 보는 이 없어도 귀신은 그대를 살피노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사심을 품지 말지어다
처음 단속 잘못 하면 하늘까지 큰물 넘치리라
위로는 하늘을 이고 아래로는 땅을 밟는 몸
날 모른다 말한 텐가 그 누구를 기만하랴
사람과 짐승의 갈림길이고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이라
어두운 저 구석을 내 스승으로 삼으리라."

옛 문인은 '그윽한 밤, 말 없는 그 공간'을 사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홀로 있는 시간인 어두운 구석을 스승으로 삼아 게으름이나 사욕을 피우지 말고 사심을 내쫓으라 했다.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삼가는 '신독(愼獨)'의 삶을 사는 것을 성인의 길이라 생각했고, 지식을 가진 자의 마땅한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최 대표는 홀로 있는 시간에 자신을 삼가지 않으면 공적 영역에서 문제가 드러난다고 했다.

최 대표는 '공적 영역'은 '신독'의 삶을 살아내려는 공동체적 가치관과, 홀로 있는 영역을 자신의 소유로만 고집하고 그것이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두 가치관의 충돌이 치열하게 일어나는 장이라고 했다. 

"'이건 내 거야, 내 시간이야, 내 물건이야, 너와 상관없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혼자 있는 것 같지 않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적 영역을 고수하려는 가치관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적 영역을 공적인 책임감으로 살아내려는 가치관이 대립합니다. 공적인 영역은 이런 두 가치관의 충돌이 만연한 곳입니다."

공적 글쓰기,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

최 대표는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공동체적인 가치관이 충돌하면 소통의 단절이 일어난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다. 홀로 있으려 하는 사람보다 함께 있으려 하는 사람은 소통의 단절로 인한 고통을 격하게 느낀다. 짝사랑하는 이가 애가 타는 것처럼 말이다. 공동체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단절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소통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단절을 연결하기 위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최 대표도 소통이 어려워 단절을 선택하려 했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럴 수 없었다. 소통이 단절된 현실이 자신에게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약해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품에 안고 있는 생명 때문이라도 소통의 단절로 치닫는 것을 막아야 했다. 굳게 마음을 먹었다. 거듭해서 소통을 꾀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소통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돌이키게 했다.

최 대표는 '글쓰기'는 이런 가치관의 충돌이 만연한 '공적 장'에 소통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소통의 대상은 평소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서로 가치관이 다를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다. 그래서 '공적 글쓰기'는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라고 정의했다. 너무 달라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대상을 향해 소통을 작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를 만나려고 의지를 내는 것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맞닥뜨린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내 뒤에 올 다음 세대에까지 악순환은 이어진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소통이 막힌 현실을 살아가게 할 수 없으며 그들도 소통으로부터 달아나게 할 수는 없다. 소통하기를 포기하려는 마음을 내던지고 다시 다른 존재를 만나기 위한 글쓰기를 시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소통이 단절된 시대, 왜곡된 공적 글쓰기

최봉실 대표는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로서의 공적 글쓰기가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짚었다.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최 대표는 공적 글쓰기가 왜곡되는 세 가지 요인을 들었다.

첫째는 '토설'의 왜곡이다. 이전 시간 옥명호 <복음과상황> 편집장의 강의(관련 기사 : '응어리를 풀어내는 '결'쓰기')에서도 '토설'이 언급되었다. 옥 편집장이 말한 '토설'은 내면의 가시를 토해 자기 자신과 소통하고 자신을 정화하여 타자와의 소통이 원만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토설'에서 정화가 빠지면 소통은 왜곡된다. 최 대표는 이를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토설'은 자칫하면 소통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자기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내면을 토로하는 건 자신과의 소통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공적 글쓰기에서 그것만으로 일관하고 있으면 곤란하다는 것. 자기를 뛰어넘어 다른 이들을 만나야 하는데 자기에게만 매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째로 공적 글쓰기를 왜곡하는 것은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은 '공명심'이다. 최 대표는 공적 글쓰기를 하려면 '공명심'에 대해 반드시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SNS의 공감 수와 조회 수가 올라가면 교만해지고 거들먹거리는 경우가 있다. 공적 글쓰기는 명예욕의 유혹을 받기 쉽다. 이에 대한 자기 경계가 분명히 필요하다. 공적 글쓰기는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사랑의 행위인데 자신의 명성을 날리기 위해 공공을 이용하는 것은 간음하는 행위와 같다고 최 대표는 지적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타인을 상대화하고 도구화하는 행위로써 공적 글쓰기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소통을 가로막는 글쓰기다. <조선일보> 한현우 주말뉴스부장이 쓴 '간장 두 종지' 같은 글이 그 좋은 예다. 이 기사는 공적인 위치에 있는 자가 중국집과 고객 사이를 대놓고 갈라놓겠다고 작정하고 쓴 것처럼 보인다. 평범한 이슬람권 사람들을 모두 IS처럼 위험한 존재로 부추기는 글도 마찬가지다. 포털 사이트를 채우는 연예 가십 기사 역시 공적인 글이지만 존재와 존재가 만나도록 이끄는 글이 아니다. 연예인을 우리의 눈을 만족하게 하는 도구로만 다룬다. 좋아하는 대상을 존중하여 대하는 것을 원천봉쇄한다. 청소년들은 만남의 대상을 도구화시키는 만남에 물들게 된다. 최 대표는 "실컷 공부해서 이런 글들을 쓰려고 기자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소통이 단절된 현실이 자신에게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에게까지 이어진다. 강의를 듣는 참석자의 모습. (사진 제공 강한종)
 소통이 단절된 현실이 자신에게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에게까지 이어진다. 강의를 듣는 참석자의 모습. (사진 제공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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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다듬는 수련의 길

왜곡된 공적 글쓰기를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법이다. 최 대표는 소통의 단절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공적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은 건강하게 '토설'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있어야 한다. 관계 안에서 충분히 토로하되 꺼낸 이야기를 두고 어떻게 건강하게 정화의 과정을 밟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대화를 나누면서 지금 토설한 내용이 공적으로도 의미가 있는지 점검을 받아야 한다. 공적인 글이 여과 없이 타인들을 향해 감각적인 배설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거르는 작업을 거치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토설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자신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강화하는 토설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인간은 어둡게 응어리진 경험을 계속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자신을 용납해 주는 관계 안에서 한계를 넘어서고자 애쓰는 게 아니라 힘든 이야기를 반복하며 위로받으려고만 한다. 공적 글쓰기를 하려는 자는 여기서 머물러선 안 된다. 정화를 통해 부정적인 경험은 그 힘을 잃어야 한다. 내적인 수련, 기도 등으로 마음의 응어리를 건강하게 풀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지금 이 글로 글쓰기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토설하고 다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함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힘을 잃게 하려 한다. 함께 공부하는 이들과 쓴 글을 주고받으며 이 글이 공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점검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글쓰기의 두려움에 움츠러들었던 나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걸음을 나섰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공명심은 어떻게 경계해야 할까. 최 대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묘지명을 소개했다.

"너야 멀리멀리 명예를 날리고 싶겠지만
찬양이야 할 게 없다
몸소 행하여 증명시켜 주어야만
널리 퍼지고 이름이 나게 된다
너의 분운함을 거두어들이고
너의 창광을 거두어 들여서
힘써 밝게 하늘을 섬긴다면
마침내 경사가 있으리라."
(1822년 정약용 자찬묘지명)

61세로 세상을 떠난 정약용은 자신의 묘지명에 위와 같이 적었다. 공적 책임자로서 명예를 날리는데 집중하지 말고 몸소 행하여 매진하라는 것이다. 선한 마음과 혼재된 공명심을 걸러내려면 묵묵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고 최 대표는 지적했다. 이는 다른 존재를 위하는 충(忠)의 행동(관련 기사 :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선한 마음과 혼재된 공명심을 걸러 내려면 묵묵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고 최 대표는 지적했다. (사진 제공 강한종)
 선한 마음과 혼재된 공명심을 걸러 내려면 묵묵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고 최 대표는 지적했다. (사진 제공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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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을 조장하고 소통을 단절하는 글쓰기의 대안으로는 자기를 벼리는 수련을 들었다. 존재가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공적 글쓰기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 최 대표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쓰는 글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관계를 파괴한다고 했다. 공적인 글을 쓰는 기자들이 사실은 사회를 분열시키는 여론을 형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이 고발하고 있는 '돈 받고 기사 쓴 언론사들'(관련 기사 : 돈 받고 기사 쓴 언론사들, 빙산의 일각입니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비판하며 감시해야 할 대상에게 돈을 받고 정부 홍보 기사를 쓴 행태가 언론에 만연하다. 공공을 위해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이 자기 이익을 채우기 위해 독자들에게 사기를 치는 기사를 쓴다면 참된 소통은 철저히 유린당한다.

최 대표는 공적 글쓰기를 하려는 자는 내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치관인지, 모든 사람을 위한 가치관인지 분별하는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글에 대해 태도를 단호히 하자고 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글은 다른 존재와의 소통을 가로막는다. 자기 이익 추구는 소통을 가장 적극적으로 파괴한다. 지금 가진 시각보다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에게만 매여 있지 않고 다양한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겸손히 묻고 겸손히 듣고 겸손히 진리를 추구하고 끊임없이 배워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봉실 대표는 또한 팩트를 철저히 추구하면 진실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토대입니다. 정확하고도 확실한 사실의 기반 위에서 글을 써야 합니다. 동시에, 다가오는 진실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무수히 많은 정보를 다 점검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도 진실을 찾고자 하는 자에게 진실은 반드시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질적 도약의 때를 기다리며

진실은 우리를 향해 찾아오지만 진실을 붙잡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를 포착해 움켜쥐어야 한다. 이는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최 대표는 소통을 위한 공적 글쓰기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배움터경당에서 목공 수업을 받던 친구가 톱질을 한참 동안 반복합니다. 이 친구는 딱딱한 나무를 오랜 노력 끝에 자르고는 외칩니다. '무슨 일이든 반복해서 하다 보면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여기서 우리는 반복이 자신감을 준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반복을 하다 보면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 최 대표는 조선 후기 문신인 남구만(1629~1711)과 낚시꾼의 대화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낚시하는 법을 묻는 남구만에게 낚시꾼은 말한다.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묘리를 터득하는 건 아침에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저녁에도 낚싯대를 드리워야 가능한 일이고, 온 정신을 쏟고 마음을 다하여 날짜가 쌓이고 달수가 오래되어 익히고 익혀 이루어지면 손이 우선 그 알맞음을 가늠하고 마음이 우선 앎을 터득할 것"이라고 말이다.

질적 도약을 위해 반복하다 보면 '때와 조우'할 것이라고 최 대표는 말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고 아무 때나 하면 안 된다. 언제 이 말을 해야 하는지 때를 고려해야 한다. 최 대표는 서기중용(庶幾中庸)이라는 천자문 글귀를 예로 들어 때를 고려하려면 '징조'를 잘 파악하면서 중용의 도를 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는 수많은 조짐과 징조가 존재하는데, 이 징조들 가운데 중심으로 붙들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때와 상황에 맞는 가장 적합한 의미를 포착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서기중용(庶幾中庸)이라는 천자문 글귀를 예로 들어 때를 고려하려면 '징조'를 잘 파악하면서 중용의 도를 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강한종)
 최 대표는 서기중용(庶幾中庸)이라는 천자문 글귀를 예로 들어 때를 고려하려면 '징조'를 잘 파악하면서 중용의 도를 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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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 공적 글쓰기

최 대표는 소통을 목적으로 한 공적 글쓰기는 획일적인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가치관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양자택일하여 무언가를 배척하는 구도가 아니라 각자의 차이점을 존중하면서도 하나가 되는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쓰기를 통해 획일적인 의견 일치가 아니라 풍성하고 다양함을 유지하면서 의견 일치를 성취하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가진 자를 배제하는 방향이 아니라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함께 참여하여 더 나은 것을 한마음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런 공적 글쓰기에 공공의 명운이 달렸다고 봤다. 공적 사회는 하나의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이다. '살림과 사랑의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 공공과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소통이 어렵다고 소통을 포기하고 있으면 너무도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 방치된다고 최 대표는 말했다. 다음 세대에게 단절로 인해 불운한 공동체의 미래를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 삶의 소통의 단절을 막아서야만 한다. 그 결단과 행동은 분명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도록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향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공적 글쓰기를 한다고 할 때, 지금 소통하려는 대상과 나는 어떤 미래로 갈 것인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내가 꿈꾸는 미래가 다른 사람을 살리고 사랑하는 것이라면 지금 처한 현실을 바꾸어내기 위해 주구장창 노력하는 겁니다. 이렇게 미래를 예측하고 꿈꾸어야 오늘의 걸음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참석자들은 최 대표의 이야기에 화답했다. 조우영씨(36)는 "다른 사람과 소통이 안 될 거라는 생각에서 멈춰 있으면 안 되겠다"고 말했고, 이윤주씨(32)는 "소통의 단절이 내 등에 업힌 아이에게 이어진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단절이 이어지지 않도록 내가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립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과 절연하겠다"고 소감을 나눴다.

조우영씨(36)는 "다른 사람과 소통이 안 될 거라는 생각에서 멈춰 있으면 안되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강한종)
 조우영씨(36)는 "다른 사람과 소통이 안 될 거라는 생각에서 멈춰 있으면 안되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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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씨(32)는 "단절이 이어지지 않도록 내가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립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과 절연하겠다"고 소감을 나눴다. (사진 제공 강한종)
 이윤주씨(32)는 "단절이 이어지지 않도록 내가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립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과 절연하겠다"고 소감을 나눴다. (사진 제공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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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최 대표는 일상에서 소통을 위한 노력에 매진하자고 당부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믿음이 공적 글쓰기를 하는 데 필요합니다. 소통을 위한 모든 과정은 사실 우리에게 큰 도전입니다. 안 될 거라는 불신이 많습니다. 당연히 두려움이 큽니다. 하지만 변화해야 할 현실이 너무 많습니다. 정치, 교육, 먹거리, 역사를 바로잡는 문제 앞에서 움츠러들지 말고 힘을 내야 합니다.

공공과 소통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입니다. 단절해 놓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일상의 관계에서부터 소통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파편화되고 개인을 중시하는 삶을 살아가지 말고 함께함의 묘미를 터득하고 누리면서 같이 살아가는 삶의 노하우와 가치관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글쓰기가 이를 위한 공적 글쓰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의 감격과 행복을 주변에 물들일 수 있게 말입니다."

이제는 내가 결단해야 할 때다. 엉거주춤하고 있을 수는 없다. 소통할 수 없을 거란 두려움에 굴할 수는 없다. 지금의 현실에 머무는 건 바닷속에서 스러진 세월호의 원혼들을 계속 방치하는 것과 같다. 가르치고 길러야 할 아이들을 내팽개치는 것과 같다.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고통을 내어 쫓기 위해서 내 삶을 뒤바꾸어내야 한다. 나는 물 들이고 싶다. 우리가 함께 누리는 감격과 행복을 주변에 물 들일 수 있게 소통하는 공적 글쓰기를 하고 싶다. 공적 글쓰기는 내 운명이다. 

우리의 공적 글쓰기에 공동체의 명운이 달려 있다. (사진 제공 강한종)
 우리의 공적 글쓰기에 공동체의 명운이 달려 있다. (사진 제공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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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태그:#글쓰기, #새들생명울배움터, #교육문화연구학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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