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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에서 '개저씨' 부장 역할로 나온 배우 정재영.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에서 '개저씨' 부장 역할로 나온 배우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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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우리 주변에서 흔한 중·장년 남자를 지칭하는 단어에 지나지 않았다. 옆집 아저씨의 푸근한 자상함, 멋진 영화배우 원빈이 출연한 영화 제목 등이 떠올라 호감을 주는 말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저씨는 어느새 비호감의 상징이 됐다. 개처럼 행동하는 아저씨를 조롱하며 '개저씨'라는 새로운 단어까지 등장했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개저씨는 죽어야 한다(Gaejeossi Must Die)>라는 글은 개저씨의 행태를 폭로한다.

구세웅 스탠포드대학 교수가 영문 뉴스 웹사이트 <코리아 엑스포제>에 기고한 이 글은 과격한 제목과 날카로운 문장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불씨가 당겨진 개저씨 혐오 현상에 기름을 부었다.

일단 구세웅 교수는 개저씨라는 말이 낯선 사람을 위해 예를 제시했다. 중국집에 갔다가 손님 수대로 간장 종지를 주지 않는다며 분노한 언론인. 그는 자신이 다니는 신문사에 칼럼을 게재하며 분노를 풀어내고, 우회적으로 그 중국집의 이름까지 공개했다.

코리아 엑스포제의 기사 'Gaejeossi Must Die' 갈무리
 코리아 엑스포제의 기사 'Gaejeossi Must Die' 갈무리
ⓒ 코리아 엑스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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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아직도 술집에 있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주정뱅이, 외국인 관광객이 타기만 하면 요금 폭탄을 던지는 택시 기사, 음식점 종업원을 중세시대 하인처럼 여기며 고함과 반말로 주문하는 손님 등. 사실 이런 것들은 너무 흔해서 이상하게 느끼는 것조차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개저씨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아래는 <개저씨는 죽어야 한다(Gaejeossi Must Die)> 중 일부다(한국어 번역은 내가 했다).

"많은 한국 '아저씨'들이 창피를 무릅쓰고서라도 이성을 잃어버리는 광경을 너무 자주 목격했다. 이것이 일반적인 개저씨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신으로 여기며 우주의 중심에 두기 위해 이상하고 잘못된 질서를 남에게 강요하고,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 막무가내로 구는 사람. 이러한 남성들의 공통점은 이러한 행위의 정당성을 기괴할 정도로 확신하며, 이를 거부하거나 맞서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극심하게 당황하고, 심지어 화를 낸다는 것이다"

글쓴이도 인정하듯, 한국의 독특한 문화 시스템에서 일반적인 남성이 개저씨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그저 남자로 태어났다는 성취만으로 부모의 지나친 사랑을 받으며 방임되었고, 폭력적인 군대 문화가 만든 야만적인 힘을 찬양하는 마초 문화에 세뇌되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견디도록 몰아붙여지기 때문이다."

"마초, 부성, 연장자 숭배 사상이 맞물렸을 때, 한국은 이를 오랫동안 '벼슬'이라고 생각해왔고, 이 벼슬로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 앞에서 왕이 돼버린다. 만약 개저씨와 이성적인 토론을 하려 든다면, 당신의 논리는 "머리도 피도 안 마른 게 감히"라는 그들의 논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유교 탈레반', '유슬림'이라 불리는 개저씨들

개저씨는 그들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 정경유착, 빈부격차, 사교육 등과 함께 한국의 고도·압축 성장에서 나온 사회적 부산물이다. 글쓴이의 말대로 개저씨 옹호론자들이 중·장년 세대가 한국 발전기에 겪었던 역경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개저씨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아줌마'가 등장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팔꿈치로 찌르고, 밀고, 요구하고, 시끄럽게 굴면서 결국 얻어내는 중장년 여자는 아줌마로 불리며 개저씨 못지않은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개저씨와 아줌마는 다르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마초적 이미지로 보상받는 개저씨와는 달리 아줌마는 아줌마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다. 아줌마는 더 이상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줌마는 자신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죗값을 받고 있다. 그들의 실용적이지만 매력 없는 헤어 스타일처럼 전혀 섹슈얼리티가 없고,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자인 사람이 된다"

한국은 새로운 세계관으로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한 사람의 부성, 나이, 성별, 그리고 혼인 여부 등이 특권의 근거가 되지 않는 세계관이다. 필연적인 이동이지만, 여전히 거센 저항을 받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이 같은 저항을 '유교 탈레반', '유슬림'이라 부르며 반발하고, 절망하고, 암울해 한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국가, 그리고 윗세대와 거리를 두면서 한국을 '헬'이라 부르고 있다. 글쓴이는 제목처럼 개저씨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모두는 아니지만, 너무 많은 아저씨가 개저씨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개저씨의 시대도 끝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개저씨를 하나의 현상으로 여기며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 문제가 있다고 깨닫는 것은 치료의 첫 단계다. 그리고 한국은 진보하기 전에 개저씨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

우리가 '개저씨'를 몰아내는 방법은?

김무성 전 보좌관 구속 소식에 관해 기자가 물어보자, 김무성 대표는 기자에게 반말로 답했다
 김무성 전 보좌관 구속 소식에 관해 기자가 물어보자, 김무성 대표는 기자에게 반말로 답했다
ⓒ 채널A뉴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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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저씨는 욕먹어야 하고, 사라져야 한다. 수십 년간 청년과 여성은 개저씨의 권위에 눌려 수치와 모욕, 불합리를 견디며 자유를 침해당했다. 하지만 이젠 달라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연대하는 세상이 왔다.

그러나 모든 비난의 화살이 개저씨를 향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힘을 합쳐 개저씨를 몰아내느냐, 마느냐는 식의 대립 구도와 반목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만 뒤바꿀 뿐이다.

모두가 힘든 세상에서 개저씨도 예외가 아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권력을 누리지만, 존경받지 않고 의지할 곳도 없다. 하지만 외롭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단단히 고착된 한국 사회의 독특한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개저씨를 비난하는 젊은 남자도 나이가 들면 개저씨가 된다.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 니로 같은 인물을 개저씨와 비교하며 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균열이다. 개저씨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상하 구조의 질서가 균열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사람들은 개저씨의 권력을 두려움이 아닌 혐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 사회의 개저씨들이 그 시선을 느낄 때 평등한 구조에서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 너무 요원한 것 같지만 이제 출발점에 섰고, 너무 늦은 것 같지만 언젠가는 꼭 가야 할 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개저씨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전 그대로의 아저씨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리고 아저씨들이 스스로 나서 지금보다 더 상식적인 세계관으로의 이동에 앞장선다면 우리는 더 빨리 진보할 수 있다.


태그:#개저씨, #구세웅, #코리아 엑스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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