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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모두 퇴근한 늦은 저녁 시간, 눈을 감고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끝 화장실로 향했다. 첫 발을 내딛기 전에 두 팔이 먼저 전방의 허공을 향해 휘저었다. 늘 다니던 길인데 장애물에 정강이가 부딪히고 한참을 더듬거리다 간신히 볼일을 봤다.

엊그제 장애인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친구의 말에 시도해봤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퇴근 후 아파트 입구에서 다시 눈을 감고 발걸음을 땠다. 손끝 감각만으로 엘리베이터와 현관의 버튼을 누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까스로 거실로 들어와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말도 안 되게 서툰 정도를 넘어섰다.

스스로의 미션을 끝내고 눈을 뜨자 책장에 놓인 작은 액자에 바로 시선이 꽂혔다. 2004년 고비사막에서 시각장애인 이용술씨와 함께 빅듄을 넘는 장면의 사진이다. 5박 7일 동안 253km를 달렸던 지옥의 레이스였다. 더구나 오직 내게 의존한 친구까지 온전히 책임져야 했기에 지독히 외로운 레이스였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89명의 선수 중 완주율이 60%에도 못 미질 정도로 치열했던 기억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5박 7일 253km 달리기, 죽음의 레이스

고비사막의 빅듄을 넘는 필자 시각장애인과 함께
▲ 고비사막의 빅듄을 넘는 필자 시각장애인과 함께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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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원주민들 말은 그들의 유일한 교통수단
▲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원주민들 말은 그들의 유일한 교통수단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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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6일째이자 무박 2일 동안 93km를 멈추지 않고 달리는 롱데이 구간의 둘째날 아침을 맞았다. 밤새 광활한 협곡과 투루판 분지를 넘나들며 26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오전 10시, 위구르족 원주민 마을을 벗어나 사구지역으로 들어섰다. 이제 맞은편에 버티고 있는 저 빅듄만 넘으면 캠프에 도착한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캠프로 들어설 때 보여줄 감격의 세리머니를 상상하며 힘겨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빅듄을 넘었지만 기대했던 캠프는 보이지 않고 또 다시 엄청난 빅듄이 우릴 가로막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용술씨에게 말했다. "이 형, 내가 지도를 잘못본거 같아." 그러자 용술씨는 "뭐, 두 눈뜨고 그것도 제대로 못 봐? 일부러 나를 골리려고 엉뚱한데로 돌아온 거지!" 그의 인내가 한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고비사막 스네이크 피크의 칼능선 시각장애인과 함께
▲ 고비사막 스네이크 피크의 칼능선 시각장애인과 함께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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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굵은 자갈과 흙먼지가 연신 풀썩이는 제왕의 계곡(The Valley of the Kings) 34km를 넘었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수십 개의 강줄기를 가로지르며 고대 실크로드(The Ancient Silk Road)를 따라 30km를 건넜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견뎌내고 42km의 블랙 고비(The Black Gobi) 구간도 통과했다.

1234개의 철제 계단을 올라 플레이밍 산맥(The Flaming Mountains)까지 32km 넘었다. 선수들 사이에 우리의 통과 여부를 놓고 내기까지 할 정도로 불가능으로 여겼던 천 길 낭떠러지의 수백 미터 산허리도 용케 건넜다. 그런데 캠프를 목전에 두고 빅듄에 막혀 방향을 잃고 탈락 위기를 맞았다. 서로는 직면한 이 상황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사막의 열기 58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 사막의 열기 58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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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인과 필자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었다
▲ 시각장인과 필자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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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기 탈락보다 물 부족이 더 문제였다. 눈앞의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2시간가량을 버텨야 하는데 마실 물은 반 통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까지도 각오해야 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바람마저 삼켜버린 태양은 온몸을 녹여버릴 기세로 쉼 없이 열기를 토해냈다. 물통을 그의 손에 맡겼다는 한숨에 들이킬 판이었다. 간간이 물통 입구를 그의 입에 들이댔다 떼며 타는 입안을 적셔주었다. 나는 갈증을 삭히려 목에 두른 버프를 입에 문채 혀로 침샘을 자극했다. 흙먼지와 땀에 전 버프에서 쉰내와 찝찝한 맛이 우러났다.

희망이 무너진 탓일까. 시간이 지체될수록 용술씨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흐느적거렸다. 감정 기복도 더욱 심해졌다. 경기 탈락보다 물 부족보다 더 큰 문제는 절망과 불신이었다.

"아~ 난 더 이상 못가겠어. 김 형 혼자 가."

그가 모래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투정을 부리는 그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뭐? 못가겠다고? 나 혼자 가라고?" 나도 버틸 힘이 다했나 보다. "이 형 같으면 이 상황에서 혼자 갈 수 있겠어?" 이제 나도 이 지옥의 레이스를 그만 멈추고 싶었다. 태양은 더욱 무섭게 열기를 뿜어댔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나만 의지한 채 여기까지 온 용술씨가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다.

텐트가 보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움직였다

거북 등처럼 갈라진 대지 절망 속엔 숨겨진 희망이 있다
▲ 거북 등처럼 갈라진 대지 절망 속엔 숨겨진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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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그럼에도 우리는 가야할 길이 있다
▲ 동행 그럼에도 우리는 가야할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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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깨지고 발가락 물집도 진작 뭉개졌다. 그나마 이 절박한 순간에도 서로 맞잡은 손만은 놓지 않았다.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 실패도 없다. 기고 뒹굴었다. 그리고 기어코 두 마리 짐승은 가쁜 숨을 토해내며 빅듄 정상에 올랐다. 모래와의 사투를 딛고 우리는 거기서 희망을 보았다.

"이 형, 저기 지평선 끝자락에 하얀 텐트가 보인다."
"어! 그래? 그럼 빨리 가자!"

희망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생사를 오갔던 종전의 기억은 까맣게 잊은 채 새로운 희망을 향해 달렸다. 끔찍한 비극의 현장이 될 뻔한 긴 터널을 지나 캠프에서 들려오는 열광의 북소리를 쫓아 달리고 또 달렸다.

253km 고비사막레이스 대장정의 결승선 모습 선수 모두의 로망!
▲ 253km 고비사막레이스 대장정의 결승선 모습 선수 모두의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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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시각장애인 이용술님과
▲ 그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시각장애인 이용술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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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도전이었을까. 그 순간만은 그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도우미가 아니라 공동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투정을 이해할 수 없다. 단지 그때 그의 마음을 조금 헤아릴 수 있을 뿐이다. 상대의 입장을 모두 이해한다고 말하지 말자. 어설픈 위로는 더 큰 상처만 될 뿐 있다. 정상인은 장애인 체험 프로그램이랍시고 횡단보도를 건너지만 장애인은 목숨을 담보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결승선 통과 후 개그맨 신동엽과 함께 중국 우루무치에서
▲ 결승선 통과 후 개그맨 신동엽과 함께 중국 우루무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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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후의 여유 웃음은 웃음이 아니다
▲ 완주 후의 여유 웃음은 웃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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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열렸다. 새해 벽두는 뭔가 새롭게 마음먹고 시작하기 딱 좋은 시기다. 시간에 쫓겨 조급해 하고, 늘 손에 쥔 것이 부족하게 살아왔다면 그래서 상대적 빈곤감과 불만으로 가득했다면 이제 마음을 고쳐먹어 보자.

배려는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살아가겠다는 여유로운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새해에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서로 양보하며 좀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갖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협력의 동반자를 만난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말 한 마리는 2톤을 끌지만 두 마리가 힘을 합치면 무려 23톤까지 끌 수 있다고 하니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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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0년 넘게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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