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와 몇몇 참신했던 작품들, 그 속에서 한국영화가 가진 저력을 확인한 2015년이었다. 상반기 내내 이렇다 할 흥행작 한 편 없었던 한국영화는, 남은 반년 동안 두 편의 천만 영화와 십여 편의 흥행작을 내놓고 한 해를 매조지었다.

반격의 서막은 최동훈과 류승완이 열었다. <암살>과 <베테랑>은 2015년 한국 영화계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 됐다. 친일청산과 돈, 그리고 정의에 관한 사회적 문제의식까지를 던져준 흔치 않은 흥행작이었다

기존에 이렇다 할 명성을 얻지 못했던 신예들도 분전했다. <탐정 : 더 비기닝>의 김정훈, <성난 변호사>의 허종호, <특종 : 량첸살인기>의 노덕,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내부자들>의 우민호가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2015년의 성취를 바탕으로 다가오는 병신년에도 좋은 활약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CJ 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의 4대 대형 배급사를 제외한 어느 곳도 흥행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상당하다. 이들 배급사는 외화에 맞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동시에 한국 영화계에 다른 작은 가능성이 움틀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공룡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이들 4대 기획·배급사 작품이 할리우드 대작에 당당히 맞서는 당장의 상황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쏠림 현상'이 심해진 한국 영화 생태계가 복원력을 잃어버리기 전에, 작은 영화가 큰 영화와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 고심해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영화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성공조차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 새 시대의 성공은 어느 누가 거머쥘까. 2016년 첫 달의 기대작 10편을 뽑아본다.

[하나] <셜록 : 유령신부>

<셜록 : 유령신부> 포스터

▲ <셜록 : 유령신부> 포스터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가이 리치가 연출하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아성에 도전하는 영화가 나왔다. 영국의 TV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셜록>의 스페셜 에피소드가 극장판으로 공개된 것이다.

베스트셀러 원작의 명품 드라마 <닥터 후>의 첫 시즌을 연출한 더글러스 맥키넌이 감독을 맡았다. 어느덧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틴 프리먼이 극장판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원작에 충실한 연출로, 원작을 재해석한 가이 리치의 영화와는 또 다른 맛을 안겨줄 작품이 될 것이다. 새해 연휴가 한창인 지난 2일 개봉한다.

[둘] <유스>

<유스> 포스터

▲ <유스>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비토리오 데 시카, 페데리코 펠리니, 세르지오 레오네가 잊힌 시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쥬세페 토르나토레도 어느덧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쌓아올린 명성인가. 이탈리아 영화가 한 번에 무너질 리 없다. 가브리엘 무치노와 함께 이탈리아 영화계의 새로운 기둥으로 자리 잡은 파올로 소렌티노가 7일 이탈리아 영화의 건재함을 알린다.

제28회 유럽영화상에서 작품, 감독, 남우주연상을 휩쓴 <유스>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연주를 부탁받은 지휘자가 연주 목록을 논의하던 중 갑작스레 무대에 서는 것을 거절했다는 실화로부터 출발했다. 은퇴를 앞둔 세계적 거장의 이야기가 'youth'라는 제목을 달고 개봉하다니 비범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지 벌써 기대된다.

마이클 케인, 하비 케이틀, 제인 폰다 등 명성 있는 배우들의 참여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보증수표다. 영화팬에게 이 영화를 놓치는 건 굴러들어온 새해 복을 걷어차는 일이 될 것이다.

[셋] <헤이트풀8>

<헤이트풀8> 포스터

▲ <헤이트풀8> 포스터 ⓒ (주)누리픽쳐스


쿠엔틴 타란티노의 8번째 장편영화. 전설적인 작품 <펄프픽션>으로 94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세계적인 명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눈 내리는 서부를 배경으로 스릴러를 찍어냈다. 그의 작품을 보지 않고 논하는 건 어리석은 일, 관객은 감동하고 경탄할 마음가짐만 준비해 극장으로 달려가면 될 테다.

사무엘 L. 잭슨과 커트 러셀이 또 한 번 타란티노의 영화에 출연하고 엔니오 모리코네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작업한 이후 무려 40년 만에 서부극 배경음악을 맡았다. 어느 때보다 짱짱한 지원군을 얻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이번엔 어떤 세계를 보여줄지 숨죽여 기다리는 영화팬이 적지 않다. 7일 개봉.

[넷]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포스터

▲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올 1월 극장가는 지난해와 분위기가 딴판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영화가 마땅치 않았던 2015년 첫 달에 비해, 병신년 1월은 눈길을 사로잡는 영화로 가득하다. 영화가 없으면 참아내기 힘든 세상이니만큼 더없이 반가울 따름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1월 기대작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다. 일찌감치 아카데미 시상식이 선택한 감독과 오랫동안 오스카를 갈구해온 배우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993년 <길버트 그레이프>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됐고 2004년 <에비에이터>, 2006년 <블러드 다이아몬드>, 2013년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3차례나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번에야말로 오스카를 거머쥐겠다는 의욕으로 가득하다. 라세 할스트롬도 제임스 캐머런과 마틴 스콜세지도 주지 못한 선물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디카프리오에게 건넬 수 있을까? 14일 극장에서 짐작해보자.

[다섯]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포스터

▲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포스터 ⓒ 영화사 진진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영국 출신의 노감독 리처드 론크레인의 신작이다. 1946년생으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가 다시금 스크린을 향해 도전장을 빼 든 것.

40년 산 뉴욕의 아파트를 내놓은 노부부가 부딪치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우리가 잊어버린 낡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평생 벌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한국의 청춘엔 크게 공감이 갈 소재가 아닐 수 있겠으나 부동산에 남다른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한국 기성세대들에겐 색다른 관람이 될 수도 있겠다.

서민적이면서도 품격있는 노년을 능숙하게 연기하는 두 배우 모건 프리먼과 다이안 키튼이 주연을 맡았다. 21일 개봉.

[여섯] <빅쇼트>

<빅쇼트> 포스터

▲ <빅쇼트>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가 한 영화에 나온다. <어벤져스> 못지않은 유명 배우들을 기용한 감독은 각본과 각색, 제작 등 온갖 영역에서 다재다능함을 뽐내고 있는 아담 맥케이다.

그가 주목한 건 2005년 있었던 흥미로운 실화. 기발한 작전으로 탐욕에 찌든 월스트리트 은행들을 물 먹인 4인조 지능 범죄단의 이야기가 단박에 그를 사로잡았다. 각기 액션, 코미디, 로맨스, 드라마에 강점이 있는 배우들을 한데 모아 찍어낸 지능범죄극은 과연 어떤 작품일까.

이듬해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의 척도가 된다는 시카고비평가협회상에서 각색상을 받은 점도 눈길을 끈다. 설정과 캐스팅, 줄거리 모두에서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이 영화는 21일 개봉한다.

[일곱] <세기의 매치>

<세기의 매치> 포스터

▲ <세기의 매치> 포스터 ⓒ 판씨네마(주)


<라스트 사무라이>, <블러드 다이아몬드>, <러브 앤 드럭스>의 감독 에드워드 즈윅이 이번엔 체스계에서 손꼽는 세기의 경기에 주목한다. 바둑으로 치면 이창호와 조훈현의 격돌쯤 될까? 체스를 두지 않으니 알 수 없다.

다행인 건 체스를 몰라도 알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라는 점.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리부팅과 함께 붉고 푸른 거미 옷을 벗은 토비 맥과이어가 실존했던 체스 명인 바비 피셔 역을 맡았다. 그가 숙명의 적수 스파스키와 벌인 전설적인 경기를 연기했다.

늘 한 걸음이 모자라 거장으로 가는 문턱마다 넘어지고 말았던 에드워드 즈윅은, 이번에 그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까? 21일 확인할 수 있다.

[여덟]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포스터

▲ <스티브 잡스> 포스터 ⓒ UPI 코리아


언제쯤 멈출까?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긴 몰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보다 스티브 잡스가 더 많이 영상화됐음이 분명한데 아직도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은 끊일 줄 모른다. 그래도 이번엔 영국의 믿을만한 연출자 대니 보일이 감독했다니 이쯤에서 마침표가 찍힐 것도 같다.

<어 퓨 굿 맨>, <웨스트 윙>, <뉴스룸>의 각본가 아론 소킨이 각본을 맡았다. 미국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각본가가 가장 인기가 많은 캐릭터 스티브 잡스를 어떻게 빚어냈을지 주목하는 눈이 한둘이 아니다.

<멕베스>부터 <엑스맨: 아포칼립스> 등 전성기를 맞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대니 보일이란 재능 있는 감독을 만나 재능을 만개시킬 수 있을까? 그가 연기한 스티브 잡스는 어떤 모습일까? 이 궁금증을 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 21일 개봉.

[아홉] <산하고인>

<산하고인> 포스터

▲ <산하고인> 포스터 ⓒ 에스와이코마드


중국의 6세대 감독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연출자 지아 장 커의 작품.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26년의 세월을 아우르는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지아 장 커가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궁금하다. 지아 장 커의 영화 가운데 중국에서 가장 좋은 흥행이익을 거뒀다는 점에서 한국에서의 흥행 가능성도 작지만은 않다는 평가다. 빠르면 1월 중 개봉한다.

[열] <오빠 생각>

<오빠생각> 포스터

▲ <오빠생각> 포스터 ⓒ NEW


눈물 제조기 이한 감독의 신작이 이르면 1월 중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연기 잘하는 신세대 배우 임시완과 고아성을 캐스팅해 안정적인 드라마도 펼칠 준비를 마쳤다. 한 소위가 한국전쟁 가운데서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어 작지만 소중한 기적을 일으켰다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연애소설>과 <우아한 거짓말>에 이어 이한 감독의 대표작이 또 한 편 만들어질지 적잖이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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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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