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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가 놓은 덫에 걸려 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아베가 의도하는 방향이다. 이번 한일 외무장관 합의는 아베의 의도대로 앞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거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책임을 거론할 경우 일본은 '합의 위반'이라고 항의할 수도 있다.

그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 차원에서 하는 항의가 아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을 훈계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불법적으로 식민 지배를 당하고 이에 법적 책임조차 묻지 못한 나라가 광복 70년이 되는 해에 도리어 일본이 훈계를 들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베가 놓은 덫의 노림수이다.

한일 외무장관 합의, 일본에 잘못된 신호 줄 수도

'최종해결'이니 '불가역적 해결'이니 하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아베의 프레임에 걸린 상황이다. 아베는 이런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최종 해결이 안 되는 것은 한국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일본의 우익들은 그동안 '위안부 문제가 해결 안 되는 것은 한국이 자꾸 골대를 바꾸기 때문이다'라며 한국 책임론을 주장해왔다.

2015년은 굴욕적인 한일협정 50년이 되는 해이고, 2차대전 종전 70년이 되는 해이다. 아베 총리는 전후 70년인 올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합의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일협정 50년이 되는 해에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해서 일본의 후손들에게 사죄할 숙명을 지우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아베의 인식이 이런 것이라면 속으로 이제 일본이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고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6월 미국을 방문해서 복잡한 독도 문제를 풀기 위해 '독도를 폭파해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한일회담 과정에서 불거진 독도 문제를 골치 아픈 사안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에 고무된 일본 우익들은 당시 해당 발언 이후 지속해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해왔다.

일본 우익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독도폭파 발언으로 독도영유권에 대한 5.16 세력들의 의지가 박약한 것으로 바라보았던 셈이다. 이번 한일 외무장관의 합의로 일본에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한국 정부의 의지가 박약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되었다. 독도 문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에 역공을 취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소녀상은 역사에 대한 기억

일본군위안부 관련 한일외교장관회담이 열린 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 된 '소녀상'에 털모자와 목도리가 씌워져 있다. 현재 재건축 중인 일본대사관 주변으로 경찰 차벽이 설치되어 있다.
 일본군위안부 관련 한일외교장관회담이 열린 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 된 '소녀상'에 털모자와 목도리가 씌워져 있다. 현재 재건축 중인 일본대사관 주변으로 경찰 차벽이 설치되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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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소녀상 이전이라는 덫에 10억 엔의 미끼를 올려놓았다. 한국 정부가 10억 엔의 미끼를 덥석 물었기 때문에 소녀상 이전이 한국정부의 발목을 옥죄게 되었다. 실제로 기시다 일본 외상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기자들과 비공개 간담회에서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소녀상 이전은 한국 정부가 관여하거나 책임질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윤병세 장관은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해결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시민단체들은 당연히 강력히 반발하고, 소녀상 앞에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는 시위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를 두고 약속위반이라며 한국 정부를 압박할 것이다. 이미 회담 직후부터 일본 기시다 외상은 소녀상에 대해서 "적절히 이전하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상은 "위안부는 군이 관여하여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문제"라고 했다. 이런 발언은 과거와 비교하면 진일보한 인식이다. 하지만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법적 책임'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법적 책임을 다했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이라는 의미이다.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 대법원도 지난 2012년에 "일제 식민지 지배에 따른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기에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 사법부도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지만 이를 사법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도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일본의 법적 책임에 관해 면피를 준 것이다.

아베 총리의 사과도 법적 책임에 따른 사과가 아니고 도의적인 차원일 뿐이다. 게다가 아베 총리가 직접 사과하지 않고 외상이 대신 사과한 '대독 사과'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위안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하겠다는 것도 일본의 배상이라고 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 같은 문제가 존재하는데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마무리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은 재무장과 우경화의 움직임을 보이는 아베 총리에 꽃길을 깔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베 총리가 법적 책임을 인정해서 직접 사과하고, 도의적인 것이 아닌 피해 배상의 차원에서 기금을 출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또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했던 전철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와 같은 조치가 뒤따를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일 외무장관의 합의는 결함이 많고 불완전한 해결이다. 한일 양국 외무장관이 공식 합의문을 작성한 것도 아니고 기자회견에서 합의 내용을 발표했을 뿐이다. 그런데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성급하게 발표해버린 상황이다. UN도 '일본군 위안부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는데, 유엔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기도 어려운 상황을 한국이 자초했다. 설사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전쟁범죄로 끊임없이 논의해야 한다. 기억을 통해서 전쟁범죄의 재발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는 아베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에서 지우려는 것은 대동아공영권을 꿈꿨던 그의 조상들이 걸었던 길을 걷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아베의 인식에는 이미 '식민지 지배'의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월 14일 발표한 담화를 통해서 아시아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마치 그런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세계관을 발표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담화에서 '19세기 서구를 중심으로 한 식민지 확산이 있었는데, 일본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정치를 세우고 근대화하여 서구의 식민지화를 막았다'는 역사관을 드러냈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통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을 격려했다'는 아베 담화는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아베 담화에서는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도 그 원인을 '대공황으로 유럽제국들이 경제 블록화를 진행해서 일본경제가 타격을 받았기 때문'으로 왜곡하고 있다.

아베는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 다카스키 신사꾸, 기시 노부스케 등 세 명을 꼽았다. 요시다 쇼인은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주장하면서 대동아공영권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하여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등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은 대동아공영권을 위해 앞장섰다. 다카스키 신사꾸는 요시다의 수제자이며,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을 설계한 사람이다.

아베는 그가 존경하는 사람들의 뜻을 계승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2차대전 종전 70년을 맞이해서 아베는 패전의 역사를 지우면서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었다. 미국과 미·일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이에 따라서 집단자위권 회복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 등 해외파병을 위한 관련 안보 법제를 고치거나 새로 제정하는 중이다.

웬디 셔먼이 말한 '값싼 박수'의 효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1월 2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일 정상 기념촬영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1월 2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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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70년이 저물어 갈 즈음 아베는 2차대전 전쟁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는데 큰 걸음을 내디뎠다. 게다가 한국의 대통령이 1948년을 '건국'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아베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정당성을 강변할 것이다. 이제 일본 우익들이 '식민지 지배가 한국을 근대화시켰고, 이에 따라서 1948년에 한국이 건국하게 되는데 일본이 기여했다'고 주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1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2013년 3.1절 기념사는 3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무색해졌다. 미국 웬디 셔먼 전 국무차관은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22일에 한일 국교 정상화 기념식에 참석해서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후 아베 담화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는 그와 다를 것이다.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되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합의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아베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이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만약 정부가 못 한다면 시민이 나서서, 이번 발표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창수 시민기자는 코리아연구원 원장입니다.



태그:#일본군 위안부, #아베, #한일외무장관회담, #위안부 최종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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