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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서열'로 '키보드 배틀' 뜨는 대학생들

국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게시판) 목록을 보면 화면 좌측 하단에 '대학1' '대학2'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국내 4년제 대학들의 이름을 단, 수 많은 하위 갤러리(게시판)들이 있다. 이곳에서 20대들은 서로의 대학을 깎아내리고, 또 같은 대학 안에서도 서열을 나누며 서로를 '무시'한다. 여기서 서로의 '연대'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연히 동맹의 스파크가 튀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형성에 가깝다.
▲ 키보드 배틀 국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게시판) 목록을 보면 화면 좌측 하단에 '대학1' '대학2'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국내 4년제 대학들의 이름을 단, 수 많은 하위 갤러리(게시판)들이 있다. 이곳에서 20대들은 서로의 대학을 깎아내리고, 또 같은 대학 안에서도 서열을 나누며 서로를 '무시'한다. 여기서 서로의 '연대'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연히 동맹의 스파크가 튀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형성에 가깝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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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학년도 대학입학시험전형 정시모집 원서접수 기간(12월 24일~12월 30일), 바빠진 건 고3·학부모·교사·학원 관계자들만은 아니었다. 어떤 '전사'(戰士)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디시인사이드 대학별 게시판, 훌리건 천국, 오르비, 수만휘 등)에서 또 한바탕 '키보드 배틀'을 치렀다. 이들이 대학 간 그리고 대학 내 서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친구 중 '똥푸산대'(부산대를 낮잡는 말) 간 돼지 있는데 이게 자랑할 거리냐?"(제노***)
"'중경외시' 외치는 놈들은 '외망퀴'라(한국외대생을 낮잡는 말) 보면 된다."(여**)
"'분교충'들 마음에 안 드는 게, 자꾸 기어오른다는 거다."(내일***)

전사들은 각자에게 유리한 질서를 수호(?)하고 또 쟁취하기 위해서 드잡이도 불사한다. 여기서 '질서'란, 수험생들 사이에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 하는 식으로 암송되는 '대학 서열'을 말한다. 가령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중앙대)→경외시(경희대·한국외대·시립대)' 서열에서, 가운데 '중'자에 해당하는 '중앙대'를 어디에 붙여 쓰느냐의 문제조차도 미묘한 신경전의 대상이 된다.

'서성한중 경외시'라 쓰면 한양대를 지지하는 전사들은 '어디 감히 중앙대를 한양대와 엮느냐'며 펄쩍 뛰고, '서성한 중경외시'라 쓰면 중앙대를 지지하는 전사들로부터 '한망퀴냐?'고 핀잔을 듣는 식이다. 전사들은 전투에 각종 무기를 동원한다. 이른바 '입결'(매년 신입생들의 입학성적)과 '아웃풋'(각종 고시 실적·정부 및 국내외 대학평가 순위)이라 불리는 요소들을 무기로 쓴다. 이런 전투는 본격적으로 진흙탕 싸움이 된다.

한쪽이 사법시험 합격 실적을 수집해오면, 다른 쪽은 회계사 합격 실적으로 되받아친다. 경쟁자에 불리한 자료는 널리 퍼뜨리고, 경쟁 대학을 확실히 제치고자 경쟁대학 학생인 것처럼 위장해서 글을 작성하기도 한다. 가령 경쟁대학 게시판에 침투해 입결이 더 낮은 대학을 진지하게 의식하는 척하며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후방 교란 전술'은 '고도의 ○○대 훌'(훌리건)이라는 코드명으로 첩보 괴담처럼 떠돈다. 물론 '밀어내기'는 자교 내에서도 유효하다.

참을 수 없는 '잣대'의 가벼움

오찬호 박사(사회학)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128쪽의 삽화를 기자가 재구성해 인용했다.
▲ 타인 '밀어내기'가 불가피한 생존전략이 된 20대들 오찬호 박사(사회학)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128쪽의 삽화를 기자가 재구성해 인용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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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충, 하... 수시랑 정시랑 너무나 점수 차이가 난다. 아, 솔직히 이거 정시 애들한테 장학금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네? 총장님?" (토끼는***)
"본캠 애들이 (분교 소속 학생들을) 아주 싫어해. 내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같은 대학 애들 아니라고 하고 연고전할 때 분캠 애들 오면 매우 비웃는다고 하더라. 자기 대학이랑 과 이름 같은 게 달라서, 자기들은 분캠 애들 알 수 있다 카더라. 통폐합한다고 하면 본캠 학생회에서 지랄할 정도라는 거 알아줬으면 함. ○대 ○○대 실제 사례야." (ojh6****)

수시충(수시전형 입학생), 지균충(지역균형전형 입학생), 편입충(편입학생), 분교충(분교생) 등. 정시모집으로 입학하지 않았거나 분교 출신인 이들은, 종종 '벌레'(蟲)의 자리로 밀려난다. '분교'는 원래 고등교육법상 타교(他校), 즉 '다른 학교'가 아니라, 특정 학교의 설립자·경영자가 교육부 장관의 인가를 받고 설치하는, 말 그대로 분교된 캠퍼스다. 굳이 따지자면 '본교-분교'의 관계이지 'A 대학과 B 대학'의 관계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차별은, 20대가 '수능점수'라는 빈약한 공정성의 잣대를 진리처럼 떠받든다는 데서 시작된다. '조려대'(고려대 조치원) '원세대'(연세대 원주) 등 지역캠퍼스의 위치를 일부러 부각해 서울캠퍼스와 '다른 대학' 취급하는 기호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수도권대와 지방대를 가르는 오랜 심리선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여기에는 일방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배치표 상의 최상위 대학부터 최하위 대학까지, 정시 출신부터 분교 출신까지, '잘 나가는 학과'(경영·특성화)부터 '못 나가는 학과'(인문·예체능)까지…. 촘촘한 '학력 위계 주의(덧붙이는 글 참조) 카스트'가 있을 뿐이다.

'차별하는 20대' 그 여섯 가지 심리

기자가 즐겨 참조하는 네이버 인기 웹툰 <복학왕>의 한 장면. 지방대생 우기명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기자가 즐겨 참조하는 네이버 인기 웹툰 <복학왕>의 한 장면. 지방대생 우기명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 기안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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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사회과학 연구원 오찬호 박사는(사회학), 2013년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출간하기까지 20대의 사례 2000여 명을 수집했다. 더불어 이를 정량화하고, 100여 명으로 추려 직·간접적인 인터뷰를 실시했다. 인터뷰에는 '인서울대생'들이 다수 참여했고, 이들은 대부분 지방대생에 대한 편견을 지녔다. 오 박사는 인서울대생들에게 끈질기게 '지방대생과 인서울대생의 실제 학문 역량을 객관적 차이로 입증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인서울대생들은 주로 자신의 간접경험을 거론하며 주장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가령, 지방대생들은 ①'줄곧 연예인 이야기만을 한다' ②'강의시간에 자주 지각한다' ③'강의시간에 졸거나 취식을 한다' ④'지하철에서 스마트폰 게임만 한다' 등. 대부분 전공 역량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근거들을 들었다.

"정확히 조사해본다면, 시사 상식의 정도나 강의실 분위기에 따라 … 실제 역량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 하지만 문제는 … (현재 학생들의) … 판단이 고정관념에 기초한다는 사실이다. … 흑인들 혹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범죄율이 높다는 사실에 근거해, 그들을 애초부터 범죄자 취급하고 별다른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정말로 그들은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우차찬> 135~136쪽)

그렇다면 20대는 왜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서로를 밀어내려는 걸까. 오 박사는 "자기계발 시대를 사는 개인들의 특성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그래서 편견을 버리지 못하며, 이로 말미암아 스스로도 이 메커니즘을 생산하는 과정에 동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차찬>에 대해서는 이미 다수의 리뷰가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우차찬>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차별에 찬성하는 청년들의 주요 심리 여섯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괄호에는 심리의 명칭과 주창자들을 넣었다. 다른 유사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따라서 한 번에 읽기보다는, 공유해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읽어보기를 권한다.

왼쪽부터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왼쪽부터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 개마고원(좌), 사월의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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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당연히 보상이 있어야죠'(인정투쟁 - 철학자 악셀 호네트)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어느 정도 서로의 인정이 필요하다. 인정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으며, 수능 고득점에 따르는 보상도 인정일 수 있다. 인정을 못 받고 무시를 당한다면, 종종 '나를 존중해달라'는 인정투쟁으로 전개되고 그것은 때때로 사회의 진보를 이끈다.

하지만 호네트는 방향 설정을 잘해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지향할 만한 사회란, 다양한 인정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가령 '수능점수'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다른 전형 혹은 삶의 방식들의 맥락을 손쉽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정욕구와 우월욕구는 구분되어야 한다. 수능에서 A가 B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A의 인격도 B보다 우월한 건 아니다. B는 다른 분야에서 성실하고 탁월할 수도 있다.

② '지방대생과는 급이 다르죠!'(노력 정당화 효과 - 심리학자 엘리엇 에런슨)

우월욕구는 과시와 연동된다. 특히 큰 고생을 한 사람일수록('남들 놀 때 저는 엄청나게 고생했다고요' 등), 자신의 노력을 더욱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생이 시험 '단 한 번으로' 남은 평생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라면, 시스템 자체와 과거 성과에 집착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좀 문제가 있는 것이다.

③ '세월호는 그냥 교통사고 아닌가요?'(평범 서사 - 아르스프락시아 연구원 김학준)

왜 20대는 수능성적에 집착하며, 서로를 멸시하기까지 할까. 단순히 우월욕구에서 비롯되는 문제라면, 과시 선에서 끝나야 한다. 우월욕구가 멸시로 이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생존 불안감'이다. 불안이 팽배한 사회에서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 '모든 건 자기 노력 탓'이라는 식의 자기계발론이 개입하면, 공감에 무감각해지게 된다.

즉 '누구나 고통 하나쯤 있다, 그러므로 고통은 평범한 것이고 평범한 고통을 이유로 호소하는 것은 반칙이다'라는 식의 의식흐름이다. 이때 기회균등 선발제나 세월호 특례 입학은, '입 닥쳐야 할 징징거림'이 되고야 만다. 이 지점에서 '가해자'로서의 20대가 탄생한다(관련 기사 : "자기계발서 읽었다는 건 '낚였다'는 뜻").

④ '수능은 그래도 가장 공정한 제도입니다' (인지 부조화 -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

수능이 반드시 공정한 제도가 아니다. 사교육 때문에 그렇다. 강남 3구 출신들은 이른바 '명문대'에,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진학하는 경향이 있다. 더불어 분교로 입학한 학생이 본교 학생들과 함께 공부한 끝에, 수석 장학금을 타는 사례도 보고된다. 수능 성적이 곧 실제 대학수학능력과 일치하지 않는 셈이다. 즉, 수능이라는 평가도구에도 문제는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 명백히 기존의 신념에 반하는 증거들을 접할 때, 여기서 생기는 심리적 불편함을 줄이려고 애를 쓴다. 그 과정은 도리어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일쑤다. 즉 '한 번 좋게 보면 끝까지 좋게 보고 한 번 밉게 보면 끝까지 밉게 본다'는 얘기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광신도 집단에서 강하게 관측된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쉽게 말해, '정신승리'다.

⑤ '대자보 좀 떼어내세요!' (공포관리이론 - 심리학자 제프 그린버그)

문제는 기존의 체제에 비판이라도 가할라치면, 이를 '못 견뎌' 하는 것도 요즘 20대들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가령 2010년 D대학 동아리 성추행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 소식은 다음(DAUM)과 디시인사이드 등의 커뮤니티에 알려졌다.

당시 해당 대학 학생들 일부가 이를 알게 되면서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결이 좀 독특했는데 '수시전형 기간이라 학교의 명예가 실추될 것 같으니 대자보 좀 떼달라'는 반응이었다. 이 정도는 차라리 애교(?) 수준이다. 필자는 대학에 있으면서, 최근까지 반기업적 논조의 대자보들이 찢겨나갔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접한다.

이러한 현상은 상품화된 대학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생존 불안이 팽배한 사회일 수록, 사람은 어떤 문화적 상징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에 과몰입을 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를 공포를 관리하려는 태도, 즉 '공포 관리'라고 한다. 하지만 "D대에 좀 이상한 말이 돌더라. 거기 학생들도 문제 있는 거 아니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문제가 있다.

⑥ '그래서 저항으로 바뀐 사례가 있나요?' (현상유지편향 - 심리학자 윌리엄 새뮤얼슨)

이렇게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을 해도, 자기계발론은 이미 20대의 마음을 상당히 잠식했다. 그래서 더더욱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 변화를 시도했다가 볼 손해가 현상을 유지했을 때보다 더 커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주변 정황(대세)이나 본인의 감정과 같은 비합리적 요소에 따르는 선택이다. 이쯤 되면, 역사 속에서 민중이 저항으로 변화된 사례를 들어도 마음을 바꿀 의사가 없는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차라리 '구세주'이다. 근사한 멘토들이 설파하는 자기계발론을 대체할 어떤 '압도적인 대안' 말이다.

만약 이 단계를 못 벗어나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런 식으로 말할지도 모르겠다. 씁쓸하게도.

"그래서, 기자는 어디 대학 출신임?"
"명문대부터 가보고 이런 말을 하던가!"

덧붙이는 글 | 이것은 과거 '학벌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학벌주의는 카르텔 공동체를 형성하며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연고주의적 습속이 강했다. 하지만 개인화·파편화된 요즘 청년들에게는 '뭉친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다. 학력위계주의는 과거 대학을 나왔는지 여부 정도만 따지던, '학력주의'보다도 더 심화된 현상이다.



태그:#학력위계주의, #정시모집, #훌리건, #헬조선, #노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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