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탄가스!!" 어질어질... 나는 쓰러졌다.
 "연탄가스!!" 어질어질... 나는 쓰러졌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왜 그래? 무슨 일이에요?"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저는 엄청난 두통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아, 머리야…."

엉거주춤 서 있던 자세 그대로 뒤로 자빠졌습니다. 뒤통수가 거실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내 귓전에 들리는 소리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큰고모와 아버지, 형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단지 느낄 수 있었던 건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된 것 같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뭔가에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몸에 힘을 주려고 했지만, 내 몸은 물에 흠뻑 젖은 이불처럼 무거웠고, 전혀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언뜻 현관문이 보입니다. 다시 눈이 감겼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귀에서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쉬이익!'

뭔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밤새 내 몸을 휘감고 있던 불쾌하고 음산한 기운이 코와 입을 통해 나가고 있었고, 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함을 넘어 황홀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현관 문 앞에서 몇 분을 누워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침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는 나의 폐와 심장을 열고 혈액 속으로 들어가 온몸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이렇게 새로 공급된 산소는 모세혈관을 통해 피부를 뚫고 나와 8시간 가까이 죽어가던 내 코와 입에게 새로운 숨통을 열어줬습니다.

1988년,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맨션'

 춘천연탄은행으로부터 연탄을 지원받는 한 연탄 수급자의 아궁이에서 활활타고 있는 연탄.
 활활타고 있는 연탄(자료사진).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숫자 '8'이 두 개가 붙어서 '팔팔하게 살아보자'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독재에 맞서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축제인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1980년대 초반부터 주거문화를 대체하기 시작한 아파트는 '제2의 고향'인 대전에도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새벽에 일어나 부엌에서 솥단지 가득 물을 끓이던 어머니. 우리 4남매가 일어나면 바가지에 뜨거운 물을 한 그릇 퍼주고 물을 끌어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저와 형제들은 제 키만한 수동 '뽐뿌'(펌프)에 물을 붓고는 힘차게 '뽐뿌질'을 합니다. 그러기를 1분이 채 안 되자 얼어붙은 '뽐뿌'는 차가운 지하수를 뽑아냈고, 우리들은 칼바람을 맞으며 수돗가에서 고양이 세수를 했습니다. 이것이 충청남도 금산에 살던 우리네 겨울 아침 풍경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대전에 있는 아파트에 살게 됐습니다. 촌놈에게는 별천지였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아파트. 지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연탄보일러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새벽에 일어나 솥단지 한가득 물을 끓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손을 호호 불며 "뽐뿌질'을 안 해도 따뜻한 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보일러는 안방과 우리 방에 골고루 온기를 전해줬습니다. 더 이상 집에서 아랫복에 밥그릇을 놓고 이불을 덮지 않아도 됐습니다. 볼일 보러 갈 때, 점퍼를 입고 오들오들 떨며 재래식 변소 아래에서 올라오는 찬바람에 엉덩이를 노출하지 않아도 됐지요.

어머니의 죽음에 이은 연탄가스 중독​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1988년,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습니다. 큰 마음을 먹고 대전의 단독주택으로 이사왔던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시 이사를 갔습니다. 대전으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있는 살림을 보는 게 힘들었던 아버지는 고모, 큰댁과 상의한 뒤 대전 가양동의 '○○맨션'으로 이사했습니다. '○○맨션'은 당시 그 동네에 두 번째로 지어진 유서 깊은(?) 아파트였습니다.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파트 문화에 적응하려니 이것저것 새로웠습니다. 사실 편했던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겨울엔 시골에 살 때처럼 8시간 단위로 연탄을 갈아줘야 했지만, 그렇게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2월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우리 4남매는 큰고모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TV를 보다가 연탄을 갈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작은 방은 두 개였는데 연탄보일러 옆방은 저와 남동생이 쓰는 방이었습니다. 밤이 깊었지만 꿈을 꾸다 자주 깼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보였습니다. 보고 싶었던 어머니와 이야기도 하고 어딘가를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잠을 깼습니다. 속이 메스껍고 불쾌했습니다.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했습니다. 여러 가지 꿈이 교차했지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밤이 무척 길었습니다. 창문 너머 어슴푸레 새벽이 오는가 봅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몸이 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동생이 일어나서 화장실로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쿵" 하더니 아버지 소리가 들립니다.

"허허, 왜 그랴?"

큰고모도 한 말씀 하십니다.

"야가 왜 이렇게 힘이 없댜? 눈 좀 떠봐!"

이 말이 끝나자마자 더 커다란 소리로 '꽈당'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건넛방에서 형이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봅니다. 거실은 난리법석입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몇 분 힘을 준 끝에 방문을 열었습니다. 동생이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고 아버지와 큰고모 그리고 형은 동생을 일으키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터져 나오는 기지개를 켜며 물었습니다.

"뭔 일 있어요?"

이렇게 묻는 순간, 엄청난 두통이 머리를 후려쳤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자세 그대로 뒤로 자빠졌습니다.

연탄가스 중독 후유증... 모든 냄새에 민감해졌다

"연탄 가스인가벼!"

큰고모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와 형은 저와 동생을 질질 끌고 현관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맡게 했습니다. 시원했습니다. 아침 공기가 이렇게도 달콤하고 상쾌한 줄 몰랐습니다. 귀에서는 연탄가스가 내 몸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코로 내뱉는 공기에서도 가스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과 제가 밤새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메스꺼웠던 것, 깊은 잠을 못 자고 뒤척였던 것은 바로 연탄가스 때문이었습니다. 오후 11시에 잠들어 다음날 7시에 일어났는데, 그 사이 8시간은 마치 미지의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길고 또 길었습니다. 만일 연탄가스에 노출된 시간과 양이 더 많았다면 우리는 그 길고 긴 터널을 지나 어머니 곁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테지요. 동생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한 번 넘어지고 거실로 기어 나왔다가 또 한 번 쓰러졌답니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보낸 지 1년도 채 안 돼, 두 아들이 연탄가스로 응급실 신세를 진 것을 본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어지간한 구두쇠 소리를 듣던 아버지도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으셨습니다.

자식들마저 먼저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었던 다급함에 큰돈을 들였습니다. 연탄보일러를 없애고 기름보일러로 바꾸셨지요. 기름보일러는 시간마다 연탄을 갈아주지 않아도 되니 좋았습니다. 더구나 베란다 한편에 쌓아두었던 연탄 공간이 사라지니 더 넓고 쾌적해졌습니다.

울산 장생포에 있는 고래문화마을 어릴 때 해마다 11월이 되면 연탄 1천장을 주문해서 창고에 쌓아두었습니다. 읍내에서 한 시간 걸리는 우리 마을까지 오려면 동네 사람들과 협의해서 1만장 정도를 함게 주문해야 올 수 있었습니다.
▲ 울산 장생포에 있는 고래문화마을 어릴 때 해마다 11월이 되면 연탄 1천장을 주문해서 창고에 쌓아두었습니다. 읍내에서 한 시간 걸리는 우리 마을까지 오려면 동네 사람들과 협의해서 1만장 정도를 함게 주문해야 올 수 있었습니다.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올해가 2015년이니 그때로부터 27년이 지났습니다. 전 지금도 연탄가스 냄새나 가스레인지 냄새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연탄불로 구워주는 고깃집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시로 콧등을 찌르는 강한 가스 냄새가 싫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모든 종류의 냄새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음식이든 아니든, 무언가 손으로 만지는 것은 기어코 냄새를 맡고 나서야 안심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볼펜, 아이들 장난감, 책, 심지어는 해변에서 예쁘장한 몽돌을 주울 때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습니다. 습관이 돼버렸습니다.

연탄가스 중독은 1970~1980년대에 많이 일어났던 사고지요. 그러나 요즘에도 종종 기삿거리가 되곤 합니다. 도심의 달동네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세대들은 아직도 연탄이 중요한 난방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연말연시 연탄 배달이 훈훈한 미담이 되는 이때, 취약계층을 돌보아주는 기관은 연탄으로 인한 가스 누출도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요.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공모 '응답하라 1988' 응모글입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