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제뉴스를 주로 쓰는 시민기자다. 올해 내가 쓴 기사 가운데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불치병을 안고도 존엄사를 선택한 미국의 5살 소녀의 이야기였다(관련기사 :
'병원 대신 하늘나라' 5살 딸 결정에 따른 엄마).
소녀의 엄마가 한국계 가족이어서 반향은 더욱 컸다. 포털 사이트 첫 화면에 걸렸고, 다른 언론사들도 비슷한 기사를 내놓았다. 독자들은 소녀와 가족의 사연을 안타까워했고, 존엄사를 두고 논쟁을 벌이며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때까진 아주 좋았다.
큰사진보기
|
▲ 희귀 불치병을 앓고 있으나 병원 치료를 거부한 5세 소녀 줄리아나 스노우의 사연을 소개하는 CNN 뉴스 갈무리. |
ⓒ CNN | 관련사진보기 |
갑자기 편집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전화를 건 편집기자는 'CNN 기사 원문에 소녀 엄마가 한국에 입양됐다는 내용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그 내용은 원문 기사가 아닌 소녀 엄마의 블로그를 보고 추가한 내용이었다. 알고보니, 의사인 소녀 엄마가 한국계 환자를 치료하며 쓴 일기 내용을 잘못 읽은 것이었다. 소녀 엄마는 입양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게 맞았다.
독자 지적을 받고 편집부에서는 확인 결과 내 기사의 내용이 맞다면 CNN에 정정보도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뉴스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농담이었다지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기사는 연재소설이 아니기에, 99개의 기사를 잘 쓰고도 1개의 기사가 잘못되면 공든탑이 무너진다.
시민기자로 <오마이뉴스>에 국제 뉴스를 쓴 지 10여 년. 이런 나의 흑역사를 고백하는 건 국제뉴스의 출발은 정확한 번역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기사 전체가 잘못된다.
항상 정확한 번역을 위해 노력하지만, 실수가 나올 때도 있다. 가능한 그러지 않으려고 늘 긴장하고 고민하며 기사를 쓴다. 편집부는 시민기자들이 쓰는 단순 외신 번역 기사는 채택하지 않는다. 이런 기사는 통신사 속보에서도 밀린다. 시민기자들이 굳이 쓸 필요가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국제뉴스를 쓸 때 사건의 배경과 분석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기사를 쓰려고 노력한다(편집부에서도 그런 기사를 더 환영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뉴스를 다루는 과정과 약간의 팁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공부하듯 쓰는 국제 뉴스나는 원래부터 나라 밖 소식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다닐 때 정치외교학이나 언론학을 전공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일 외신 기사를 꾸준히 탐독했다. 어릴 때 해외여행을 자주 다닌 영향이 컸지만 다른 나라 사회와 사람들의 문화·사고방식·역사·정치 등을 배우고, 우리나라의 장·단점과 비교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국제뉴스를 읽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쓰기까지 하면 개인적으로 엄청난 공부가 될 수 있다. 가령, 아르헨티나 대선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하자. 단지 외신에서 보도한 어떤 후보가 나와 얼마큼 득표를 해서 당선됐다는 것을 넘어, 그 나라의 개황을 조사하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
또 한 가지. 국제뉴스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나라 밖 정치·사회·경제·스포츠·문화 등 모든 것이 기사가 된다. 그때문에 국제뉴스를 쓰기 위해서는 기사 작성보다 더 많은 시간의 조사가 필요하다.
종종 시민기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국제뉴스를 잘 쓸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기본적인 외국어 실력은 기본이다. 외신 기사나 인터뷰어가 말하고 있는 맥락이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실 관계가 틀리거나 왜곡되지 않은 기사를 쓸 수 있다.
외국이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우리말 실력이다. 독자들이 보는 국제뉴스도 결국 한글로 쓴다. 모든 독자의 외국어 실력이 출중하다면 국제뉴스를 쓸 필요가 없다. 외신을 직접 보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말 어휘력이 풍부하고 문장력이 뛰어날수록 외국어를 번역하기도 편하고 매끄러운 기사가 된다. 외화 번역가의 중요한 덕목이 뛰어난 우리말 실력이라고 하지 않은가.
끝으로 의역의 문제. 개인적으로 번역할 때 약간의 의역은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직접 외신을 읽고 끝내는 것이라면 직역해도 되지만, 이를 번역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 경우엔 의역이 더 효과적이다.
특히 영어는 우리말과 문장의 구조가 달라 의역을 해야 더 매끄러운 문장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일본어의 경우 한자어를 쓰기 때문에 의역의 여지가 없을 때가 더 많다. 서로 다른 사람이 번역해도 마치 베낀 것처럼 똑같은 문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보가 아닌 이미지와 스토리를 보여준다 먼저 어떤 기사를 쓸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국제뉴스는 세상의 크기만큼이나 다양하다. 범위가 넓고, 사건도 많아서 꽤 긴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사의 중요성, 시의성, 우리나라와의 관계, 흥미 등을 골고루 고민한다.
국제뉴스는 사실 전달이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독자에게 사건의 배경, 원인, 결과, 전망 등을 모두 전달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정보 제공을 넘어 나라 밖 세상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주기 때문에 이런 구성은 더욱 중요하다.
이럴 때는 노트에 미리 기사 전개 과정을 구상한다. 왜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됐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그리고 왜 중요한지, 더 나아가 앞으로의 전망 등을 문단으로 나누어 미리 내용을 결정한다.
각 문단의 내용이 정해졌다면 이제 기사를 쓴다. 문장은 최대한 짧게 끊어 쓰는 것이 좋다. 그러면 나중에 빠뜨린 내용을 보태기도 좋고, 읽은 사람의 호흡도 가볍다. 하지만 모든 기사를 다 이렇게 쓰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매끄러운 문장을 써야 하고, 특히 조사(助詞)를 선택할 때 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기사를 너무 길게 쓰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나 강의도 길어지면 지루하고, 내용을 기억하기 어렵다. 나 역시 다른 기사를 볼 때 너무 길면 읽기 전부터 부담스럽다.
국제뉴스에서 더 빛나는 '사진'기사를 짧게 쓰면서 주제를 최대한 강렬하게 전달하는 도구는 뭘까. 그렇다. 바로 사진이다. 나는 잘 쓴 긴 글보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훨씬 더 좋은 기사라고 생각한다. 국제뉴스를 쓸 때 사진을 꼭 곁들이려는 이유다. 어떤 사진을 넣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기사를 작성할 때 드는 시간보다 더 길 때도 있다.
특히 국제뉴스는 나라 밖 소식을 전하기 때문에 더욱 생생한 내용 전달을 위해 사진의 역할이 크다. 베트남전에서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울부짖는 소녀 킴 푹, 터키 해변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소년 쿠르디 등 세상을 움직인 것은 문장이 아니라 사진이다.
꼭 보여주고 싶은 사진이 있어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주제가 뚜렷한 좋은 사진이 있고, 3~4문단으로 간단한 설명만 곁들여도 그 자체로 훌륭한 국제뉴스가 될 수 있다. 오히려 불필요한 글이 사진을 망칠 수도 있다.
사진을 곁들일 때는 사진 자체만 올리는 것보다 외신 홈페이지를 그대로 갈무리하는 경우가 더 효과적일 때도 많다. 외신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사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만으로 이 사건의 중요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뉴스를 쓸 때면 외국인, 제3자의 눈으로 그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나, 혹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관점을 덧씌우지 않으려고 한다. 앞서 말했듯 국제뉴스는 정보를 넘어 이미지를 전달한다. 기사 하나로 한 국가에 대한 호감 또는 편견을 갖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일본 혹은 이라크 등의 이미지는 국제뉴스를 통해 얻어진 것 많다.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국제뉴스가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