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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노사정 일자리창출 서울협약 체결식. 왼쪽부터 김현상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이정원 서울메트로 사장, 박태주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
 지난 1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노사정 일자리창출 서울협약 체결식. 왼쪽부터 김현상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이정원 서울메트로 사장, 박태주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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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대한민국의 2015년 12월, 노사정 관계도 바싹 얼어붙어있다. 경제성장의 벽에 부딪친 정부는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었고, 노동계는 '노동개악'을 저지하겠다며 민중총궐기를 열었으나 차벽과 물대포에 막혔다. 그리고 이를 이끌었던 민주노총 위원장은 구속도 모자라 1980년대에나 들어봄직한 '소요죄'가 적용됐다.

그러나 그와 달리 노사정 사이에 따뜻한 훈풍이 불고 있는 곳도 있다. 바로 서울시가 그렇다.

이같은 분위기를 촉발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정년 60세 연장과 함께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임금피크제' 덕분(?)이다.

아버지 임금 깎아 아들 일자리 만들어라?

행정자치부는 지난 7월 지방공기업에 대해 임금피크제 도입 권고안을 통보했다. 상시 300명 이상 사업장은 내년부터, 300명 이하 사업장은 내후년부터 도입하라는 것이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연장해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그들의 임금을 깎는 것으로, 행자부는 그 돈만큼 청년들을 신규 채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지방공기업에게 '장년고용유지+청년고용' 1쌍 당 540만 원의 상생고용지원금을 2년간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도 있지만, 도입하지 않는 기업은 경영평가를 낮게 주거나 성과급을 안 주고 임금인상률을 낮추는 등으로 시행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지방공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 해소, 근로자의 고용 안정,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 등에 두루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행자부가 밀어붙이는 권고안대로 설계할 경우 목표했던 일자리 창출은 신통치 않고 대신 세대간 갈등만 심해진다는 것이다.

서울노동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 행자부 권고안대로 하면 임금피크제로 인해 발생하는 신규채용인원이 최초 2년간만 세자리수이고 5년 후인 2020년에는 단 7명으로 급감해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예정자를 신규채용 목표인원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떠들썩하게 임금피크제를 시행해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서 5년 동안 그로 인해 생기는 전체 일자리가 891개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를 중·장년층의 고용유지나 정년연장으로 인한 문제로 판단해 세대간 갈등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아버지의 임금을 깎아 아들을 취업시키는 격이기 때문이다.

사측과 협의해 일자리 창출을 주도해나가야 할 주체인 노조가 시행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자칫 노사관계의 파탄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울시가 임금피크제를 넘어 이를 보완하는 종합적인 일자리 창출방안을 마련하기로 나선 이유다.

임금피크제 시행은 노사에 맡기고, 일자리창출은 함께 고민

지난 15일 체결된 노사정서울협약서.
 지난 15일 체결된 노사정서울협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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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이정원 서울메트로 사장, 김현상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박태주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장 등이 모여 7개항의 '노사정 서울협약'을 맺었다. 서울시와 19개 투자, 출자·출연기관 노사 대표가 지난 9월 이후 수 차례 소통하고 협의해 이끌어낸 '서울형 일자리 창출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우선 서울시 노사정은 임금피크제의 시행시기를 노사 합의로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가 2016년을 시행시기로 못박고 있지만, '사실상 강제'라는 노조의 주장에 시측이 관여하지 않고 노사의 자율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이 협약에서 19개 공기업들은 내년 임금피크제와 정년퇴직으로 발생하는 신규채용인원 1010명을 청년일자리로 채용하기로 했다. 법적 청년의무고용 인원인 '정원의 3%(660명)'보다 346명이나 많은 숫자다.

임원들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연봉의 5%를 반납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 종잣돈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새로 만드는 일자리는 양질의 일자리여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청소용역과 시설·경비 등 비정규직 근로자 1400명을 2017년까지 단계별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시민들의 안전·생명과 관련된 사업은 직영화하기로 했다.

또 퇴직 예정자들을 위해 1인당 최대 200만 원을 지원해 이들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을 통해 제2인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고령화사회의 도래에 따라 청년뿐만 아니라 퇴직자들의 고용문제도 중요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약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노동시간 단축' 조항이다. 임금이 줄어든 만큼 일을 적게 하는 게 합리적이고 장시간 근로 관행을 타파할 수 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들게 되니 노동계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 창출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 내년에 시행방안 도출"

협약을 중재한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의 박태주 위원장(고용노동연구원 교수)은 노동시간 단축의 도입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다.

"협약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입니다. 그래야 (임금피크제에 적용되는 노동자들의) 임금 총액은 깎이지만 시간당임금은 안 깎이죠. 정년을 앞두고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 은퇴준비도 할 수 있고요. 일을 적게 하면 신규채용자가 들어와서 그 자리를 메꿔줘야 하니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습니다."

'주48시간 상한제', '연월차휴가 점진적 소진', '시간외근무의 축소', '교대지 변경' 등 노동시간 단축의 시행방안까지 논의가 됐지만, 이번 협약서에는 넣지 못하고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내년으로 미뤘다.

이번 협약을 타결짓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간담회를 가졌다고 강조한 박 위원장은 "시와 사측은 '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좋은'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고, 노측은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노력 등 쉽지 않은 부분에 많은 양보를 해줘 협약을 맺을 수 있었다"며 "내년에도 노사정이 합의를 통해서 세부 이행방안을 마련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상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이 기존 직원의 고용과 임금의 유연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가짜 개혁이라면, 이번 협약은 진짜 일자리개혁"이라며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효적 의미를 지니기 위해 향후 시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노사정서울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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