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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강제 축출된 동아투위 위원들은 6개월 동안 출근시간에 회사 앞에 도열한 뒤 신문회관 혹은 종로 5가 기독교회관까지 침묵시위를 벌였다.
 1975년 강제 축출된 동아투위 위원들은 6개월 동안 출근시간에 회사 앞에 도열한 뒤 신문회관 혹은 종로 5가 기독교회관까지 침묵시위를 벌였다.
ⓒ 동아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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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독재에 맞서 언론 자유를 외치다 거리로 쫓겨났던 언론인들이 마침내 국가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부장판사 신광렬)는 권근술 전 <한겨레> 사장 등 해직언론인 12명과 고 성유보 선생 유족 3명이 제기한 국가배상금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피고(대한민국)는 원고들에게 각 1000만 원씩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유족들에게 원고 자격을 넘기지 않고 사망한 채로 원고 명단에 이름 올린 고 김진홍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소송 제기가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독재정권 비판한 죄'로 쫓겨난 언론인들

고 성유보 선생 등은 1974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아래 동아투위)'를 결성, 그해 10월 24일 박정희 정부의 보도 통제와 언론인 연행 등에 항의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곧바로 기업에 '앞으로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고, 무더기 광고 해약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이듬해 사측은 경영 악화를 내세워 기자 18명을 해고했다. 추가 해임과 무기한 정직은 1975년 6월까지 이어졌다.

거리로 내몰린 기자, PD, 아나운서와 그의 가족 등 139명은 대량해고사태에 정부가 개입했다며 2009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들의 주장대로 국가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봤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1·2심 재판부는 동아투위 사람들이 늦어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된 2004년으로부터 3년 또는 5년 안에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며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지난해 12월 24일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해직언론인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 결정 이후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하리라 믿었는데, 국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신의성실의 원칙 위배)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미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금이나 생활지원금을 수령한 원고들은 해당하지 않았다(관련 기사 : '동아투위' 사람들, 40년 만에 국가배상금 받을까).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기준에 따라 정해진 해직언론인 14명을 두고 사건을 다시 살펴봤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동아일보>가 '1974년 백지광고 사태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진실·화해위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관련 기사 : 또 다시 국가에 '면죄부' 준 대법원).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정부가 동아일보사에 압력을 행사, 언론인 대량 해직을 유발했는지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국가는 이 판결을 근거로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11일 법원은 정부가 동아일보 대량해고사태에 영향을 미쳤음 인정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정부가 동아일보사에 노골적으로 언론인들의 해임을 요구하진 않았지만 당시 중앙정보부 이용택 국장, 여당 정책위원회 박준규 의장, 외무부 김동조 장관 등이 광고탄압과 연관 있는 발언을 했고, 광고탄압은 대량해고사태 이후에 끝났다고 지적했다. 결국 광고탄압 기획부터 실행, 결말까지는 정부 의도대로 이뤄졌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동아투위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려온, 41년 만의 첫 승리였다.

41년 만에... "대량해고 낳은 광고탄압, 국가 의도로 이뤄져"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유신독재정권이 저지른 언론탄압을 인정한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했다. "국가가 해직언론인들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뿐 아니라 박정희 정부와 동아일보사의 대량해고 자체를 인정했다는 의미도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다만 "지난해 대법원이 이미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지급받은 해직언론인들의 패소를 확정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동아투위는 민주화운동 보상금 문제는 헌법소원을 청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았다며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해직언론인을 위한 대응책도 고민 중이며 대량해고 때 긴급조치 위반으로 처벌받은 이들의 국가배상금 청구소송 상고심도 준비하고 있다(관련 기사 : 우울한 패소 소식만 잇따른 동아투위).


태그:#박정희, #동아일보, #동아투위, #백지광고, #언론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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