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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살아온 쪽방에서 쫓겨난 K씨 "억울해서 단식"

남대문로5가 안전진단을 이유로 사전에 퇴거하도록 공고문이 쪽방 건물에 붙었다. 이에 개발사업에 따른 세입자 보상에게 제외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남대문로5가 안전진단을 이유로 사전에 퇴거하도록 공고문이 쪽방 건물에 붙었다. 이에 개발사업에 따른 세입자 보상에게 제외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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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60대 기초생활수급자인 K씨는 11년을 살아온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에서 쫓겨났다. 추석 무렵부터 '안전진단'을 이유로 '10월 말까지 퇴거하라'는 안내문이 붙으면서, 건물관리인의 '나가라'는 말 한마디에 쪽방에 사는 이웃들은 하나둘 짐을 싸고 또 다른 쪽방이나 혹은 거리로 떠나야 했다.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고 생각한 K씨는 홀로 퇴거요청 시한을 넘겨 버텨 보았지만, 곧 건물에 단전·단수가 진행됐다. 결국 그는 다른 쪽방을 구할 때까지 열흘간 서울역에서 노숙을 해야 했다. 억울했던 K씨는 10일간의 노숙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단식'을 했다고 한다. 단식 후, 건물주를 찾아가 욕을 한 바가지 하는 것으로 억울함을 달래고서야 K씨는 지인에게 돈을 빌려 또 다른 쪽방으로 이사했다.

남대문로5가 253번지 일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30년을 살며 부대껴온 260여 명 쪽방 주민들은 한 장의 '안전진단 공고문'과 '나가라'는 말 한마디에 뿔뿔이 흩어졌다. 해당 지역에 '남대문로5가 도시환경정비사업'이라는 개발사업의 사업시행인가가 11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에 법적 세입자 보상에서 쪽방 주민들을 제외하기 위해 안전진단을 핑계로 사전에 쫓아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2011년 12월에 정비구역 지정되었기에 그 이전부터 거주했던 K씨를 포함한 주민들에게 주거 이전비와 이사비·임대주택 입주 등의 대책을 줘야 했다. 하지만 쪽방촌 주민들에 의하면, 몇 푼의 이사비조차도 "똑똑한 사람들이나 받았지, 안 그런 사람은 못 받고 쫓겨났다"고 한다.

가난한 이들의 삶이 밀려난 그곳에는 어느 신탁회사가 들어섰다. 해당 회사는 650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업무시설과 판매시설·국제회의장을 갖춘 지하 8층·지상 28층의 쌍둥이 빌딩을 짓는다고 한다.

공익적 목적의 사업에 해당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인허가권자인 중구청은 쪽방 주민들의 대책 없는 강제퇴거에 관해 "건물주와의 합의를 통한 이주였다"며 '사인 간의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정보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쪽방주민들에게, 그들의 정당한 법적 권리조차도 알려주지 않았다. 구청의 외면 아래 주민들은 속절없이 쪽방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중구청은 관련한 질의에 "주민들의 이주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 등을 안내하며 이주를 도왔다"고 답변했지만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의 시행자인 LH공사에서는 물량 부족의 이유로 관련 접수를 하지 않는 상황이고, 이주는 거의 없었다. 또한 '노숙'을 위기사유로 포함한 긴급복지지원조차 중구청은 2012년 3월부터 2015년 12월 현재까지 3년이 넘도록 단 3건만 지원한 현실을 봤을 때 전혀 적극적인 지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쪽방촌 '소멸'보다 '공존 방안' 찾아야

남대문로5가 쪽방촌 개발로 강제퇴거 당하는 주민들을 중구청은 외면했다. 이에 중구청을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남대문로5가 쪽방촌 개발로 강제퇴거 당하는 주민들을 중구청은 외면했다. 이에 중구청을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최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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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시 쪽방 지역은 종로·중구·용산구·영등포·동대문구의 13개 소지역에 밀집해 있으며, 약 3600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도시환경정비사업과 같은 개발사업뿐만 아니라, 건물주의 이윤 확대를 위한 고급화 전략에 의해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리모델링되면서 쪽방촌은 하나둘 소멸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이 소멸할 뿐, 소멸할 수 없는 사람들은 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밀려나고 있다.

비록 열악한 주거환경이지만 쪽방은 '탈 노숙'을 지원하는 디딤돌로 노숙을 예방하는 역할을 해냈다. 비좁지만 약 한 평의 공간을 통해 쉼과 위안을 받는 공간,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아도 이웃과 함께 삶을 영위하는 공간인 셈이다. 거리 홈리스가 주거를 얻기도 쉽지 않지만, 유입 가능성이 높은 쪽방의 역할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쪽방 지역의 재생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실시하기 위해 업무지구 중심의 쪽방 지역 개발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도심 내 빈곤층의 주거지와 공존하도록 전환하는 장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용도 변경으로 사라지는 쪽방에 관한 대책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공공이 쪽방 소유자의 재산권 행사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면, 해당 건물 내지 동일 쪽방 생활권 내 토지 또는 건물을 매입해 쪽방의 긍정적 기능을 살린 저렴한 주택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억울함에 홀로 곡기를 끊었던 K씨는 이제 또 다른 쪽방에서 새로운 삶과 만남을 시작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쪽방 소멸'의 방식이 계속된다면, 그가 옮겨간 쪽방에서 이전처럼 10년 이상을 살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 K씨처럼 소멸될 수 없는 '삶'과 함께 공존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집부자 1위가 2000채가 넘는 주택을 보유하는 극심한 주거불평등 사회에서, 한 평 쪽방을 기꺼이 내어주며 홈리스들이 살만한 주거를 만들어가는 것이 불평등의 기울기를 조금은 바로잡는 공존의 시작일 것이다.

동짓날인 12월 22일, 홈리스 추모제가 서울역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거리와 쪽방 등에서 쓸쓸히 돌아가신 분들의 추모와 더불어 삶의 공간과 공존을 이야기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단식을 했다던 K씨도 그날 "팥죽 한 그릇을 함께 먹으러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2015 홈리스추모제
 2015 홈리스추모제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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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홈리스, #쪽방, #추모제, #쪽방철거,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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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빈곤사회연대, 주거권네트워크, 도시연구소 등에서, 주거권 관련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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