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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백일주의 상품들, 알코올 30%와 알코올 40% 증류주가 있다.
 계룡백일주의 상품들, 알코올 30%와 알코올 40% 증류주가 있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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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에 터잡고 술을 빚고 있는 계룡백일주 양조장을 두어 번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어머니 지복남씨가 며느리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서, 술 이야기도 해주고, 술 빚는 법도 시연해주었다. 반가의 술이라 얌전하고, 술 홍보도 요란하게 하지 않아 그 깊이를 재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그 어머니가 안 계신다. 뵌 지가 엊그제 같더니 작고하신 지가 벌써 7년이나 되었다. 그때 아들 이성우씨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어머니가 말씀하실 때면 그림자처럼 묵묵히 있었다. 충청도 사나이라서 말이 없겠거니 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이성우씨와 길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원체 말없는 분이니께 이해를 해유, 그렇다고 안 반기는 것은 아니니께"라는 말을 충청도 지인에게서 듣기도 했다.

1989년 충남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 명인의 술 
  
찾아온 손님들에게 양조장을 소개하고 있는 이성우 명인
 찾아온 손님들에게 양조장을 소개하고 있는 이성우 명인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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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음식전문가들과 함께 계룡백일주를 다시 찾아갔다. 계룡백일주는 어떤 음식과 어울릴까? 궁금하던 차였는데, 이성우씨는 술을 소개하면서, 집안 안주까지 거침없이 말했다.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다.

어머니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상세하고 담백하게 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술 솜씨도 좋았지만, 음식 솜씨가 더 좋았다고 한다. 귀한 손님이 오면 백일주와 함께 어머니가 내놓았던 안주로 포도곶감말이, 참죽나무순 나물 그리고 소갈비살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술 솜씨는 어머니 솜씨를 70~80% 따라가는데, 아내가 전수 받은 백일주 궁합 안주는 어머니 손맛이 안 난다며 "궁합 안주가 명맥이 끊기는 것이 아녀?" 했다가 아내에게 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내가 행사 때문에 여기 없으니 이런 소리도 합니다라고 했다.

어머니 지복남(1926~2008)씨는 양조장 바로 옆 부드러운 언덕에 잠들어 있다. 이성우씨는 집을 멀리 벗어나 있어도, 부모님이 지켜주겠거니 싶어 편하다고 했다.

계룡백일주 양조장에는 현대식 건물 두 동이 있는데, 한 동에는 사무실과 발효실이 있고, 다른 동에는 증류실과 숙성실이 있다. 두 건물 사이에는 항아리와 소주고리가 있는 장독대가 있다. 우리 일행은 증류기가 있는 건물의 2층에서 계룡백일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성우씨는 연안 이씨 집안, 광해군을 폐위시킨 인조 반정의 일등 공신이었던 이귀의 15대 후손이다. 계룡백일주는 1989년에 충남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고, 그 술을 빚는 어머니는 1994년에는 농림부 지정 명인 제4호가 되었다. 아들 이성우씨는 어머니를 이어 명인 제4-나호가 되었다.

이름에서 공간까지, 짜맞춘 듯 완벽하다

계룡백일주의 재료들
 계룡백일주의 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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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명인은 계룡백일주 재료를 소개했다. 계룡백일주의 재료를 볼 때마다 좀 많다 싶고, 좀 복잡하다 싶었는데, 이 날은 그 재료들이 내 눈에 하나하나 들어오면서 섬광처럼 스치는 게 있었다. 계룡백일주의 재료가 멥쌀, 찹쌀, 솔잎, 진달래꽃, 국화, 오미자인데, 한국 전통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재료들이 여기 모두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국가 대표들이 모인 것처럼.

전통주에서 가장 흔하게, 가장 자유롭게 들어가는 재료가 솔잎이다. 뒷산에 쉽게 볼 수 있는 소나무의 잎은, 약효가 있고, 술의 저장성을 높여주고, 여과하기도 편해서 술에 무람없이 들어간다.

이 땅에서 봄을 대표하는 꽃은 진달래고, 가을을 대표하는 꽃은 국화다. 꽃을 부재료로 빚는 대표적인 술이 봄에는 진달래술 즉 두견주이고, 가을은 국화주다. 현재 가장 각광받는 약재 하나가 오미자다. 오미가 들어있고, 신맛과 떫은 맛이 도드라져 술맛을 독특하게 만든다. 오미자가 들어간 약주로 백세주가 있고, 남원에 약주 황진이가 있다. 남원의 약주 황진이는 전국 대회 품평회에서 거듭 상을 받은 술이기도 하다.

백일주는 백일 동안 발효 및 숙성시키는 기간을 말하며, 백일주라는 이름 자체가 한국 명주를 지칭하는 상징어이기도 하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경주교동법주와 면천두견주, 충남무형문화재인 서천의 한산소곡주, 서울무형문화재인 삼해약주가 모두 백일이 걸리는 백일주다. 백일주라는 이름은 우리 술의 찬사나 다름없다.

공주 계룡백일주 건물과 앞마당
 공주 계룡백일주 건물과 앞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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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하게도 계룡백일주는 이름에서 재료까지 그리고 계룡산이 있는 공주라는 공간까지 중심이 되고, 표준이 되는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마치 일부러 짜맞춰 놓은 것처럼. 

그래서 나는 이성우 명인에게 집안에서 언제부터 이 술을 빚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이귀의 후손으로 집안에서 누대로 전승되어 오고 있어, 그것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나는 맥없이 웃으며 시음 술로 나온 약주 16도 계룡백일주를 야금야금 맛보는 데 열중했다. 계룡백일주 그 술맛을 내 혀에 새겨놓으면, 한국을 대표할 만한 맛 하나를 익히게 될 것이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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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집밥만 있는 게 아니다, '집술'도 있다
① 조선 선비들이 맛본 술맛 궁금하다면

○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계룡백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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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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