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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취약 집단, 홈리스

다른 사회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취약 집단에서 건강과 질병의 문제는 생활의 질 이전에 삶의 지속 가능 여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미 부족한 사회경제적 자원 속에서 건강과 질병의 문제는 어떠한 완충도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 취약 집단이 겪는 건강과 질병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체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홈리스는 현재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취약 집단이다. 낮은 건강 수준은 물론이고, 빈곤·가족 갈등·사회적 차별 등 모든 사회경제적 자원이 극단적으로 부족하다.

그 결과 홈리스들이 겪는 건강과 질병의 문제는 그들의 삶과 직결된다. 단적인 예로 서울시는 올겨울도 어김없이 서울역과 영등포역 인근에 1000여 명 규모의 응급잠자리를 마련하고 관련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한파로 인한 저체온증은 거리 홈리스의 삶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홈리스 의료지원제도는 일반적인 보건의료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설계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노숙인 등 의료지원제도'는 효용성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보건의료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올해 내 공포를 목표로 수립 중인 정부의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아래 종합계획)'안은 지금까지의 '노숙인 등 의료지원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허점투성이 '노숙인 1종 의료급여'

현재 운영 중인 노숙인 1종 의료급여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낮은 접근성이다. 제도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홈리스들은 반드시 정부가 사전에 지정한 '노숙인 진료시설'을 일차적으로 이용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수가 전국을 다 합하여도 1차 의료기관은 209곳, 2차 의료기관은 45곳에 불과하다.

전국의 의료기관 수를 다 합하면 3만5000곳이 넘는데, 홈리스들은 이 중 1%도 되지 않는 254곳만 이용할 것을 강요당하는 현실이다. 더욱이 홈리스는 의료기관까지 가기 위한 적절한 이동수단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가 지속적인 관리가 강조되는 만성질환 중심으로 급속히 변화하는 최근의 추세를 고려한다면, 그 수가 적어도 너무 적다.

정부도 유사한 문제의식 아래에 지정 의료기관의 수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종합계획(안)에서는 예산 등의 이유로 2019년까지 전국적으로 단지 10곳의 확대만을 계획하고 있다.

홈리스가 감당하기 어려운 진료비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현재의 노숙인 1종 의료급여제도에서 홈리스는 타 의료급여 수급자와 마찬가지로 비급여 진료비를 전적으로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의료급여 외에도 현금급여(생계급여)를 받는 기초생활수급권자와 달리 홈리스는 의료급여만이 지원된다.

그 결과 소액의 비급여 진료비라도 발생할 경우 이를 지급할 능력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료급여 제도의 정합성을 근거로 비급여 진료비 지원을 거부하고 있고, 이번 종합계획(안)에서도 관련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안산시에서 돌아가신 거리홈리스 신아무개씨 사망사건에 대한 기자회견. 그는 병원에 후송됐으나 치료를 거부당했다. 안산시에는 노숙인 진료시설이 없다.
 안산시에서 돌아가신 거리홈리스 신아무개씨 사망사건에 대한 기자회견. 그는 병원에 후송됐으나 치료를 거부당했다. 안산시에는 노숙인 진료시설이 없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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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용성의 잣대가 아닌 보편적인 건강권으로

이 외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선정 절차, 시설 입소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불합리한 자격 기준, 요양서비스 등 필수 의료서비스가 제외된 급여 내용 등 노숙인 1종 의료급여제도로 대표되는 현행 노숙인 등 의료지원제도의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별다른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종합계획(안)에서 관련 내용이 모두 누락된 것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노숙인 등 의료지원제도들 둘러싼 여러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 해결의 실마리는 홈리스의 건강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홈리스의 건강을 보편적인 건강권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관리해야 할 사회문제'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너무도 익숙하다. 홈리스를 자활을 통해 향후 노동시장에 참여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홈리스의 건강을 자활에 필요한 요건 중 하나로만 보기에 효용성만을 잣대로 홈리스 의료지원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홈리스 의료지원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오는 22일 동짓날에도 쫓겨나는 사람들, 설 곳 없는 홈리스를 위한 '홈리스 추모제'가 서울역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2001년에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란 이름으로 처음 추모제를 열었으니, 그 사이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홈리스들이 겪는 건강과 질병의 문제가 그들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현실은 동짓날 한파만큼이나 매섭지만, 함께 견뎌내야 한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추운 겨울도 2월을 넘기지 못하고, 3월에는 꽃이 피는 봄이 온다.

[관련 기사 : 국가가 '처리'해 주는 그들의 마지막]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은 거리·시설·주거 적절성이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노숙인 등'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위 법률은 쪽방·고시원 등 생활자들을 '등'으로 규정함으로 지원체계로부터 배제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정책 대상을 넓히고, 그들이 처한 상태를 명확히 표현하자는 의미에서 '홈리스'라는 용어를 택하고 있다. 다만, 특정 정책을 언급할 때는 법률상 용어인 '노숙인 등'을 혼용하였다.



태그:#홈리스추모제, #노숙인 1종 의료급여, #홈리스 의료지원제도, #홈리스 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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