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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도와주지 않은 올 콩농사


이른 아침,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립니다. 우리 동네 반장님입니다. 손에 달력이 들려 있습니다. 조합에서 나눠주는 새해 달력을 가져오신 모양입니다. 새 달력을 보니 해가 바뀌는 것을 실감합니다. 반장님이 우리 잔디밭마당에 넓게 깔려있는 서리태 더미를 보고 말씀을 하십니다.

비닐 덮게 위에 콩더미를 넓게 펴서 도리깨질하기 위해 널었습니다.
 비닐 덮게 위에 콩더미를 넓게 펴서 도리깨질하기 위해 널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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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콩 못 털었는데, 이 집도 매한가지네 그려!"
"날씨가 유난스럽네요! 이맘때는 콩 털어 메주를 쑤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러게 말일세. 오늘 낼 중으로 해 반짝일 때 털어버리라구?"
"그럴 참이에요. 근데 검불도 많고, 몇 개 까보니까 납작콩에 쭉정이가 많아요."
"콩 여물 때 워낙 가물어서 그래. 우리 것도 그렇더라구!"
"그나저나 터는 것은 도리깨질하면 되겠는데, 검불이 많아 일이 더디겠어요."
"콩체 없어? 그거면 있으면 좀 낫지. 없으면 우리 거 가져다 써!"

콩체는 콩타작할 때 콩알과 바스러진 검불을 분리하는데 쓰는 도구입니다. 밑바닥 구멍 코가 큰 어레미이지요. 콩체를 이용하면 한결 수월할 것 같습니다. 반장댁에서 콩체를 빌려왔습니다.

오늘 내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콩타작을 끝낼 요량입니다. 해가 중천에 뜨고, 서리가 녹으니 날이 맑습니다. 콩타작하기에 참 좋은 날입니다. 콩깍지를 만져보니 쉽게 털릴 것 같습니다.

혼자 하려면 한 이틀은 해야 할 성싶습니다. 해가 짧은 데다 펼쳐놓은 양이 만만찮게 많습니다. 콩 터는 데 쓸 도구를 죄다 집합시켰습니다. 도리깨, 나무막대, 어레미, 갈퀴, 고무대야까지.

장갑을 끼웠습니다. 콩대를 한 움큼씩 가운데 모아놓고 도리깨질을 합니다. 휘익 휘익 도리깨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합니다. 뉴턴의 '관성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두들겨 맞은 콩깍지가 입을 쩍쩍 벌립니다. 그 사이로 튕겨 나온 서리태가 팔짝팔짝 튀어오르면서 춤추는 도리깨질에 장단을 맞추는 듯싶습니다. 다시 뒤집어 한 번 더 패대기칩니다.

힘차게 도리깨질를 하면 콩깍지가 입을 벌려 콩알이 튀어나옵니다.
 힘차게 도리깨질를 하면 콩깍지가 입을 벌려 콩알이 튀어나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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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깨질 하고 난 뒤, 덜 털린 것은 나무막대로 두들겨 텁니다.
 도리깨질 하고 난 뒤, 덜 털린 것은 나무막대로 두들겨 텁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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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농사가 좋으면 도리깨 돌리는 소리에도 흥겨울 것입니다. 그런데, 올 같은 경우는 털리는 게 시원찮습니다. 도리깨질에 힘이 더 들어갑니다. 덜 털리는 것은 다시 한 번 낭창낭창한 회초리로 매질을 해야 합니다. 서너 시간 똑같은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겨드랑이에 땀이 배입니다. 새참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갈증과 피곤을 달래봅니다.

콩농사가 쉬운 것 같아도...

옛말에 콩꼬투리에 물이 줄줄 흘러야 콩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했습니다. 콩농사는 콩꽃이 진 뒤, 한참 여물어가는 8월 하순에서 9월 말까지 적당한 비가 내려야 콩이 실하게 많이 달린다는 것입니다. 몇 년간 콩농사를 지었지만, 이제야 그 사실을 헤아립니다.

한창 자랄 때만해도 기대를 크게 했습니다.
 한창 자랄 때만해도 기대를 크게 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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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가뭄이 심해 콩이 흉작입니다. 거기다 가을에는 잦은 비로 콩타작까지 힘들게 합니다. 한참 꽃 피고 여물 때는 가물고, 거둬들일 때는 잦은 비가 내려 애를 먹습니다. 올 콩농사는 내남없이 최악입니다.

원래 콩을 베고 난 뒤 볕이 좋으면 일주일 안에 타작을 합니다. 그런데, 올가을은 11월 초순경부터 심술궂게 사나흘 걸려 비가 왔습니다. 깍지가 말라 털라치면 비가 오고, 또 며칠 기다렸다 털려면 궂은 날씨가 훼방 놓기를 반복합니다. 가뭄으로 마른 저수지를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잦은 가을비가 감질만 내는 훼방꾼입니다.

11월 초순경의 우리 서리태밭, 콩깍지가 여물었습니다.
 11월 초순경의 우리 서리태밭, 콩깍지가 여물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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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농사가 쉬운 것 같아도 손이 많이 가는 농사입니다. 콩 심어 어린 싹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면 날짐승이 미리 입맛을 다시는 수가 있습니다. 자랄 때, 잡초가 콩보다 먼저 자라면 잡초에 치여 잘 자라지 못합니다. 풀한테 콩이 이기도록 초기에 풀 뽑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콩이 어느 정도 자라면 두어 번 정도 순치기를 합니다. 순치기는 콩농사에서 중요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키가 너무 커 비바람에 쓰러지고, 씨알 맺히는 것이 시원찮아 수확량이 줄어듭니다. 병충해가 있어 소독도 여러 차례 하는데, 나는 거기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서리태

서리태꽃입니다. 보통 9월 초순경 해가 짧아지면 보라색 예쁜 꽃을 피웁니다.
 서리태꽃입니다. 보통 9월 초순경 해가 짧아지면 보라색 예쁜 꽃을 피웁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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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내려서 거둔다하여 서리태.

어릴 땐 가느다란 허리가 애처로워 보입니다.
저 잘났다 삐쭉이 고개 쳐들면 끝순을 질러줍니다.
사람 돌봄 아는지 뿌린 튼튼해지고,
줄긴 곁가지 치며 실해집니다.

녀석들, 장마 견디고선
태풍 맞설 두려움도 잊은 채 하늘하늘 춤을 춥니다.
제 할 일은 하면서요.

어느 날, 궁금하여 무성한 잎 들춰봅니다.
앙증맞은 보라색꽃이 숱한 꿈을 키웁니다.
누가 녀석에게 가르쳐 주었을까요?
해 짧아지고 풀벌레 울면 꽃피우는 것을.

'저절로 알아서 열매는 맺을까?'
작은 꽃을 보고 또 봅니다.

찬 서리 내리는 날,
콩깍지 속 푸른 몸에 까만 옷 걸치고
당당히 나타날 알알이 기다려집니다.

기다림은 행복이지요.
- 전갑남의 시 <서리태> 전부

그래도 일한 뒤의 보람

다음 날, 도리깨질과 회초리로 두들겨 맞은 검불을 걷어내는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선 으깨진 콩대와 깍지를 갈퀴로 살살 걷어냅니다. 콩알이 드러나면서 부피가 확 줄었습니다.

콩을 선별하는 게 타작하는 일 못지않습니다. '이럴 때 풍구가 있으면 수월할 텐데...' 예전에는 풍구라는 도구로 콩깍지와 잘게 부서진 검불을 바람에 날려 콩알을 쉽게 골랐습니다. 옛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코가 큰 콩체로 입 벌린 꽁깍지와 검불을 걸러냅니다.
 코가 큰 콩체로 입 벌린 꽁깍지와 검불을 걸러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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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구가 없으니까, 우선 어제 반장댁에서 빌려온 구멍이 큰 콩체로 걸러낼 참입니다. 수레에 콩체를 올려놓고, 손으로 살살 밀쳐내자 밑으로 콩알과 작은 검불들이 쏙쏙 빠집니다. 콩체 위에는 빠지지 못한 콩깍지만 남습니다.

한참을 일하고 있는데, 마침 이웃집아저씨가 놀러왔습니다. 답답한 내 일감을 보고 손을 걷어붙입니다.

"거긴 어레미질하고, 난 키질할 테니 어서 키나 가져와요!"

이웃집 아저씨께서 능숙한 키질 솜씨로 콩깍지와 검불을 바람에 날려보냈습니다. 일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께서 능숙한 키질 솜씨로 콩깍지와 검불을 바람에 날려보냈습니다. 일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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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레미질하면 콩알보다 작은 것들은 밑으로 쏟아집니다. 선별작업 마무리 단계이지요.
 어레미질하면 콩알보다 작은 것들은 밑으로 쏟아집니다. 선별작업 마무리 단계이지요.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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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레미질을 하고, 아저씨는 키질을 합니다. 아저씨가 거들어주니 일이 수월하게 진행됩니다. 까맣게 드러나는 콩알갱이가 검은 보석처럼 다가와 바닥을 구릅니다. '힘들게 가꿔 거두는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거둔 소중한 서리태콩입니다. 밥에 넣어먹고, 여름에 시원한 콩국수를 만들어 먹을 것입니다. 상 위에 놓고 마지막으로 선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둔 소중한 서리태콩입니다. 밥에 넣어먹고, 여름에 시원한 콩국수를 만들어 먹을 것입니다. 상 위에 놓고 마지막으로 선별해야 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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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비해 소출이 어때요?"
"심기는 더 심었어도 작년만 못하네요."
"그래도 올 같은 해에 이만큼이면 어디야?"
"그럼요. 감사하고 또 감사하죠!"

아저씨가 세상이치를 말합니다. 세상일이란 게 사람 생각 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거라고 합니다. 농사도 마찬가지랍니다. '농사의 반은 하늘이 짓는다'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하늘이 주는 대로 받는 이치에 따를 뿐입니다.

콩타작을 끝내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합니다. 힘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이웃과의 막걸리 한 잔은 삶의 활력소입니다. 어려움이 많았던 콩타작으로 올 농사의 마무리를 짓습니다.

"나도 이젠 다리 쭉 펴는 겨울방학이다. 방학!"


태그:#서리태, #콩타작, #도래깨질, #어레미질, #콩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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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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