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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버스 5호가 지난 11월 7일 ‘도심 속의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경기도 수원시로 달려갔습니다. 한 달 동안 자동차 없이 생활한 생태 교통마을 골목을 둘러보고 옛 ‘대추나무골’인 조원1동 마을공동체 현장인 작은 도서관, 사회적 협동조합 ‘마돈나’, 수원제일교회 노을빛 전망대 등을 누비며 탑승객들은 마을 공동체의 희망을 엿봤습니다. 시멘트벽으로 단절된 팍팍한 아파트에서 꽃을 매개로 공동체가 다시 살아나는 현장도 목격했습니다. 우리 안에 덴마크는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편집자말]
수원시 조원시장에 가면 시장통 한복판에 도서관이 있다. 시장상인회가 짓고 마을주민이 키운 공간이다. 도서관 한편에는 라디오방송국 스튜디오가 있다. 이곳에선 마을주민이 DJ로 변하고 상인들이 출연자로 입담을 자랑한다. 도대체 조원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수원시 조원시장 대추동이 상인방송국은 마을주민이 DJ이다. 일주일에 한 번, 상인들이 출현해 들려주는 사는 이야기는 시장 곳곳 스피커를 통해 생중계된다.
▲ 시장통 방송국에 마을주민은 DJ 수원시 조원시장 대추동이 상인방송국은 마을주민이 DJ이다. 일주일에 한 번, 상인들이 출현해 들려주는 사는 이야기는 시장 곳곳 스피커를 통해 생중계된다.
ⓒ 정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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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7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로 89번길 13번지에 우리 안의 덴마크를 찾아 떠나는 꿈틀버스가 멈추어 섰다. 조원시장 입구다. 탑승객들이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현대화' 옷을 갈아입은 여느 재래시장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 이날 첫 번째 행선지인 도서관이 있다. 사고파는 이들로 왁자지껄한 시장바닥에 '정숙'을 내건 도서관이라니. 궁금증이 샘솟는 조합이다. 누구의 머릿속에서 출발한 상상일까.

엄마는 장 보고 아이는 책 읽고

수원시 조원시장에 한복판에는 도서관이 있다. 상인이 짓고 주민들이 키운 공간이다.
▲ 시장 한복판에 도서관 수원시 조원시장에 한복판에는 도서관이 있다. 상인이 짓고 주민들이 키운 공간이다.
ⓒ 정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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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버스 탑승객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모퉁이 분식점을 지나 이불가게 옆, 작은 출입문 앞에서다. '대추동이 작은 도서관'이란 간판이 눈에 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지르밟아 안으로 걸어 들어서자 형광등 불빛 밑으로 책장 모습이 드러난다. 책꽂이마다 책이 촘촘하다. 시끄럽던 바깥과 달리 실내는 조용하다.

낡고 허름한 상인회 사무실이 도서관으로 변했다. 상인조차 외면했던 곰팡이 소굴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행복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주민들과 상인들로 구성된 대추동이 문화만들기가 공을 들인 결과다. 이들은 지난 2012년 경기도와 수원시로부터 1억 원을 지원받아 상인회사무실의 묵을 때를 걷어냈다. 먼지 쌓이고 시커먼 바닥도 쓸고 닦았다. 텅 빈 공간엔 도서 6000권을 들여와 공간을 채웠다. 왜 시장 안에 도서관을 지었을까. 정순옥(51) 대추동이 문화만들기 대표의 설명이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였다. 예전만큼 시장을 찾는 주민들이 없다. 대형마트에 가지. 상인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원시장 상인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열린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때마침 경기도에서 작은 도서관을 지원해주는 공모사업을 열었다. 이거다 싶었다. 엄마들이 장 보는 사이에 아이들은 도서관서 책을 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인회서도 좋은 생각이라며, 그동안 방치했던 사무실 공간을 내줬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도서관을 통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장바구니와 책이 만났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시장 안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도서관에 아이들이 찾아왔다. 대개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든 엄마와 함께였다. 군것질을 하던 아이들은 손에 책을 쥐었다. 시장 안에 엄마가 장보는 사이 아이는 책을 읽는 새로운 문화가 시나브로 퍼져갔다.

교육 프로그램 요구가 높아졌다. 역할을 확장했다.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대학생들이 모여 아이들의 교육을 맡았다. 자원봉사자는 사서를 자처했고 엄마들도 일손을 거들었다. 정 대표가 말했다.

"방치됐던 공간이 변했다. 아이들이 찾아오면서 영화감상, 댄스수업, 미술수업, 체험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었다. 먼지 쌓였던 장소가 활기를 되찾았다. 상인들은 시장이 활성화돼 좋았고 주민들은 아이들을 맡아주면서도 유익한 공간이 생겨 기뻐했다. 마을 공동체가 되살아나고 상인과 주민이 한 마음 되면서 시장 안에 사람 사는 정(情)이 깊어졌다."

마을주민 DJ, 야채가게 아저씨 입담에 감동받다

지난달 7일 우리 안의 덴마크를 찾아 떠나는 꿈틀버스가 수원시 조원시장을 찾았다. 조원시장에 가면 상인이 짓고 주민이 키운 도서관과 마을주민이 DJ가 되고 상인이 출연해 입담을 자랑하는 라디오방송국이 있다.
▲ 꿈틀거리는 현장 지난달 7일 우리 안의 덴마크를 찾아 떠나는 꿈틀버스가 수원시 조원시장을 찾았다. 조원시장에 가면 상인이 짓고 주민이 키운 도서관과 마을주민이 DJ가 되고 상인이 출연해 입담을 자랑하는 라디오방송국이 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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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라디오방송국이 시장통에 둥지를 틀었다. 이름은 대추동이 상인방송국이다. 지난 2013년 도서관 한편에 스튜디오를 마련해 개국했다. 마을주민이 DJ와 엔지니어를 맡고 상인들이 출연자다. 정 대표가 말했다.

"나물 파는 할머니가 출연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눈물도 났다. 야채가게 아저씨는 야채를 잘 기르려면 먼저 흙을 사랑해야 한다는 장사 철학을 풀어놓았다. 손님들이 야채를 못 만지게 하는 것도 체온 때문에 야채가 시들어 버려서라고 하더라. 이야기를 듣고는 감동했다. 사람 사는 소소한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이웃을 만나고 알아가는 게 이 방송의 목적이다."

주민들과 시장 상인이 만드는 라디오 방송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실수가 잦다. 가끔은 수다방송이 되기도 한다. 음악을 틀었는데,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지 않을 때도 있다. 2년간 방송이 중단되기도 했다. 좌충우돌 경험을 쌓고 나서야 최근 일주일에 한 번 생방송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정 대표가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이런 게 진짜 살아있고 인간적인 방송 아닐까요."

조원시장 마돈나를 아시나요?
수원시 조원시장의 마돈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마을을 가꾸는 돈가스 나눔터의 줄임말로 마을 가꾸기 사업에 필요한 재정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주민과 상인들로 구성된 대추동이 문화만들기(정순옥 대표)는 행정기관의 지원에서 벗어나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마돈나를 창업했다.
▲ 조원시장에는 마돈나가 있다? 수원시 조원시장의 마돈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마을을 가꾸는 돈가스 나눔터의 줄임말로 마을 가꾸기 사업에 필요한 재정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주민과 상인들로 구성된 대추동이 문화만들기(정순옥 대표)는 행정기관의 지원에서 벗어나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마돈나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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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도 있다. 바로, 경제적 독립이다. 책을 구입하고 방송에 필요한 물품을 사려면 돈이 필요했다. 부서지고 고장이 나도 재정이 열악해 제때 수리를 못했다. 행정기관의 지원은 한계가 있었다. 도서관과 라디오방송국이 문 닫지 않으려면 경제적 독립만이 살 길이었다. 지난해 사회적협동조합 마돈나(마을을 가꾸는 돈가스 나눔터)를 창업한 이유다. 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행정기관의 도움으로 공동체 복원의 토대를 만들 수 있으나 꾸준히 마을과 마을, 주민과 주민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려면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정 주도의 일회성 지원에 그치면, 이웃 사이에 상처만 받을 수 있다. 진짜 더불어 살려면 경제적 독립도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

갈 길 먼 경제적 독립, 묘책은 있을까? 정 대표가 말했다.

"아직은 돈가스를 팔아 번 돈으로 마을 일을 죄다 해결하기엔 버겁다. 지금보다 장사가 잘돼 수익이 커져야 한다.(웃음) 묘책은 궁리 중이다. 하지만 함께 한다면, 희망하는 대로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마돈나의 앞날에 도서관과 라디오방송국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잘 될 거다.(웃음)" 

조원시장에 가면, 우리 안의 덴마크를 만들어가는 주민과 상인을 만날 수 있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태그:#수원시 조원시장, #대추동이 도서관, #대추동이 상인방송국,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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