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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난감한데요? 제가 준비해온 파워포인트 파일 그림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

교수님의 난감함과 학생들의 답답함이 교실을 덮었다. 강의는 중단됐고 몇 십 분 동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해결할 수 없었다. 인천 소재 A대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 조아무개(23)씨가 직접 겪은 사건이다. 그날 강의 핵심내용인 지도와 도표 자료는 파워포인트 파일에 담겨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그림 자료를 보며 함께 자료를 분석하고 토의해야 했다.

하지만 강의실 컴퓨터는 대용량 파워포인트 파일을 읽을 수 없었고 학생들은 자료를 보지 못했다. 결국 강의는 교수님의 말과 판서로만 진행됐다. 3시간 강의 중 20분을 낭비, 쌍방향 수업에서 일방향 수업으로 전락. 모두 기자재 문제로 인한 일이었다.

이 학교 재학생인 기자 역시 수업시간에 기자재 문제를 겪어봤다. 80명이 듣는 대형 강의에서 기자는 뒷자리에 앉게 됐다. 수업진행은 프로젝터로 강의교안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스크린 화면은 흐릿했고 뒷자리에서 파워포인트 내용을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날 기자는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고 한 시간 동안 허공만 보고 왔다.

기자가 이 학교에 재학한 지 3년, 이번 학기까지 이수한 수업은 총 38개이다. 그 중 컴퓨터, 프로젝터, 마이크 등의 기자재를 사용하지 않았던 수업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기자재 활용은 수업의 필수요건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 진행을 방해하는 기자재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학생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자재 문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학생들의 불만을 파악하고자 지난 10월 A 대학교 재학생 및 휴학생 9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76명이 강의 도중 기자재 문제로 불편함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90%의 응답률을 보였다.

A대학교 재학생 및 휴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A대학교 재학생 및 휴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 맹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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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과 같이 학생들은 컴퓨터 사용(55%) 시 가장 많은 불편함을 느꼈다. 컴퓨터 노후화, 인터넷 연결 불가, 느린 인터넷 속도 등의 문제가 있었다.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은 동영상 관련 사항(23%)이었다. 동영상 소리가 나지 않거나, 필수코덱이 설치되지 않아 재생이 안 되는 문제 등이 있었다.

이어 프로젝터 및 마이크 문제 등 기타시설(16%), 설치 프로그램(6%)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대다수 학생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수업에 지장을 준다'고 답해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됐다.

이 대학 한 교수 또한 강의 도중 기자재 때문에 불편함을 겪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굉장히 많이 있다. 특히 수업 때마다 마이크를 비롯한 음향시설이 불량해 수업의 맥이 끊긴다. 또한 프로젝터 화면이 흐릿해서 뒤에 앉은 학생들이 많이 불평한다"라고 답했다.

강의실 30곳의 기자재 상태를 확인해보니

학생 설문조사 답변에는 컴퓨터 노후화, 기타 기자재 활용에 관해 불편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다. 이를 바탕으로 11월, 실제 강의실 기자재 상태를 확인했다. 강의실 조사는 30곳을 대상으로 했고 점검 항목은 아래와 같다.

A대학교 강의실 30곳을 직접 조사한 결과
 A대학교 강의실 30곳을 직접 조사한 결과
ⓒ 맹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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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 항목 중 몇 가지 눈에 띄는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동영상 실행이다. 동영상을 실행하는 데 1분이 넘게 걸리는 강의실이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한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은 최소 20명에서 최대 50~60명이다. 많은 인원이 수강하는 강의는 흐름이 조금만 끊겨도 전체 분위기가 어수선해져 강의 질을 낮춘다.

두 번째는 프로그램 정품 인증 문제다. 수업 중 자주 사용하는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이 정식적으로 인증되지 않은 강의실이 37.5%에 달했다. 정품 인증이 되지 않은 프로그램은 무료 사용 기간이 지나면 사용할 수 없다. 또한 프로그램 정품 인증은 지적재산권과 관련이 있다.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해 지도해야 할 대학교에서 소프트웨어를 무단 사용하고 있었다.

세 번째는 비정상적인 프로젝터 실행이다. 프로젝터가 정상적으로 실행되지 않은 곳이 전체 강의실 중 3분의 1이었다. 프로젝터가 흐릿하거나 어두운 강의실이 4곳, 프로젝터 빔과 스크린화면 비율이 안 맞는 강의실, 스크린 화면이 기울어진 강의실이 각 3곳 있었다. 화면이 흐릿하거나 삐뚤어져 있다면 학생의 시력이나 앉은 자리에 따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행정실 "빠른 시일 내에 점검하겠다"

이와 관련해 이 학교 총학생회 간부와 인터뷰를 했다.

- 총학생회는 기자재 문제에 대한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총학생회는 금년도 교육환경개선 요구안 2번에 기자재 관련 문제를 명시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때 학교 전체 기자재 현황에 대해 조사했고, 보고서를 작성해 학교에 제출했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요구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올 하반기 내에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총학생회는 문제 해결을 약속받았기에 학교가 잘 집행하고 있는지 점검 중입니다. 학교 측은 교육환경 개선 계획 및 진행을 단대 예산으로 하고, 단대 예산이 부족할 경우 학교 본부의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빠른 시일 내로 단대별 해당 부서에 연락해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점검할 예정입니다."

- 현재 진행 상황을 알 수 있을까요?
"예산 팀은 각 단대로부터 예산 집행 계획을 받았고 해당 부서에 예산을 배분하고 있습니다. 단대가 학생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는 12월에 점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강의실 기자재를 담당 및 관리하는이 학교 행정실장과의 인터뷰이다.

- 학생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불편함은 '컴퓨터 노후화'였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행정실 측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기자재 교체는 행정실에서 학교에 기자재 조달 요청을 하면 학교가 승인하고 구매 후 행정실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2015년 기자재 예산이 배정됐으며, 구매 조달 신청을 끝냈습니다. 컴퓨터는 행정실에 전달되는 대로 강의실에 설치 중입니다. 또한 공용 강의실 컴퓨터는 항상 방학 중에 점검해 학기가 시작되기 전 시스템을 최적화하고 있습니다."

- 학생들이 그 다음으로 느낀 불편함은 '프로젝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행정실 측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프로젝터도 구매 조달 신청을 했고 현재 기자재 구매 부서에서 프로젝터 업체를 선정 중입니다. 새 프로젝터가 설치되면 밝기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내년에는 강의실 내 암막커튼 설치 및 교체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 강의실에는 소프트웨어 정품 인증(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프로그램)이 되지 않은 강의실 컴퓨터가 3곳이 있었습니다. 정품 인증이 안 됐다는 것은 합법적으로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불법 다운로드는 학교 전체가 법적으로 크게 문제됩니다. 언급한 강의실 3곳을 빠른 시일 내에 점검하겠습니다. 향후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이 적발된다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등의 방법을 고려 중입니다."

- 기자재 문제 해결에 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을까요?
"행정실 측에서는 학생들이 강의실 교육 환경에 만족하도록 최우선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의실 사용 빈도, 형태에 따라 고장이 자주 나는 강의실이 있습니다. 현재 행정실은 교수와 학생들이 접수한 불편사항과 자체적인 수리 및 점검을 통해 문제를 파악한 후 해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실만 노력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학생들 스스로 기자재 사용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버드 대학 교육 심리학 교수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인간의 지능이 통합적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학습 자료가 단선적이며 평면적이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이 주장을 만족시키는 학습은 바로 '멀티미디어 활용 수업'이다. 멀티미디어는 인간이 같은 시간 내에 더욱 많은 정보를 즐겁고 편안하게 흡수할 수 있게 해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수업 효과에 관한 연구('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영어 학습과 강의식 영어 학습의 비교분석' 외 5편)는 이를 뒷받침한다. 연구결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수업이 학생들의 흥미 유발, 효과적 수업 진행, 수업 내용에 대한 이해력 향상, 학업 성취도 향상을 가져왔다.

대학 강의는 중등교육보다 더 전문적이고 방대한 내용의 지식을 다룬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강의 진행을 위해 멀티미디어는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본교는 멀티미디어 환경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교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학생 및 교수, 학교 그리고 총학생회의 멀티미디어 사용 및 관리에 관한 현 문제점을 정리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학교 측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학교는 기자재 이상을 인지한 후에야 수리하고 있다.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하기 전 학교는 주기적인 기자재 점검을 통해 문제를 예방해야 한다. 또 기자재 사용자인 학생과 교수의 올바른 기자재 관리 및 사용을 위해 기자재 이용 가이드라인을 공고해야 한다.

교내 실습실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실습실 이용규칙'이라는 가이드라인이 공시돼 있다. 이와 같은 가이드라인을 실습실 컴퓨터 바탕화면뿐만 아니라 강의실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공시하면 사용자들이 쉽게 볼 수 있고, 기자재 고장을 방지할 수 있다.

학생들 대부분은 기자재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어디에 수리를 요청해야 할지 모른다. 경희대학교는 강의실 기자재 고장만 전담으로 처리하는 내선번호가 있다. 성신여자대학교는 수업 중 기자재 문제가 생겼을 시 바로 연결할 수 있는 민원 안내 전화번호가 각 강의실 형광등 스위치 주변마다 부착돼 있다.

그러나 본교는 강의 도중 기자재에 이상이 있으면 교수님이나 수강생 중 한 명이 관리자를 직접 불러오기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강의 진행이 지체된다. 광장 민원 신청란에 민원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민원 신청에 대한 답변은 약 2~3일 후 게재되기에 즉각적인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강의실 컴퓨터 바탕화면에 기자재 이용 가이드라인을 공시할 때 기자재 전담부서로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함께 제시하면 좋겠다.

하지만 기자재 사용자는 결국 학생들과 교수다. 학생과 교수 또한 학교에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고 기자재 문제 개선에 함께 힘써야 한다. 먼저 앞서 말한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이상이 있는 기자재를 발견한 경우에는 다음 사용자를 위해 불편 접수를 해두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 기자재 사용에 대한 사용자들의 의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학교 컴퓨터에는 각종 파일이나 프로그램을 무분별하게 다운로드 받거나 사용이 끝난 후 기자재를 제대로 종료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학생들의 태도 변화를 위해서 기자재 사용에 관한 의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와 학생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는 총학생회도 중요하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시로 기자재 이용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기자재 사용에 대한 학생들의 불편함을 파악하고 학교 측에 설문조사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좋은 학교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넓은 캠퍼스, 오래된 역사, 높은 취업률 등을 기준으로 좋은 학교를 선정한다. 하지만 학교는 배움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참된 배움은 효과적인 수업 환경을 통해 이뤄진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기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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