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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 관음전에 피신해 있다. 늘 그렇듯, 언론은 사건의 원인에 대한 심층적 분석 대신 '거취'라는 표피적이고 선정적인 사안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고 있다.

피신한다는 것은 신체나 생명에 위협을 느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몸을 숨기는 것을 뜻한다. 홍수를 피해 언덕으로 피신한 사람에게 언제 언덕을 내려갈 것이냐고 묻거나 시비를 따지지 않는다. 더구나 홍수가 난 물속으로 떠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언론과 정권은 홍수가 언제 가라앉을 것인가를 묻는 대신에 언덕으로 피신한 사람이 언제 내려갈 것인가 묻고, 홍수에서 사람을 건지기는커녕 그를 피해 온 사람을 물속으로 떠밀고 있다.

한상균은 왜 조계사로 피신했나

지난 1일 오후 조계사에서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 입장발표 기자회견 도중 관음전 창문을 통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한 위원장은 "12월 5일 이대로는 못 살겠다며 많은 민중들이 올라온다. 이 목소리를 정부는 들어야 한다"며 "헌법에 보장된 시위를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 노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 동료 걱정하는 한상균 "힘내세요, 투쟁" 지난 1일 오후 조계사에서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 입장발표 기자회견 도중 관음전 창문을 통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한 위원장은 "12월 5일 이대로는 못 살겠다며 많은 민중들이 올라온다. 이 목소리를 정부는 들어야 한다"며 "헌법에 보장된 시위를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 노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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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는 노동개악이다. 현재 상황에서도 대다수 노동자는 생존위기에 있는데, 여기에 노동개악이 더해지면 노동자들은 거의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다. 이 노동개악의 핵심은 "일반해고 요건 완화,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변경 완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근로 확대, 임금피크제 통한 청년고용"이다.

이를 하나하나 따져보자.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과도하게 보호받는 정규직 근로자의 특혜 등을 다소 줄여 비정규직에 나눠주는 '상생 협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불가피하며, 노동시장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비정규직 보호 강화와 정규직의 기득권 축소라는 두 가지 방향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인 1000만 명이 넘는다. 통계 추산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는 850만 명인데 여기에는 최소 200만 명이 넘는 특수고용과 불법파견이 빠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며(평균 49.4%), 언제든 해고당할 위기에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렵다. 3년을 같은 자리에서 일했어도 그 가운데 22.4%만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50.9%는 여전히 비정규직이었고 26.7%는 실직 등으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기업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와서 노동시장을 별다른 규제 없이 유연화 할 수 있기에 신규고용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서 임금의 절반만 지급하며 과잉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정규직의 임금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집단적으로 저항하기 힘든 것을 악용하여 비정규직을 헐값에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노동시장은 극단의 상황인데 여기서 더 유연화 하라는 것은 거의 대다수 노동자를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임금만 받으며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어도 노동3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운 비정규직으로 내몰겠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노동자를 노예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는 정규직 채용감소와 산업시설 해외 이전의 한 원인이며, 파견제·기간제 근로자 사용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적재적소에 인력을 운용하고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에 유리하게 제정된 실정법으로도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에 이를 때에만 해고가 가능한데, 자본은 회계조작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워두거나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쌍용자동차를 예를 들면 회사 측은 적자인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여 2646명의 노동자를 구조조정 하겠다는 방침을 노동조합에 통보하고 그 가운데 1666명을 희망퇴직으로 내쫓고, 나머지 980명을 해고했다.

노동자들이 이에 파업으로 저항하자 국가는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에 서서 전시의 적에게나 행하는 폭력을 선량한 노동자들에게 휘둘렀다. 실제로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가운데 절반 이상인 52.3%의 노동자들이 참전 병사들이나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렸다.

파업과 폭력의 후유증, 생계 위기, 아득한 절망감 속에서 노동자나 그 가족이 우울증을 겪거나, 이혼당하거나, 생이별을 한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결국, 쌍용자동차 한 기업에서만 28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자살하거나 병으로 죽었다.

해고 노동자들이 송전탑과 굴뚝 위에서 수십 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고 40일 이상 단식투쟁을 하는 등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투쟁하고 시민사회가 연대했지만, 단 한 명도 복직하지 못하였고 진상 조사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온도 차이만 있을 뿐, 이와 유사한 일이 전국 곳곳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려 해고 요건을 완화하여 성과나 근무태도 불량으로도 해고하게 된다면, 모든 노동자가 해고 대상으로 전락한다. 더 나아가 해고는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어 노동운동은 파편화하고 집단적으로 해고에 저항하는 길이 봉쇄된다.

정규직 채용 감소는 과도한 보호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였기에 근본적으로 고용을 줄이고 정규직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 두 배의 이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해외 이전은 신자유주의 체제와 세계화에 따라 임금이 싸거나, 운송비가 적게 들거나, 원자재 공급이 쉽거나, 세금이 적은 곳에 공장이나 회사를 두려는 것이지 정규직 과보호 때문이 아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근로자는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으며 기업은 저렴한 비용으로 숙련된 인력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절감된 인건비로 청년층 신규채용도 가능하며, 정년 연장에 따라 5년간 추가 발생하는 비용이 115조 902억 원이며 이를 일자리에 투자할 경우 2019년까지 청년 일자리 18만2339개를 창출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50대 초반에 퇴직하는 현실은 개선하지 않은 채 강제적인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이는 임금삭감 수단이 될 뿐이다. 지금 장기 불황에 접어든 것은 소비가 죽었기 때문이다. 30대 대기업이 곳간에 쌓아둔 돈만 710조 원이나 된다. 이는 정부가 금융과 특혜로 엄청 벌게 해줬지만 경기 불황 속에서 투자할 곳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 이윤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를 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하면 기업은 그 비용으로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 고용 증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투자할 곳이 없어서 안 하고 있는 것이기에, 임금피크제를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다. 때문에 대다수 기업들은 여론에 밀려 생색내기 정도로만 고용을 증대할 것이며 그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을 늘리는 데 그칠 것이다.

정부는 "귀족 노조가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쓸데없이 저항하기에 기업은 사업하기 힘들고 경제는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변경을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노사와 충분히 협의한다는 단서를 달았기에 노동자에게 그리 불리할 것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협의'는 '합의'와 달리 강제성이 없어 형식적 절차로 끝날 수 있다. 더구나 노동조합가입률이 10%인 상황에서 노조가 없는 나머지 90%의 노동자는 협의조차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해고당하고 불리한 취업규칙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만 세월호 참사의 6배가 넘는 1929명이 산업재해로 죽을 정도로 한국의 산업 환경은 세계 최고로 열악하다. 그런 상황에서 사측이 별다른 저항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하도록 한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을 당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더욱 걸릴 위험성이 농후하다.

특히 이는 실질적으로 노동자가 노동3권을 행사하는 것을 근원적으로 봉쇄하는 규정으로 악용될 것이기에,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제한하고 노동자를 불의와 불이익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는 노예로 만드는 반헌법적 발상이다. 더구나 노동3권의 보장은 민주주의의 근간이기에, 이 조치는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한다.

이처럼 노동개악이 되면, 가뜩이나 생존위기에 있는 노동자들은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는 실질적으로 노동 3권을 제한하여 노동자를 노예신분으로 전락시켜서 부당하게 해고 당하고 탄압을 받더라도 저항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 그러기에 노동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노동개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악법 중에서도 악법이다. 그러니, 이 싸움의 중심에 서 있는 한상균 위원장은 이를 저지하기 전에는 조계사를 나올 수 없다.

한국 경제와 노동자가 다같이 사는 길

지난 11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셜센터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와 노동개악 저지를 주장하며 연가투쟁 집회를 열고 있다.
▲ 전국에서 모인 전교조 '연가투쟁' 지난 11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셜센터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와 노동개악 저지를 주장하며 연가투쟁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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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으로 온 국민이 고통 속에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부는 "지금의 경제 위기는 노동시장이 덜 유연화 되고 강성 귀족노조가 딴지를 걸어 기업이 사업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 위기는 전적으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에 기인한다.

장기불황에 접어든 첫째 이유는 소비가 위축되었고 부채가 천문학적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으로 정부 관련 부채가 최대 1958조 9000억 원, 가계부채 962조 9000억 원, 기업부채 1913조 5000억 원 등 국가총부채가 약 4835조 3000억 원인데 여기에 금융기관의 금융부채 5179조 원을 더하면 대한민국 총부채는 자그마치 1경 원이 넘는다.

정부가 첨단기술과 미래성장산업에 투자를 하지 않고 수십 조 원의 혈세를 4대강, 자원외교 등에 낭비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분야에서 중국에 따라잡히거나 3년 안으로 좁혀질 정도로 기술개발이 정체되었다. 삼성과 현대 등 재벌에만 특혜를 주거나 집중하여 독점을 더욱 심화하는 바람에 이들을 제외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몰락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100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소득이 절반으로 감소하여, 정규직 노동자는 임금 인상이 되지 않고 고용이 불안하니 소비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의 불평등은 미국을 넘어서서 세계 최고다. 2012년 기준으로 종합소득의 경우 상위 10%는 55.5%를 차지하고 있다. 일종의 불로소득이라 할 수 있는 자본소득의 격차는 더욱 커서, 상위 10%가 배당소득의 93.5%, 이자소득의 90.6%를 가져갔다. 극심하게 착취당하고 수탈 당한 90%는 소비를 하기 어렵다. 여기에 가계부채가 올해 1200조 원에 달한다. 90%의 국민이 거의 절반 가까이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 가계부채의 이자를 물어야 하니 소비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니 경제를 살리려면 임금인상으로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조세혁명을 해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는 과격하거나 비현실적인 구호가 아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차이가 있지만, 30대 대기업의 경우 당기순이익의 1.5%만 투자하면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 2011년의 조사의 경우 한국의 30대 기업에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해 30대 기업이 올린 당기순이익 49조 7천억 원의 1.5%인 7천 9백억 원에 지나지 않았다.

30대 대기업의 곳간에 쌓아둔 돈만 710조 원에 달한다. 그 가운데 몇 백 분의 1만 써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고용불안이 사라진 노동자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소득과 소비증진을 통한 경제활성화가 가능하다. 아울러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더욱 구체적으로 제한하여 노동자의 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노동자와 합의를 거치게 하는 것이 고용의 안정을 담보하고 생산성을 높여 기업과 국가의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면 임금피크제를 할 일이 아니다. 기업은 이윤이 있을 때 투자한다. 대기업이 곳간에 수백조 원을 쌓아둔 것은 이윤이 날 만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보산업, 문화산업, 생명공학, 나노공학 등 자원은 부족하고 교육열은 높은 우리 여건에 맞으면서도 부가가치가 높고 미래지향적인 산업을 지원하여 기업 투자를 유인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여 소비를 활성화하여야 기업도 살고, 경제도 살아나 기업이 투자를 하고 고용을 증대할 것이다. 세계 최장인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럴 때 진정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지금 한상균 위원장은 노동개악을 하여 노동자와 한국경제를 죽이는 길에서 벗어나 노동자를 살리면서 경제활성화도 도모하는 길로 현 정권을 이끌 수 있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조계종, "피신한 생명은 내치지 말라"는 가르침에서 이탈 말라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화쟁위원들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노동관련법과 한상균 위원장 거취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도법 스님은 "지난 5일 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거취 문제도 화쟁의 정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 도법 스님 "한상균 위원장 거취 화쟁의 정신으로 해결해야"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화쟁위원들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노동관련법과 한상균 위원장 거취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도법 스님은 "지난 5일 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거취 문제도 화쟁의 정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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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한 낱말만 남기면 연기(緣起)다.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연기(緣起) 아닌 것이 없다. "이것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이것이 있다." 서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서로를 말미암아 생명이 활동한다는 연기의 법칙이 '사실의 판단'이라면, 필연적으로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것은 '가치의 판단'이다.

서로 싸우던 두 사람이 서로 이복형제라는 것을 알면 싸움을 중지하고 포옹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조건이 되고 의지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아주 미세하여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지만 찰나의 순간에도 내 호흡에 영향을 받아 내 앞의 대기의 미생물이 달라진다. 내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로 인하여 호기성 박테리아는 줄어들 것이고 혐기성 박테리아는 늘어날 것이다. 그리 변한 대기가 나와 내 주변의 사람의 몸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 달라진 몸은 다른 숨을 내뿜고 그 숨은 다시 대기의 미생물에 변화를 준다. 타자의 의식, 말, 행동과 몸짓이 나에게 영향을 미쳐 나를 형성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렇듯 찰나의 순간에도 타자는 내 안에 늘 들어오며 나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역(逆)도 언제나 진행 중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를 생성하게 하는 '상호 생성자(inter-becoming)'로서 '눈부처-주체'다. 그러기에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볼 때 나 또한 가슴이 아프다.

모든 인간은 두뇌 속의 거울신경체제(mirror neuron system)을 통하여 타인의 아픔에 공감을 하며, 타인에게 자비심을 베풀 때 뇌가 보상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할 정도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심성이다. 노동자들이 자살하거나 산업재해로 사망할 때 그에 동체대비심을 갖는 것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인간의 본성을 구현하는 인간적인 행위일 뿐이다.

대승불교는 한 마디로 위로는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구제하자는 것이다(上求菩提下化衆生). 나의 깨달음, 선방에서 나홀로 수행만을 추구하는 것은 대승이 아니다. 부처님은 모든 생명이 부처처럼 존귀하며 피신한 생명은 내치지 말라 말씀하셨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고도 하셨다. 대승불교를 표방하는 한국불교는 이 시대의 중생인 노동자의 구제에 나서야 한다.

화쟁으로 보아도 마찬가지다. 화쟁(和諍)은 방편일 뿐이다. 원효가 명백히 밝힌 대로, 화쟁의 목적은 일심(一心)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중생을 넉넉하게 이롭도록 하자는 것이다(歸一心之源 饒益衆生). 일심은 현대 사회의 삶의 장에서는 진리와 정의와 통한다. 방법은 목적에 종속되므로, 진리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화쟁이 아니다.

원효는 화쟁을 불교이론에만 적용하였고, 수평적이었다. 이것을 21세기 현대 사회에 적용하려면 수직적 관계로 전환하여야 한다. 두 남자가 처음 만났을 때 학번이나 나이를 물어보고 이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것에서 보듯,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조직, 개인과 국가 사이에 미시든 거시든, 권력이 작동한다. 권력이 비대칭적으로 작동하는 장에서 이를 대칭으로 전환하지 않고서 행해지는 화쟁은 필연적으로 강자의 논리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국가와 자본의 연합체가 압도적으로 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절대 약자인 노동자 보고 진영의 논리를 떠나서 화쟁을 하라는 것은 무장해제를 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원효는 화쟁을 진속불이(眞俗不二)로 설명한다. 저 아름다운 연꽃이 향기 욱연하고 바람이 감미로운 언덕에 피지 않는 것과 같이 내가 부처가 되었어도 열반의 성에 머무르지 않으며,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이 세간의 중생을 구제한 뒤에 열반을 얻는 것이라 풀이한다.

내가 높이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중생이 고통 속에 있다면 나는 부처가 아니다. 그 중생을 구제하여 그를 부처로 만드는 순간에 내가 비로소 부처가 된다. 진흙보다 더한 '헬조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노예로 전락하는 법을 막지 않고서 중생구제란 공염불일 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이나 화쟁위원회가 한상균 위원장을 내치거나 이를 승인한다면, 이는 한국불교와 화쟁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자 붓다를 따르는 길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의가 정의를 이길 때, 권력자들이 약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학살할 때 신은 과연 어디에 계시냐고 묻는다. 하지만, 부처님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로 우리 앞에 와 계신데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내 것처럼 아파하는 그 자리에 부처님이 자리하신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양대 교수이자 정의평화불교연대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태그:#한상균, #조계종, #노동 개혁, #화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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