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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논문.

학술계 현안 중 하나다.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가면 학술논문이 무료로 서비스되고 있다. 처음에는 국가 R&D 연구자금이 투입된 논문이 대국민 서비스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민간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에 게재된 학자들의 논문이 수집돼 원문이 무료로 공개되고 있었다.

카피레프트 운동인가? 공유정신 실현인가? 모든 학자들은 자신의 논문을 공개하고, 무제한 복제 및 전송에 동의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저작권자의 자율성에 기반한 동의는 없었다. 한국연구재단이 KCI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40여만 편의 논문 중, 개인저자의 동의를 받은 논문은 2.5%인 1만 편에 불과하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가 NDSL 등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논문은 138만 편. 그 중 개인저자의 직접 동의를 받은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ScienceCentral(사이언스 센트럴)' 홈페이지에 공개된 논문 1만여 편 중에서도 개인저자의 동의를 받은 논문은 0건이었다.

저자의 동의도 없이 저작물이 무료로 공개, 배포되는 상황. 이는 공공기관이 저작권법 위반행위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슈퍼 갑'의 무료 공개 요구, 따를 수밖에..."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연구자의 자율적인 동의도 없이 학술논문을 무료 공개하고 있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 공공기관 무료공개 콘텐츠 현황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연구자의 자율적인 동의도 없이 학술논문을 무료 공개하고 있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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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공개 논문 175만여 편 가운데 개인저자의 동의를 받은 논문은 1만 편 미만. 공개 논문의 99.5%가 저작권법 위반 소지를 안고 있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 자저 동의 없는 학술논문 무료 공개 무료 공개 논문 175만여 편 가운데 개인저자의 동의를 받은 논문은 1만 편 미만. 공개 논문의 99.5%가 저작권법 위반 소지를 안고 있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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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개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9월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을 통해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학회에 대한 정부의 평가와 지원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등재지, 우수 학술지 등의 평가와 이에 따른 지원금 지급, 공공기관의 평가와 지원 권한 때문에 열악한 학회 입장에서는 '슈퍼 갑'의 논문 공개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도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K대학 김아무개 교수는 "한국연구재단 KCI 사이트에 내 논문 20여 편이 무료 공개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논문의 질적 평가를 떠나서 내가 내 논문의 주인인데, 난 아무런 결정권한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논문은 전체 국민의 일반 소비재가 아니다, 학문연구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개인저자의 권리가 무시되는 현실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상혁 숭실대학교 교수(법학)는 지난 5월 13일 <매일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국연구재단이 제공하는 정보는 학회들이 평가를 받기 위해 학술지 원문을 제출해 생긴 것이지 자체 생산한 자료가 아니다"라며 "국가기관이 지원과 평가라는 양날의 검을 쥐고서 저작권 양도를 종용하여 무상 공개하는 방식은 저작권법 정신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

또 임 교수는 앞서 3월 23일 <한국대학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우리 사회에서는 유독 학술정보의 저작권에 대해서만은 인정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크게 나온다"며 "저작물을 무상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작자에게 평가 상 불이익을 주는 등의 행위는 저작권법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권리와 자율성 침해 심각" 

실제 한국연구재단은 학술지를 등재(후보)지로 평가하는 데, '논문 무료 공개'를 평가 항목으로 삽입했다. 또 우수학술지 평가에서도 무료 공개를 유도하는 항목을 포함 시켰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도 학술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평가항목에서 논문 무료공개 여부를 12점으로 배정했다.

한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학술단체와 '업무협약서'를 통해 논문공개를 하고 있다. 그러나 논문 수집과 공개의 근거로 제시한 '업무협약서'는 불평등하고 불공정 계약이라는 것이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지적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저작권 침해, 계약기간이 없는 불공정성, 권리의무의 불평등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논문 무료공개 사업은 학회와 저작권자의 권리와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방적인 계약서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연구재단은 우수학술지를 평가하는 데 논문 무료 공개 여부를 평가 항목으로 포함시켰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술지 평가 항목 한국연구재단은 우수학술지를 평가하는 데 논문 무료 공개 여부를 평가 항목으로 포함시켰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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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총에서는 학술단체를 지원하는 평가에서 논문 무료공개 여부를 12점으로 배정했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학술지 자체평가 항목 과총에서는 학술단체를 지원하는 평가에서 논문 무료공개 여부를 12점으로 배정했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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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가 논문 수집과 공개의 근거로 제시한 '업무협약서'는 불평등하고 불공정 계약이라는 것이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지적됐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 KISTI 학술단체 업무 협약서 KISTI가 논문 수집과 공개의 근거로 제시한 '업무협약서'는 불평등하고 불공정 계약이라는 것이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지적됐다. 출처 : 2015 국정감사 정책자료집_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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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구름빵> 저작권 분쟁,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대해서도 저작권 징수 등 최근 저작권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학술논문의 저작권 문제는 이슈로 제기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지식공공성 딜레마>를 쓴 김영수 경상대 사회과학원 교수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수 있을까요? 한국연구재단과 공공기관은 연구자들의 승진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평가권한을 쥐고 있어요. 또 연구지원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논문 저작권 침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이 연구자들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사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기사에서는 공공기관이 논문 무료공개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와 '학술지 국제화의 허와 실'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덧붙이는 글 | 김봉억 기자는 누리미디어 저작권기획팀 팀장을 맡고 있다. 학술논문 전자저널 서비스 DBpia의 콘텐츠를 모으고, 교수, 연구자, 학회와 소통하는 일을 한다. 학술·고등교육전문지 <교수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태그:#학술논문, #논문 저작권, #논문 무료 공개, #학술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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