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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표지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표지
ⓒ 생각비행
12월 1일자 경향신문의 만평, '김용민의 그림마당'에는 새누리당의 김무성대표가 기울어진 축구장 위쪽 골대에 기대어 앉아 있고 저 아래쪽에서는 내홍에 휩싸인 새정치연합의 추태가 묘사되어 있다. 새누리당은 가만히 있어도 야권의 자중지란을 통한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 하나 이목을 끄는 것은 국회 내 원내교섭단체를 목표로 뛰고 있는 진보정당, 정의당의 약진이다.

그런데 정의당을 보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공중 분해된 또 하나의 진보정당이었던 통합진보당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내란 음모'라는 지난 세기말 사멸된 줄 알았던 죄목으로 형장의 이슬이 되어버린 정당 말이다.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였던 인물들이 끝없는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내놓은 책,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를 읽는다. '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가슴 아프다.

진보의 분열

책은 '진보정당은 분열과 패권주의로 망한다'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2012년,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연대가 통합한 뒤 치른 총선에서 진보당은 13석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4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그런데 진보당은 경선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이 선거 전부터 제기되고 있었다. 총선을 치르기 전 이미 조성주 후보가 김재연 후보의 당선에 부정이 있었다며 문제를 제기해 갈등을 예고했다. 논란의 시발은 청년비례 후보로 출마한 조성주 후보가 제기한 '소스코드 조작'의혹이었다.

저자는 "엄청난 범죄가 될 수 있는 소스코드 조작 의혹은 사실무근이었다고 밝힌다. '소스코드를 조작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조작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다'는 박무 진상조사위원의 어이없는 궤변만 남았을 뿐이다."(36)라는 결론을 소개하면서. "실제로 조직적 부정이 이뤄진 곳은 부정경선 문제를 강력히 제기한 참여계(국민참여당 출신) 일부 인사였다. 참여계 출신 고영삼 위원은 검찰 수사 결과 구속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경선부정 문제를 앞장서 제기한 참여계 오옥만 후보 역시 구속됐다."(37)는 사실을 더한다.

만약 이러한 분열이 없었더라면 다시 말해 진보당이 계파 간의 패권 다툼 없이 조직적으로 공고하게 뭉쳐서 친일과 독재, 재벌문제 등에 천착했더라면 분당사태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석기 내란음모'라는 엽기적이고도 말세적 일대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지금처럼 정부의 대대적인 대국민적 퇴행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민주주의가 불과 몇 년 만에 낯설게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종북주의'의 기원

"종북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연원을 따지자면, 2001년 사회당 원용수 대표가 '종북세력과 통합할 수 없다'며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거절한 발언에서 시작된다. 이때만 해도 익숙지 않았던 종북이라는 개념이 확산된 이유는 2008년 1월 조승수 전의원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기 직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 탓이 크다. 하지만 지금 누구도 사회당의 원 대표와 정의당의 조 전 의원을 종북이라는 개념의 최초 주창자요 확산자로 주목하지 않는다."(74)

저자는 이제 "'종북'은 국제정세의 변화로 이념공세의 표적을 찾지 못하던 수구세력의 창작물로 볼 수도 있다. 머릿속 생각을 단죄하려는 과거의 색깔공세보다 과녁은 줄고 화살의 강도는 더 세진, 한 단계 진화한 반공주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75)는 진단을 내놓는다.

이러한 종북주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전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친일'과 '독재'를 키워드로 하는 '과거사 청산'문제에 접근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반공과 승공이 종북으로 진화하면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정의는 그 실현이 요원하게 되고 말았다.

미래의 진보

현재 진보정당은 정의당으로 대표될 수 있다.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등은 정의당 대표와 당원들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의당은 국민의 대변자이기에 앞서 노동자와 노동의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태생적 의무를 가지고 있는 정당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에 그 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가입된 노동자는 단 10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중 70퍼센트는 대기업 노동조합원들이라고 하니 노동자들의 권익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수정당이 끊임없이 정치와 일상적인 삶을 분리하고 정치를 '정치인, 정당들의 몫'으로 나누려고 시도하는 것과 달리, 진보정당은 유권자들의 삶과 정치를 결합하려 노력한다"(138)는 저자의 진단에 공감한다면 살아남은 진보정당의 이른바 스타정치인들은 통합진보당에 상당한 채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분열과 음모, 협잡이 아닌 통합과 단결을 통해 진보정권 창출에 일조해야 한다. '진보가 분열로 망한다'고 했으니 통합과 단결을 이룬 진보는 성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부패로 망하는 수구세력'을 제대로 단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읽으면서 먹먹해진 가슴을 달래느라 장수막걸리를 퍼먹었다는 장정일은 추천사에서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가 자신이 읽은 가장 슬픈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정당이 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한 시대가 독재로 얼룩지는, 그래서 앞으로도 한동안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정치인들의 필독서가 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신석진, 김정엽, 이상민, 안창민 지음, 생각비행, 2015년 10월 5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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