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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당일 무리한 음주단속에 항의하며 실갱이중인 박철씨와 경찰관. 적법한 업무냐는 항변에 경찰관은 반말과 고함으로 응대했다. 노란 티를 입은 사람은 박씨의 아들.
 사건 발생 당일 무리한 음주단속에 항의하며 실갱이중인 박철씨와 경찰관. 적법한 업무냐는 항변에 경찰관은 반말과 고함으로 응대했다. 노란 티를 입은 사람은 박씨의 아들.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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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1일 낮 12시 39분. 한 통의 문자가 휴대폰으로 들어왔다. 많은 이들에게 공권력 남용 피해자로 알려진 충주 귀농 부부 남편 박철씨의 문자였다. 그래서 열어본 문자는 말 그대로 내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다.

"반장님. 예상보다 빠르게 대법 선고가 다음 주 목요일인 26일 오전 10시 20분, 2호 법정에서 열립니다. 무죄선고, 강한 예측. 즉시 씩씩하게 전화 드리겠습니다."

지난 2009년 6월 27일 발생하여 무려 6년간에 걸친 형사 소송. 같은 사건으로 부부가 번갈아가며 세 번 기소되었고, 모두 합쳐 9번째 재판이 열리는 날. 경찰의 황당한 불심검문에 격분하여 항변한 죄로 먼저 남편이 기소되고, 그 남편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내 남편은 경찰의 팔을 꺾지 않았다'는 증인이 위증이라며 또 부인이 기소된 사건.

그리하여 교육 공무원이었던 부인은 유죄 판결로 직위가 파면되었고  귀농의 꿈을 안고 내려간 충주에서 남편은 지독한 고통 한가운데에 있어야 했다. 지난 6년간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경찰, 검찰, 법원의 소환 우편물 앞에서 무슨 희망과 낙이 있었을까. 그런 공권력 남용에 의한 피해 사건으로 이 사건은 기록될 것이다.

청주지법 구창모 부장판사, 고맙다

2015년 8월 19일 세번째 기소사건 항소심 무죄 판결문. 박철씨에게 1심 유죄 선고가 파기된 후 무죄가 내려졌다.
 2015년 8월 19일 세번째 기소사건 항소심 무죄 판결문. 박철씨에게 1심 유죄 선고가 파기된 후 무죄가 내려졌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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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끔찍한 악몽에 희망의 도화선을 그어준 판사가 있었다. 같은 사건으로 다시 기소된 부인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남편이 "내 아내는 위증을 하지 않았다"며 증언한 것이 또 위증이라며 기소된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을 맡은 사람은 청주지법 제1형사부 구창모 부장판사였다.

이미 세 번째 기소의 1심 판결에서 위증이 인정된다며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던 박철씨는 '죽어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어떤 심정으로 항소하신 것이냐고 하니 "희망은 없었지만 끝까지 가보겠다는 결심"이었다고 박철씨는 밝힌다.

"어떻게 그런 결심이 가능하냐?"며 되묻자 돌아온 답은 간결했다. "나는 경찰관의 팔을 꺾은 적이 없다. 그렇기에 재판에서는 졌지만 나는  당당했다. 그 진실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그 믿음에 화답한 이가 바로 구창모 부장판사였다. 구 판사는 치밀했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각도에서 진실을 찾고자 노력했다. 기존의 유죄 의심을 버리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객관적으로 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내려진 판단.

구 부장판사는 먼저 유일한 증거자료로 확보된 현장 동영상 촬영본을 국과수로 보냈다. 야밤에 촬영된 동영상을 '최대한 밝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러자 보정을 통해 밝아진 화면서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바로 박철씨에게 팔이 꺾였다고 주장해온 경찰관이 몸을 비틀며 앞으로 수그리던 순간이었다.

재판부는 박철씨에게 팔이 꺾였다는 경찰관이 상체를 숙이는 장면에서 박철씨가 바라보는 시선에 주목했다. 만약 경찰관의 주장처럼 박철씨가 팔을 꺾었다면 응당 박철씨의 시선은 피해자를 바라봐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화질이 개선된 동영상 속에서 박철씨의 시선은 달랐다. 그 순간 피해자가 아닌 다른 경찰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팔을 꺾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경찰이 팔 꺾인 시늉을 하고 있는 장면
 경찰이 팔 꺾인 시늉을 하고 있는 장면
ⓒ MBC 뉴스투데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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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구창모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박 경사의 팔을 잡아 비틀거나 한 일이 없음에도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가 박 경사가 그와 같은 폭행을 당한 것인 양 행동한 것으로 볼 여지가 높다"며 박철씨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상식의 눈높이에서 진실을 바라본 결과였다.

그날, 박철씨는 나에게 무죄 낭보를 알려왔다. 휴대폰을 통해 들려온 그 소식에 우리는 순간 함께 만세를 불렀다. 만 6년에 걸친 이 지긋지긋한 악몽이 마침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 꿈만 같았다. 그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모든 희망의 도화선, 바로 구창모 부장판사 덕분이었다.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 법관. 구창모 부장판사에게 내가 진심으로 고마운 이유다. 참 고맙다.

첫눈과 함께 찾아온 무죄 확정판결

하지만 검찰은 끈질겼다. 한번 '찍은' 사건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대한민국 검찰이 다시 상고한다. 그것도 상고 기한 마지막 날, '제발 상고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박철씨 부부의 가슴이 바짝 말라가던 그때 검찰은 보란 듯이 상고했다. 그 심경을 박철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남겼다.

"상고 기한 마지막 날의 밤에 검찰이 상고장을 접수함으로써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 또 지루한 기다림과 불안한 날들이 시작됐지만, 만 6년을 버텨온 질김으로 또 버텨낼 것이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한번 엮이면 헤어날 길이 없는 우리 사회의 비극은 이 사건에서도 여지없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법원으로 상고된 이 사건이 불과 두 달 만에 선고가 잡혔다는 것이다. 대법원 선고가 길어질수록 박철씨 부부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일인데 다행히 이례적으로 빠른 선고 기일이 잡혔다

그래서 대법원 선고 기일이 잡혔다는 그 문자를 박철씨에게 받은 후 나는 어지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2014년 9월, "제 억울한 사연을 한 번만 살펴봐 주실 수 있나요?"라는 문자 이후 박철씨가 보내온 자료를 통해 처음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말 그대로 믿기 어려운 공분을 느꼈다.

2014년 9월 20일, 박철씨가 처음 고상만의 이메일로 자신의 사연을 보냈다. 그의 사연을 읽으며 나는 손이 부들 부들 떨렸다.
 2014년 9월 20일, 박철씨가 처음 고상만의 이메일로 자신의 사연을 보냈다. 그의 사연을 읽으며 나는 손이 부들 부들 떨렸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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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대한민국에서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이 '괘씸죄'라고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내가 진행하는 국민라디오 팟캐스트 <고상만의 수사반장>에서 이 사연을 소개했다. 이후 뉴스타파 측에 이 사건을 다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많은 분들이 이 사건을 알게 되었고 고맙게도 함께 공분해 줬다.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서 억울함이 해소되기를 바란다는 글이 넘쳐났다. 특히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인 박훈 변호사, 그리고 충주의 안혜정 변호사의 노력 덕분에 자칫 묻힐 수 있었던 이 사건은 사회적 관심사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맞이한 운명의 그날, 11월 26일 목요일 오전 10시 20분. 서울에 첫눈이 내리던 그날 나는 이미 시작되었을 대법원 판결 결과를 기다리며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휴대폰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뜬 이름은 '박철 충주 형님'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떤 말이 들려올까. 만세일까. 아니면.....

"반장님. 무죄입니다. 무죄. 고맙습니다."

저 멀리 들려오는 감격. 말로 다할 수 없는 현기증. 이번엔 만세도 부를 수 없었다. 그저 먹먹했다. 그동안 지켜본 이분들의 고통을 알기에, 그 억울함을 알기에 나는 뭐라고 말을 다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박철씨 부부는 내가 있던 미디어협동조합 국민라디오국으로 찾아왔다.

<고상만의 수사반장> 녹음을 위해 준비 중인 그곳으로 굳이 찾아오시겠다는 말씀에 그러시라고 하니 그 첫눈을 헤치고 찾아온 박철씨 부부.  성큼 사무실로 들어서시는 박철씨 부부를 반갑게 맞이하며 나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박철씨는 뜻밖의 말씀을 꺼냈다.

"반장님. 저... 한 번만 끌어 안아주세요."

그랬다. 나는 그분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느꼈다. 몸으로 전해져 오는 그분의 지난 6년간의 고통과 억울함을. 힘겨움과 상처를. 지난 6년간 망가진 일상의 한이 제 자리를 찾아오기 까지 감당해야 했던 그 질긴 아픔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오랜 시간을 견뎌낸 그 분에게 나는 또 참 고맙다.

연행되는 박철씨 뒤에서 외친 경찰관의 한마디, 끔찍했다

박씨 부부는 세번 기소돼 지난 항소심 전까지는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박씨 부부는 세번 기소돼 지난 항소심 전까지는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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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 사건은 갈 길이 멀다. 세 번째 사건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앞선 두 사건으로 받은 유죄를 다시 바꾸려면 또 다른 재판이 필요하다. 담당 변호인들은 앞선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에 재심을 청구하여 빠른 시간 내에 무죄를 받아내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빠른 재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이 상고를 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과연 검찰은 그렇게 해 줄까. 대법원에서 세 번째 기소 사건에 대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에 관련된 경찰관의 사과는 없다. 관할 경찰서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할리우드 액션을 한 것으로 재판부가 판단한 해당 경찰관은 이 사건을 보도한 <뉴스타파> 등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언론 중재위에 제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할 경찰서 측 역시 사과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가 한번 공권력과 잘못 엮이면 어떻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참담한 사례 중 하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글을 마치기 전, 꼭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사건 당일인 2009년 6월 27일 경찰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문제의 동영상중 한 장면이다.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경찰관의 황당한 불심검문에 박철씨가 강하게 항변하자 경찰관 3명은 박철씨 가족을 둘러싼 후 이해할 수 없는 자극을 가한다.

흥분하여 항의하는 박철씨에게 '욕을 더 하라'고 부추기는가 하면 심지어 한 경찰관은 "내가 경찰복을 입고 있는 것이 한심스럽다"는 말을 하며 들이대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행위가 공무원인 경찰이 할 수 있는 합법적인 행위인지 묻고 싶다.

그런데 이 4분 10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이 동영상 말미 부분이다. 동영상이 끝나가는 4분 6초경, 세 명의 경찰관에 둘러싸여 실갱이중인 박철씨를 촬영하던 경찰관의 입에서 터져나온 한마디 발언이었다.

박철씨가 팔을 꺾었다며 한 경찰관이 몸을 앞으로 수그린 후, 경찰관들은 박철씨를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한다. 그 후 박철씨는 아내와 고3 아들이 지켜보는 상태에서 땅바닥에 짓뭉개진 채 뒤로 수갑이 채워졌다. 그리고 지구대로 연행되기 위해 끌려가는 박철씨 뒤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던 경찰관의 입에서 한 마디가 터져 나와 녹음되어 있었다. 그 말, 이랬다.

"오케이."

그랬다. '오케이.' 경쾌한 음률에 실린 그 단어. 끔찍했다. 그렇게 좋았을까. 과연 이것이 대한민국 경찰관이 할 수 있는 행동인가 나는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해 그 제복을 입었는지, 왜 경찰로 일하는지 나는 정말 그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충주 공권력 남용 피해자 부부 사건. 재심을 통해 잃어버린 6년이 다시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 우리 모두가 끝까지 함께 해 줄 것을 호소한다. 지난 6년간 당한 두 분의 고통에 깊은 위로를 전한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충주 귀농부부 사건, #공권력,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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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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