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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워서 에어컨을 끄고 또 더워서 켜길 반복하니 어느새 아침이다. 밤새 추위와 더위에 뒤척인 탓인지 몸이 개운하질 않았다. 감기기운 때문에 의식마저 몽롱해진 기분이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뒤 가볍게 산책을 했다.

인도에서 웬만한 동물은 다 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 눈앞을 지나가는 멧돼지 무리를 보고서 생각이 달라졌다. 검은 멧돼지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지나가는가 하면, 건너편에선 뭘 찾는지 아예 쓰레기더미에 코를 박고 몰려있었다.

숲이 우거져 있는 길목에 남자들은 스카프를 둘러맨 것처럼 하반신만 가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전부 맨 발로 돌아다니는 중이다. 아마다바드(Ahmedabad)와는 전혀 다른 야생이 느껴지는 소나무키(Sonamukhi)만의 동네 정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숙소에서 바라 본 마을의 정경.
 숙소에서 바라 본 마을의 정경.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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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다시 돌아왔을 때 산디가 서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다들 자는 것 같다며, 그동안 함께 산책을 나갈지 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서 울퉁불퉁 파여진 비포장도로를 따라 도착한 곳은 소나무키(Sonamukhi)역. 추억이 많은 곳이라며 기차역을 소개했다. 보기에는 운행이 중단된 것처럼 한산해보였지만 하루에 네 번 정도 기차가 지나다닌다고 한다.

"그럼 여기서 기차 타고 델리도 갈 수 있어?"

 소나무키(Sonamukhi) 역의 플랫폼
 소나무키(Sonamukhi) 역의 플랫폼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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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는 소나무키에서 델리까지 기차를 탄다면 하루가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게다가 직행이 없어서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데 하루에 네 번 있는 열차도 뱅쿠라(Bankura)로 가는 편이었다. 뱅쿠라에서는 인도 전 지역으로 갈 수 있는 급행 기차가 있었다.

기차역 매점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신기해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산디는 소나무키가 관광과는 전혀 거리가 먼 외딴 지역이라 아마 나같은 외국인을 보는 일이 처음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내가 소나무키에 온 첫 번째 한국인이지 않을까? 왠지 쉽사리 찾아오기도 힘들 것 같아." 

산디는 아쉽게도 내가 소나무키를 방문한 두 번째 한국인이라 말했다. 우연히 델리에서 만난 한국인이 현지인의 집에 꼭 머물러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코끼리에 밟혀 죽을 수도 있는 곳

다른 지역보다 소나무키는 유독 인공적인 개발이 덜 된 마을의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자연이 공존하는 생활 환경이 조금 낙후된 풍경을 자아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기존 인도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소나무키 사람들은 벵갈어(Bengali: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서벵골 주 공용어)를 사용해. 다른 지역 인도 사람들보다 벵갈어를 쓰는 방글라데시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게 어쩔 땐 더 편하거든." 

소나무키가 속해 있는 서벵골 주(West Bengal)는 방글라데시(Bangladesh)와 매우 인접한 지역이었다. 국민 전체가 벵갈어를 사용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과는 언어 소통에 불편함이 없다는 얘기에 언어가 비슷하면 문화나 종교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 인도와는 다르게 방글라데시는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을 믿고 있다고 한다. 인도 각 지역마다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소수의 무슬림처럼 방글라데시는 국민의 일부만이 힌두를 믿고 있었다. 그래도 문화적으로는 비슷한 점이 더러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소나무키 기차역 매점에서 짜이를 끓이고 있던 남자. 긴 천을 둘러서 치마처럼 입고 있었다.
 소나무키 기차역 매점에서 짜이를 끓이고 있던 남자. 긴 천을 둘러서 치마처럼 입고 있었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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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옷은 룽기(lungi)라는 옷인데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흔히 치마처럼 천 하나를 하의 전체에 둘러서 입는 거야." 

짜이를 끓이고 있는 매점 주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혼자 산책을 하면서 유독 많이 보았던 치마(?) 입은 남자들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인도 남자들이 즐겨입는 일상복으로 방글라데시에서는 전통의상이기도 했다.

기차역을 벗어나 소나무키에서 유명하다는 사원에 들른 후 산디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대문 전체가 꽃으로 장식된 분홍색 아치형 외관이 오늘 밤 있을 경사를 알리는 듯 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한 여인이 내 손을 잡아주시며 매우 반가움을 표하셨다.

"우리 어머니야, 이미 수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서 널 만나고 싶어 하셨어." 

나를 포근히 안아주시며 인사를 하시는데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졌다. 내 손을 부여잡고 하시는 말씀의 전부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왠지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저 내가 와서 반갑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는 듯 했다. 나는 집안에 계신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서 자리에 앉았다.

아침에 끓인 짜이, 직접 키우는 소에서 짠 우유로 만든 간식(라스굴라Rasgilla: 서벵골주에서 자주 먹는 디저트), 앞 마당 나무에서 딴 망고까지 쉴 새 없이 음식 공세가 이어졌다. 모두 가공되지 않고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 온 먹거리였다.

델핀과 안토니도 산디의 집을 찾아 함께 자연식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자 산디의 처남은 우리 더러 소나무키 숲(Sonamukhi Forest)에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어딘가에 코끼리가 없을까 계속 두리번 거렸던 소나무키 숲(Sonamukhi Forest)
 어딘가에 코끼리가 없을까 계속 두리번 거렸던 소나무키 숲(Sonamukhi Forest)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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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키 숲(Sonamukhi Forest) 거기가 어디에요?"

소나무키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굉장히 큰 숲으로 코끼리가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소나무키 전체 면적보다도 훨씬 더 큰 광대한 야생의 밀림이었다.

"그럼 우리 거기 코끼리 보러 가는 거예요?"

소나무키 숲 안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마침 산디의 삼촌이 살고 계셨다. 아마다바드 결혼식때 만난 우리를 꼭 다시 보고 싶다며 점심식사를 초대해 주셨다. 숲을 구경하며 들르기로 했다. 차량에 탑승하고 마을을 벗어나 숲으로 진입하자 정말 야생의 밀림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숲에 코끼리가 많이 사는데 가끔 코끼리에 밟혀 죽는 사람들도 생겨. 워낙 크고 넓어서 길을 잃기도 쉬운 곳이야." 

가도가도 끝없는 숲길에서 내비게이션은 이미 먹통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 몇 번을 후진하면서 겨우 도착한 마을. 나와 프랑스 친구 두 명이 차에서 내리자 동네 꼬마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맨발로 달려와 우리를 바라보던 눈빛은 마치 이곳에 외계인이 출몰한 것처럼 보였다. 부끄러운 듯 거리를 두고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내 존재 자체가 신기한가보다. 동네 주민들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리송한 시선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산디의 삼촌댁에서도 직접 짜낸 우유로 만든 간식을 주셨다. 살짝 비리면서도 고소함이 감돌았다. 소나무키가 도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삼촌이 사시는 동네는 고립된 숲 속 마을이었다. 구멍가게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은 찾아볼 수가 없다. 날씨는 덥지만 조금 특별한 체험을 해보자며 숲 속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삼촌께서 만들어주신 치킨 커리를 받고서 다시 차량으로 이동했다. 나를 졸졸졸 따라오는 아이들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산디는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자세히 보니 돈이었다. 차를 탄 후에 아이들에게 돈을 준 이유를 물어보자 그는 모델료를 지불했다고 대답했다.

 소나무키 숲속 마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 멋진 모델이 되어주었다.
 소나무키 숲속 마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 멋진 모델이 되어주었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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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나에게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내가 느꼈던 시선은 그들은 너의 모델이 되어 주었거든. 보통 작가들이 사람을 촬영하면 그들이 모델에게 비용을 지불하잖아. 나는 수지가 사진을 찍을 때 아이들이 수지 카메라의 모델이 되어줬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에 대신 비용을 주게 된 거야."

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은 적은 있었지만, 돈을 지불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의사를 묻지 않고 사진을 찍은 적이 더 많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내 마음대로 사람들을 담아갔다. 내 카메라에 담겨진 수많은 얼굴들. 이들은 아마 내 카메라에 자신이 담겨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나조차도 말없이 누군가 내 얼굴을 찍어간다면 기분이 좋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일일이 의사를 물을 수는 없겠지만, 풍경이 아닌 사람 위주의 촬영은 허락을 구하는 것이 타당했다. 할 수 있다면 이런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필요한 여행의 에티켓이 아닐까 생각했다.

차를 중간에 세워 정말 밀림 한 가운데서 치킨 커리를 먹었다. 집안이든 밖이든 살인적인 더위가 지속되며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산디 처남이 "쉿" 우리를 주목시키며 킹피셔(kingfisher: 인도의 대표 맥주)를 꺼내들었다.

"여기서 마시는 맥주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걸?"

그가 병을 흔들고서 숟가락으로 맥주병을 따자 거품이 흘러넘쳤다. 손으로 치킨을 뜯어가며 사이좋게 맥주 한 병을 갈라마셨다. 밀림 속 무더위에 시원한 맥주 한 모금. 안 먹어본사람은 이 맛 모를테지.

저녁 나절의 결혼식, 산더미 같은 결혼식 선물

다시 산디의 집에 돌아와서는 더위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쉬어야 할 것 같아 계속 방에서 에어컨을 쐬다가 머리가 아파 밖으로 나오길 반복했다. 점심을 먹을 기운도 없었다. 물만 계속 들이키고 앉아 있는데 어느새 목소리까지 잠겨버렸다.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먹었지만 좀처럼 몸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몸에 문제가 생긴 듯 했다.

오후 늦게 아마다바드(Ahmedabad)에서 쿠루티의 오빠와 새언니가 도착했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가 곧 결혼식장이 될 장소였는데, 에어컨이 있는 방은 나와 프랑스 친구가 머물던 곳 뿐이었다. 아무래도 혼자 방을 쓰고 있던 내가 신부측 가족을 위해 비켜주는 게 맞을 것 같아서 짐을 빼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새 방에 들어간 순간, 내가 어제 머물렀던 공간이 천국처럼 느껴질 정도로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를 어쩌면 좋지. 방은 마치 한증막처럼 공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시작되는 결혼식.  식장 입구에서 개 한마리가 곤히 자고 있다.
 저녁이 되어서야 시작되는 결혼식. 식장 입구에서 개 한마리가 곤히 자고 있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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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젖어들자 우리가 머물던 숙소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건물 입구는 화려환 외관이 장식되어 쿠루티와 산디의 결혼식을 알렸다. 이미 아마다바드에서 결혼식을 치렀기에 오늘은 신랑측 하객을 모시고 간단히 식사 대접만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말 특별한 이벤트 없이 하객들이 신부대기실로 가서 인사를 하는 행렬만이 이어졌다 .

"아마다바드는 하루종일 결혼식을 했잖아. 소나무키는 보통 저녁에 결혼식을 올려." 

 인도의 서쪽 아마다바드(Ahmedabad)보다 신부의 더 짙은 화장과 화려한 장신구가 돋보이는 동쪽 소나무키의(Sonamukhi)의 결혼식 모습
 인도의 서쪽 아마다바드(Ahmedabad)보다 신부의 더 짙은 화장과 화려한 장신구가 돋보이는 동쪽 소나무키의(Sonamukhi)의 결혼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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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대기실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쿠루티는 아마다바드와는 모습이 달라보였다. 인도 동쪽과 서쪽의 결혼식 차이가 있다면 바로 신부의 메이크업과 의상이었다. 서뱅골주(West Bengal) 에서는 신부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화장이 좀 더 진하며 이마에 붙이는 빈디도 매우 크다고 하였다.

알타(Alta)라는 장식도 벵갈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신부만을 위한 것으로 특정한 디자인을 손과 발에 빨갛게 그려넣는 것이었다. 결혼을 위해 장만하는 사리와 장식품에 대한 지출도 서쪽보다 동쪽이 더 많은 편이라고 한다. 결혼은 아주 경사스러운 인생의 행복으로 간주되는 날이기에 아낌없이 소비를 하는 편이었다.

 결혼식 메뉴가 테이블 마다 놓여있었다. 고기와 생선으로 메인 메뉴가 구분되며, 난과 차파티와 비슷한 종류의 파파덤(Papad)도 맛볼 수 있었다.
 결혼식 메뉴가 테이블 마다 놓여있었다. 고기와 생선으로 메인 메뉴가 구분되며, 난과 차파티와 비슷한 종류의 파파덤(Papad)도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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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만히 쿠루티를 보며 앉아있다가 현기증을 느꼈다. 곧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에 마침 지나가던 산디의 남동생에게 다가가 약국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산디 남동생 수만은 내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어디가 아픈지 물었다. 나는 감기기운이 심해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나를 오토바이에 태웠다.

"왜 아픈 걸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아프면 큰일나요." 

그는 걱정을 하면서 소리쳤다. 나는 단순히 감기라고 말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나를 돌봐야 하는 임무가 있다고 반복했다.

"당신은 우리의 소중한 손님입니다. 멀리서 왔는데 아프면 큰일납니다. 제겐 당신의 건강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형의 결혼식은 보지도 못하고 멀리서 온 손님이라는 이유로 나를 챙겨야 하는 부담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아프지 말라는 말을 계속했다. 다급한 마음에서인지 그는 점점 속력을 올렸다. 땀이 범벅이 된 그의 허리춤을 꽉 잡았을 땐 금방이라도 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데리고 간 건물 1층에서 미친듯이 문을 두들겼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건물 뒤편에 있던 약국으로 달려갔다. 그는 약사에게 무언가 물어보고서 다시 아까전 그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다시 한참동안 문을 두들기자 한 남자가 나왔다. 수만은 그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냈지만 결국 돌아서며 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1층에 있던 병원 운영시간이 다 되어서 2층에 살고 있는 의사를 찾아갔던 거야. 의사는 진료시간이 끝났다며 나를 계속 돌려보내려 했어. 진료를 할 수가 없다고 하네. 약국에서 약을 사면 된다고."

나는 수만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진심으로 챙겨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감기 기운이 심하긴 했지만 큰 병은 아닐테니 약국에서 약을 사먹자고 말했다. 그에게 건네받은 네 가지 종류의 약을 바로 털어 먹고서 다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결혼식장 1층에서는 신랑 신부에게 인사를 끝낸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2층 신부대기실에서는 하객들이 끊임없이 줄을 지어 선물을 주면서 인사를 했다. 식당 규모도 200석 정도로 꽤 컸으며 계단까지 줄서있는 사람들도 어림잡아 50명은 넘는 듯했다.

쿠루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객들과 사진을 찍고 인사하기를 반복하는 행렬은 끊이질 않았다. 저녁식사를 먹으러 갔지만 여전히 입맛이 없어서 한숟갈 뜨고서 다시 쿠루티가 있는 신부대기실로 올라왔다. 쿠루티 옆에는 어느새 하객들이 놓고간 선물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게 다 뭐야? 진짜 선물 많이 받았다."

아마 대부분 사리일거라고 말하는데 평생 입어도 모자랄 사리를 다 받은 듯 했다. 식이 끝나고 산디의 식구들이 나에게 몰려와 안부를 묻는다. 나는 정말 괜찮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서 놓아주시질 않았다. 아버지도 먼 여정에 고생했다며 나를 걱정해 주신다. 갑작스레 내가 눈물을 글썽이자 산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나를 동시에 안아주셨다. 두 분의 따뜻한 품이 좋아서 한참을 안겨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누웠는데 더워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함께 자면 안 되냐고 묻고 싶다가도 좀 참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여행 내내 나와 한 방을 썼다. 지금이라도 둘만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누워있으니 눈물만 흐른다.

지금은 아파서 힘들고 더워서 괴롭지만 마음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외로운 타지에서 나를 챙겨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더워서 헉헉거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해 밖을 나왔더니 마침 수만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어딜 가냐 묻자 그가 나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너무 더워서 다들 옥상에서 자고 있거든. 시원해. 너도 옥상에 와서 자." 

옥상에 올라가니 잘 곳이 없을 정도로 여기 저기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밤을 본적이 없는 듯하다. 셀 수 없는 별 무리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도 생기롭게 빛나고 있었다. 동물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가 점점 귓가에 선명히 울려퍼진다.

이 지독한 더위 속에도 생명이 살아숨쉬는 생동감이 전해졌다. 여전히 잠을 잘 수 없는 더위에 멀뚱히 서있는 지금, 잊을 수 없는 따뜻함과 묘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야생의 밤을 만끽하는 중이다. 내일이면 이마저도 돌아가고 싶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겠지.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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