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마카오 도박' 삼성 임창용 선수 전격 소환조사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소속 임창용을 지난 11월 25일 전날 소환 조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도박장 운영업자로부터 임씨가 마카오에서 원정도박을 벌였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전날 오후 9시께 임씨를 불러 관련 사실을 추궁했다. 사진은 지난 4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의 임창용.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소속 임창용을 지난 11월 25일 전날 소환 조사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풍운아' 임창용(39)이 파란만장했던 야구인생의 벼랑 끝에 몰렸다. 임창용의 소속팀 삼성은 2016년 보류선수 명단에서 임창용의 이름을 제외했다. 사실상의 방출 통보다.

임창용은 올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불거진 '도박 파문'으로 윤성환-안지만과 함께 엔트리에서 제외된 바 있다. 이어 2차 드래프트에서도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도 빠졌다. 지난 11월 24일에는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까지 받았다. 최악의 경우 현역 생활 강제 은퇴에 이어 사법 처리까지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화려했던 그의 커리어

20년 가까이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야구 스타였던 임창용의 몰락은 본인에게도 한국야구에도 큰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진흥고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에서 고졸 신인으로 데뷔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한 임창용은 3년 차인 1997년부터 14승 8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주목받았다. 1998년에는 34세이브를 올리며 생애 처음이자 KBO 역대 최연소 구원왕에 올랐다.

임창용은 그해 시즌이 끝나고 양준혁과 맞트레이드되며 삼성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적 후에도 2000년까지 3년 연속 30세이브를 달성하며 선동열의 뒤를 잇는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선발로 보직을 변경하고도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와 44승을 수집하며 삼성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2002년에는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이기도 했다. 2004년부터는 다시 마무리로 전환했다.

임창용의 야구인생은 30대를 넘어가면서 연이은 격랑에 휩싸였다. 혹사의 후유증이 불러온 부상과 부진으로 3년을 허비했다. 2006년에는 고작 1경기 출전에 그쳤다. 국내 전문가들도 임창용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하였다.

하지만 임창용은 보란 듯이 반전을 일궈냈다. 모두가 한물갔다고 평가하던 시기에 임창용은 돌연 일본 진출을 선언하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야구는 내로라하는 한국야구 스타들이 줄줄이 쓴맛을 보면서 한국 선수들의 무덤이라 불릴 만큼 성공사례가 드물었다. 그러나 임창용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임창용, 올스타전에서도 호투 일본프로야구에서 3년 연속 20세이브를 달성하며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한 임창용(야쿠르트)이 지난 2010년 7월 24일 오후 니가타 하드오프에코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야구기구(NPB) 올스타전 2차 경기에서 9회 초 동점 상황에 등판해 호투하고 있다.

▲ 임창용, 올스타전에서도 호투 일본프로야구에서 3년 연속 20세이브를 달성하며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한 임창용(야쿠르트)이 지난 2010년 7월 24일 오후 니가타 하드오프에코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야구기구(NPB) 올스타전 2차 경기에서 9회 초 동점 상황에 등판해 호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5년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마무리를 책임지며 11승 13패 28홀드 128세이브 평균자책점 2.09를 기록했다. 선동열이 주니치 시절(98세이브) 세운 한국인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웠고 한국 선수 최초의 세 자릿수 세이브 기록을 돌파했다. 야쿠르트 입단 당시만 해도 당시 연봉 1500만 엔의 헐값에 대한해협을 건넜던 임창용은 2010년 FA 자격을 얻어 야쿠르트와 재계약하면서 총액 14억 엔(약 192억 원)의 대박을 터뜨리며 또 한 번의 인생역전을 일궈냈다. 국가대표로도 복귀하여 2009년 WBC 대표팀의 주전 마무리로 활약하며 한국의 준우승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임창용은 '오뚝이' '멘탈왕' 같은 별명을 얻으며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모두가 최악의 순간이라고 평가하던 시점에 임창용은 끊임없는 도전을 선택했고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거듭했다. 2000년대 중반 삼성에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 2009년 WBC에서 이치로에게 뼈아픈 결승타를 허용했을 때 세상은 모두 그를 손가락질했지만, 임창용은 묵묵히 흔들리지 않았다.

2012년에도 다시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에 들어가며 야쿠르트로부터 방출되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마치 2007년의 데자뷔를 연상시키며 임창용 특유의 기질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은 그는 2013년 9월 확장 엔트리 때 승격돼 빅리그 마운드에 올랐다. 이상훈-구대성에 이어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시즌 후 다시 컵스에서 방출 통보를 받고 스프링캠프에서도 메이저리그 엔트리 재진입에 실패하며 결국 지난해 3월 친정팀 삼성 유턴을 결정했다. 하지만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한계에 넘어서려 했던 임창용의 도전정신은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WBC 우승과 준우승 가린 순간 지난 2009년 3월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과 일본의 결승 경기에서 10회 초 2사 주자 2·3루 상황에서 한국의 구원 임창용이 일본의 이치로를 향해 투구하고 있다. 이 투구를 받아친 이치로는 안타를 때려 결승타점을 기록했다.

▲ WBC 우승과 준우승 가린 순간 지난 2009년 3월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과 일본의 결승 경기에서 10회 초 2사 주자 2·3루 상황에서 한국의 구원 임창용이 일본의 이치로를 향해 투구하고 있다. 이 투구를 받아친 이치로는 안타를 때려 결승타점을 기록했다. ⓒ 연합뉴스


지난 2013년 2월 8일,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임창용이 남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어록(본래 괴테의 명언이다)은 임창용의 야구인생을 단적으로 응축한 듯한 표현이었다(관련 기사 : [매거진S] 임창용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창용의 어록은 지금의 상황과 맞물려 다시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임창용이 말한 대로 '방향을 잘못 선택한 것'이 그의 야구인생을 바꾼 것은 물론 '추락의 속도'까지 좌우해 버렸다.

임창용은 삼성 복귀 이후 2년 동안 주전 마무리로 활약했다. 비록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높은 평균자책점과 잦아진 블론 세이브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임창용은 여전히 삼성 마운드 전력의 핵심이었다. 2014년에는 한일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했고 그해 삼성의 통합 4연패와 인천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베테랑의 경험을 중시하는 류중일 삼성 감독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으며 불혹의 나이에도 몇 년간은 꾸준히 안정된 선수생활을 이어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번의 도박 파문으로 임창용은 야구인생 내내 지켜온 명예를 한순간에 날려버릴 위기에 처했다. 이전의 위기들이 임창용 개인의 부상이나 부진 등 결국 야구 내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사회 규범을 어겼고 법적인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경중의 차원이 다르다. 어린 선수도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은 데다 세상 물정도 알 만큼 아는 불혹의 베테랑이라는 점에서, 임창용의 행실에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임창용을 지지하고 아껴온 야구팬들에게 안겨준 실망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임창용은 이로써 야구인생의 불명예 은퇴 갈림길에 섰다. 물론 임의탈퇴와는 달리 규약상 다른 팀이나 해외 이적은 가능하지만 이미 나이도 불혹을 바라보는 데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임창용을 데려갈 만한 구단은 사실상 없다. 이미 최근 2차 드래프트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도 이름이 빠졌지만, 다른 팀의 지명을 받지 못했던 임창용이다. 더구나 처벌이 확정될 경우 임창용은 다른 구단의 관심과 상관없이 사실상 은퇴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임창용과 1976년생 동갑이자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승엽은 최근 FA자격을 얻어 삼성과 2년 36억 원에 재계약하며 선수생활에 아름다운 유종의 미를 기약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비하여 한눈팔지 않고 야구에만 전념했더라면 말년까지 부와 명예가 모두 보장되었을 임창용의 급작스러운 추락은 극과 극의 대비로 야구팬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말년에 '잘못된 방향이 추락의 속도까지 바꾸어놓은' 재반전의 야구인생은 그야말로 임창용이 스스로 남긴 어록처럼 이루어진 셈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