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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문안박(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임시공동지도체제'(이하 문안박 연대)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혁신전당대회'를 역제안했다. 사실상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당내 일부 비주류와 의견을 같이 한 것이다. 결국 공은 다시 문 대표에게로 넘어간 모양새다. 안 전 공동대표의 입만 쳐다보던 당내외의 시선이 문 대표 입으로 옮겨가고 있다.

던져놓고 기다리는 게 정치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지난 6월 25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긴급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지난 6월 25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긴급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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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이런 공방은 지난 몇 달 동안 계속됐다. 지난 4.28재보선으로 리더십의 위기를 맞은 문 대표는 지난 5월 당 혁신위원회 구성을 타개책으로 내놓았다. 문 대표는 안 전 공동대표에게 혁신위원장 자리를 제안했다. 당내 비주류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최상의 카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회동 이후에 안 전 공동대표가 끝까지 자리를 고사하면서, 혁신위원장에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추천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임명됐다.

당시 문 대표는 수차례 공개적으로 "안 전 공동대표가 혁신위원장을 맡아주면 좋을 것 같다"라고 밝히면서도 실제 만남은 한참 후에나 이뤄졌다. 회동 시간은 1시간 가량이었다. 이후 문 대표 측 일각에서는 '안 전 공동대표가 혁신위원장직을 수락할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 말은 완전히 빗나갔다. 두 사람의 회동에서 정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제안을 하고 그 답변을 기다리는 형식은 그 후에도 반복됐다. 안 전 공동대표는 지난 9월 혁신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되는 시점부터 "혁신위는 실패했다"라며 칼을 갈고 나왔다. 그러면서 '낡은 진보 청산', '부정부패 척결', '새로운 인재 영입'이라는 자체 혁신안을 내놓았다. 이어 문 대표에게 자신의 혁신안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정확히 어떤 답변을 원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이 사안으로 한참 언론에 오르내렸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2013년 4월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4.24재보선에서 당선되어 첫 등원한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게 먼저 다가가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 국회서 만난 안철수-문재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2013년 4월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4.24재보선에서 당선되어 첫 등원한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게 먼저 다가가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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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표가 안 전 공동대표에게 인재영입위원장, 수권비전위원장 직을 제안하는 과정도 똑같았다. 문 대표 측은 그것이 안 전 공동대표의 혁신안에 답한 것이라고 여겼지만, 이 역시 공개적인 제안 이후 답변을 기다리는 형태를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당연히 안 전 공동대표는 이를 거부했다. 두 사람은 이 시기에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문 대표는 "이제는 당내에서 제안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해야 할 때다. 언론에 대고 '입장을 밝혀라', '대답하라'고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자체 혁신안의 답변을 요구하는 안 전 대표를 겨냥했다. 이에 안 전 공동대표는 "(문 대표가) 오히려 단어 문제나 사실관계와 관련된 말만 했다"며 "내가 원한 건 '당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 '어떤 방향으로 혁신하겠다'는 건데, 당 안팎에서 원하는 혁신과 거리가 먼 말씀"이라고 비판했다.

만나도 아무런 성과 없는 두 사람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국정원 불법사찰 의혹 조사위원장(가칭)이 7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해킹프로그램 시연 및 악성코드 감염검사에 참석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국정원 불법사찰 의혹 조사위원장(가칭)이 7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해킹프로그램 시연 및 악성코드 감염검사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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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안박 연대'를 문 대표가 제안하는 과정, 이를 거부하고 안 전 공동대표가 '혁신전대'를 제안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문 대표가 '문안박 연대'를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은 지난달 18일이지만, 사실 훨씬 그 이전부터 거론돼 왔다. 재신임 이후에도 비주류의 공격이 계속되자 문 대표가 안 전 공동대표와 박원순 시장에게 공동지도체제를 제안할 것이라는 얘기가 문 대표 주변에서 흘러나왔고, 수차례 언론에 보도됐다.

문 대표의 공식적인 제안 후 당은 '문안박 연대' 찬성과 반대로 쪼개졌다. 박 시장이 문 대표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안 전 공동대표의 선택만 남은 상태가 이어졌다. 지지와 반대 성명이 나왔다. 당 중진 의원들과 초·재선 의원들이 지지성명을 냈고, 80여 명의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안 전 공동대표의 수락을 촉구했다. 반면 대다수 호남의원들과 일부 비주류 의원들은 문안박 연대를 비판하며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문 대표가 한 번 제안했으니 이제는 안 전 공동대표의 차례다. 그는 사실상 문 대표의 사퇴를 전제로 한 '혁신전대'를 또 다시 공개 제안했다. '문안박 연대'로 갈라진 당은 이제 혁신전대로 4등분 될 지경이다. 안 전 공동대표는 혁신전대 제안 직후 광주를 방문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광주에서 진행된 '혁신토론회'에서 안 전 공동대표는 "문 대표가 혁신전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두 사람은 11월 29일 안 전 공동대표의 기자회견이 있기 전 날 전격적으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안 전 공동대표는 '문안박 연대' 거부와 혁신전대 제안의 뜻을 문 대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을 문 대표와 안 전 공동대표는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서 더 깊은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방을 설득시키지 못(또는 안)했다.

여기까지 상황을 정리해 보면 두 사람 사이의 소통에는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안 전 공동대표가 문 대표를 비판하며 무언가 답변을 요구한다. 이에 문 대표는 무언가를 제안한다. 안 전 공동대표는 그게 아니라며 다른 걸 제안한다. 각 제안 사이에 두 사람은 서로를 비판하고 여론전을 펼친다. 그러는 사이 당은 갈라지고 언론은 이를 비판한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 제안 거절하는 명분만 쌓고 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2012년 12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식당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가진 회동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약속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 전 후보는 "오늘이 대선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많은 분들의 열망을 담아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안철수-문재인 회동 "오늘이 대선 중요한 분수령 될 것"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2012년 12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식당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가진 회동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약속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 전 후보는 "오늘이 대선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많은 분들의 열망을 담아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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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는 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한 재선 의원은 "두 사람이 몇 달 동안 아무런 합의도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다"라며 "물밑에서 얼마나 접촉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이를 비판하는 방식이 국민들의 혐오감을 부추긴다"라고 말했다. 그는 "두 사람은 유력한 대권주자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머리를 맞대고 결론을 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문 대표와 안 전 공동대표는 공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제안을 거절하는 명분만 차곡차곡 쌓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두 사람이 내놓는 메시지는 놀랍게도 똑같다"라며 "'국민과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나눠먹기는 안 된다', '혁신만이 살 길이다',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겠다', '천정배 의원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통합을 이끌어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이 문장들의 화자였다"라고 말했다.

또 "'저만의 제안이 아니고 많은 분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화답을 바란다'는 문장은 '문안박 연대는'이란 주어와 '혁신 전당대회는'이라는 주어로만 갈라진다"라고 말했다.

결국 두 사람이 같은 말만 하면서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반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은 당대표와 직전 당대표이자 선두권의 대권주자지만, 초선 의원이자 정치적 경력도 일천하다"라며 "책임과 기대가 역량에 비해 너무 크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두 사람은 "언제든 만날 용의가 있다"라는 말을 수차례 했다. 그 말에는 "(문 대표가 또는 안 전 공동대표가) 만나자고 하면"이라는 가정이 들어가 있다. 두 사람 중 누구도 먼저 만나자고 하지 않고 시간만 질질 끌다가 아쉬워지는 쪽에서 만남을 제안한다. 그리고 실속 없는 만남이 이어지고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언론에 말한다. 이것이 제1야당의 수준이다. 더 지켜보기 어려운 '밀당 정치'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문재인, #안철수, #새정치연합, #혁신전대,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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