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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스님의 뒷모습(2007. 여름 횡성군 우천면 자작나무숲미술관에서)
 도법스님의 뒷모습(2007. 여름 횡성군 우천면 자작나무숲미술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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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도법스님'

다가오는 12월 5일 전국농민회 총연맹의 집회를 앞두고 주최 측과 정부(경찰) 측은 한 철길에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충돌 일보 직전에 있다. 이런 일촉즉발의 위기 가운데 다행히 불교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12월 5일 집회가 평화 시위 문화의 전환점이 되도록 차벽이 들어섰던 자리에 종교인들이 사람 벽으로 평화지대를 형성하여 명상과 정근을 하며 우리 불교인들이 평화의 울타리이자, 자비의 꽃밭 역할을 하겠다"라고 화의 중재에 나섰다.

그분은 "부처님의 일생을 보면 늘 고통 받는 사람을 품어 안고, 당신의 제자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한 식구처럼 살기도 했다"는 원론의 말씀과 함께, "우리 속담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면서 더불어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거리의 말을 인용했다. 당신은 "싸움이 있는 곳에 싸움을 말리는 사람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분의 진정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의문이지만, 나는 이 시대를 사는 한 백성으로 우선 그분의 용기 있는 행동에 찬사와 함께 지지의 성원을 보낸다. 나는 이전에 그분을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었고, 그분이 쓰신 책도 두어 권 열독한 적이 있기에 '내가 만난 도법스님'이라는 주제로 그분의 근본 사상과 언행에 대해 몇 줄 쓰고자 한다.

나는 2004년 여름 실상사에서 열린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에서 주관하는 '생태농업 4계절 체험 여름가족캠프'에 참석했다. 그때 실상사 법당에서 도법 스님을 처음 뵙게 되었고,  즉문즉설을 들었다. 그날 들은 많은 말씀 가운데 두 말씀이 아직도 쟁쟁히 남아 있다.

"사람들이 똥 오줌을 더럽다고 하는데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가? 밥과 똥은 분리시킬 수 없다. 이는 연못이 있어야 연꽃이 피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밥과 똥을 분리시키며, 똥은 더럽다고 숨기려고만 한다."

"삶의 근원 문제를 경제 논리로 풀려면 오히려 싸움판을 만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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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하시는 도법 스님(2004. 여름 실상사)
 즉문즉설하시는 도법 스님(2004. 여름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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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 서원(誓願)

그 뒤 2007년 여름,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그 무렵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횡성군으로 오셨기에 이틀 동안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분이 앞장선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생명평화 절 명상 백대서원문을 낭송하며 백배를 하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진리가 삶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절을 올립니다.
1.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임을 믿으며 절을 올립니다.
1. 생명위기, 평화위기라는 현대문명의 현실을 직시하며 절을 올립니다.
1. 소유는 또 다른 소유를 낳고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을 뿐,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절을 올립니다.
1. 부자와 일등이 행복하다는 것은 실현될 수 없는 관념의 환상일 뿐임을 가슴에 새기며 절을 올립니다.

도법스님
 도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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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의 불의에는 관대하고, 사회의 불의에 대해서만 분노한 것을 반성하며 절을 올립니다.
1.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이에게 평화로운 마음과 태도로 대할 것을 다짐하며 절을 올립니다.
1. 어떤 명분의 편견이나 폭력도 단호하게 거부할 것을 마음에 새기며 절을 올립니다.
1.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미워하고, 나의 견해만이 옳다는 생각이 폭력의 시작임을 가슴에 새기며 절을 올립니다.
1. 적게 갖고, 적게 쓰는, 단순 소박한 삶이 영원한 진보임을 확신하며 절을 올립니다.

마주 달리는 두 열차

그분은 농사꾼들에게 "자기 자식이 농사꾼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한, 농촌은 회생할 수 없다"고 죽비와 같은 질타를 하셨다. 왜 먼 길을 굳이 걸어서 순례를 하느냐는 나의 우문(愚問)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탁발순례 중 횡성군 3.1기념탑 앞에서(2007. 여름. 왼쪽 도법, 오른쪽 필자)
 탁발순례 중 횡성군 3.1기념탑 앞에서(2007. 여름. 왼쪽 도법, 오른쪽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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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대부분 정신으로나 육체로나 환자들이다. 이러한 모든 병은 걸으면 저절로 고쳐진다. 걸으면 자기의 내면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린 아이일수록 걸어야 한다. 걸으면 삶이 단순해지고 홀가분해진다.

현대인들은 정작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무지하다. 걸으면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또 탁발은 사람을 찾아가는 일이다. 걸어서 찾아가는 게 가장 진정성이 있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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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오는 12월 5일 집회를 앞두고 전국농민회 총연맹 측도, 정부(경찰) 측도,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스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그 중재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이 나라 민주주의도 살리고, 국법도 살리는 윈윈 전략으로, 최악의 불행한 사태는 막는 길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길을 두고 메로 가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오늘의 사태를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어 한 퇴역 훈장이 기우(杞憂)의 말을 남긴다.


태그:#도법, #전국농민회 총연맹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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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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