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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공식, 비공식 여론조사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만큼 정확한 여론은 없다. <오마이뉴스>는 내년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으로 예상되는 광주.대구.부산의 민심을 들어보기 위해 세 곳을 미리 다녀왔다. [편집자말]
대구 북구 고성동에 위치한 한 식당 주인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과 생전 박정희 전 대통령, 그의 부인 육영수씨의 모습으로 식당 곳곳을 도배했다. 박 대통령 지지자였던 식당 주인 김아무개씨는 "지난 총선 때 후보 얼굴도 모르고 새누리당이라고 하니까 찍어줬다, 박근혜 보고 찍어줬더니 당선한 후에는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더라"라면서 "싹 갈아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남소연
지난 24일 국무회의, 박근혜 대통령은 또다시 여의도 정치권을 정조준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향해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면서 자기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이 '국회 심판론'을 언급한 것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6월 25일 국무회의),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11월 10일 국무회의)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이기를 거부했던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찍어냈듯, 내년 총선에서 제2, 제3의 유승민을 찾아내 갈아치우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같은 날(11월 24일) 오후 부친 상 이후 첫 외부 일정을 소화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했다. 그는 경북대 강연에서 인위적인 TK(대구·경북) 물갈이는 정치적 퇴행이라고 못박았다.

유 전 원내대표는 오전에 나온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 듣지 못했다고 하면서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반박하는 모양새는 피했지만 정치적 메시지만큼은 묵직했다. 좋든 싫든 박 대통령과 대척점에 선 그의 발언은 박 대통령의 물갈이 의지와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뜻으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부친 상 이후 첫 외부 일정을 소화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대구 경북대에서 '대구의 미래'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마친 후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남소연
유 전 원내대표는 'TK 물갈이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친박계 인사들을 향해서도 "친박·비박 이런 식으로 사람 성을 가지고, 이름을 가지고 싸움하고 있는데, 그거 정말 유치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또 "저는 이 지역에서 태어났고, 스스로 TK 적자라고 생각한다"라며 탈당설에도 선을 그었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인위적 물갈이에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대구 총선의 성격 바꾼 '박근혜 대 유승민' 대결구도

TK의 판을 갈겠다는 현직 대통령 박근혜,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전직 여당 원내대표 유승민. 20대 총선을 4개월여 앞둔 대구 정치권은 두 사람의 대결 구도로 압축된다. 

TK의 맹주인 대통령과 다음 자리를 노리는 여당의 전 원내대표의 파워게임은 대구 총선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전통적으로 수도권이 총선 전체의 승패를 가를 최대 승부처로 주목받아왔지만, 20대 총선에서 대구의 성적표가 갖는 정치적 무게는 역대 어느 총선보다 무거워졌다.

'박근혜 키즈'들이 전략 공천이든, 당내 경선에서 이기든, 얼마나 공천을 받고 또 얼마나 금배지를 다느냐는 총선 이후 박근혜 정부 하반기 국정운영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20대 총선에서 대구의 성적표가 갖는 정치적 무게는 역대 어느 총선보다 무거워졌다. 대구 서문시장 한복판에 '대통령님 억수로 사랑합니데이'라는 문구를 적어 내건 새누리당 대구시당의 플래카드가 보인다. ⓒ 남소연
새누리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공천 룰이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와 친박계가 TK 물갈이를 공언했는데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총선 후 영이 서겠느냐"라며 "친박계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든 물갈이를 밀어붙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여론은 박 대통령의 물갈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지역 독점이 고착화해 온 대구에서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대구 고성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지난 총선 때 후보 얼굴도 모르고 새누리당이라고 하니까 찍어줬다, 박근혜 보고 찍어줬더니 당선한 후에는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더라"라면서 "싹 갈아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식당 곳곳에 박정희·육영수·박근혜의 사진을 걸어놓을 만큼 열정적인 박 대통령 지지자였다. 

물갈이 여론 높지만... '청와대 낙하산'에도 거부감

이렇게 현역 의원들을 불신하는 분위기는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매일신문>이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3일 실시한 여론조사(유선전화 임의 걸기 자동응답조사 방식으로 진행,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7%p)에서 'TK 물갈이론'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54.0%로, 공감하지 않는다(30.8%)를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물갈이 방법을 두고는 논란이 예상된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키즈'로 불리는 청와대 참모나 각료들이 출마해도 현역 의원과 경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60.6%인 반면, 전략 공천으로 물갈이해야 한다는 대답은 28.1%에 그쳤다.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에 대한 불만은 높지만 현역 의원들을 대체할 인물들이 '공천=당선'인 대구에서 절차적 공정성 없이, 혹은 치열한 내부 경쟁 없이 '금배지를 주워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전략공천 혹은 '청와대 낙하산' 투하에는 대구 시민들의 거부감이 크지만 친박계는 경선을 우회하려는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박심'을 등에 업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정치 신인인 이들이 경선에서 쟁쟁한 현역 의원들을 누를 수 있으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TK 물갈이'론은 지난 2012년 총선 당시에도 등장했다. 친박계는 당시 박 대통령이 대구 지역에서 7명(김희국, 권은희, 김상훈, 류성걸, 윤재옥, 이종진, 홍지만)을 발탁해 사실상 전략공천 혜택을 줬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

비박계의 반발... "오만한 친박 때문에 수도권 표 날아갈 것"

박 대통령과 대립하고 있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동구는 박 대통령에 보내는 신뢰와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한 애증이 엇갈리고 있었다. 지난 24일 대구 동구 방촌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박근혜와 유승민'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남소연
하지만 친박계의 물갈이 대상이 유승민과 가까운 초선의원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 전체적으로 따지면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정 계파 이익을 위한 인위적 물갈이는 오히려 수도권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고인 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재선 이상 의원들을 놔두고 유승민 의원과 가깝다는 이유로 초선들의 목을 친다면 정상적인 물갈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며 "텃밭을 놓고 볼썽사나운 공천 갈등이 벌어진다면 전체적인 선거 판세에도 영항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박계의 '오만한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친박계가 유승민 의원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를 찾아 물갈이를 언급한 것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19대 총선 때 대구에서 60%를 바꿔 그 힘이 수도권으로 이어져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넘긴 게 아니냐"라고 말한 바 있다.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대구의 한 시의원은 "대구 물갈이를 다른 지역 사람이 하는 것도 우습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오만하고 거만한 태도 때문에 오히려 수도권 표가 날아가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자신감 보이는 비박... 결과는 '박근혜 바람'에 달렸다

이에 따라 대구 지역을 놓고 벌어지는 친박 대 비박의 대결은 공천 룰 싸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박계는 어떻게든 전략 공천을 막고 당내 경선을 관철시키겠다는 자세다.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해도 그건 공천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가 아니라 지역 유권자들의 뜻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친 상 이후 첫 외부 일정을 소화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대구 경북대에서 '대구의 미래'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마친 후 강연장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남소연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경북대 강연이 끝난 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새누리당의 공천은 시간이 갈수록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나아져야 한다"라면서 "대구든, 경북이든, 서울이든 이번 공천은 똑같은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무성 대표가 말하는 완전국민경선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국민과 당원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는 공정한 경선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비박계는 '경선은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대구의 한 시의원은 "'박근혜 키즈'들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정치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 대통령 후광을 등에 업고 초반 여론조사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은 맞다"라면서도 "하지만 아무리 대구에서 박 대통령 지지가 높다고 해도 '박근혜' 석 자만 팔아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승민 의원 측 관계자도 "경선에서 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대구 지역에 몰아칠 '박근혜 바람'의 강도가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전이 치열해 질수록 '박근혜 바람'의 위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키즈'들도 현역 의원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내가 진짜 친박이다' '나야말로 박 대통령을 보위할 사람'이라는 점을 치열하게 부각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구시당 관계자는 "본격적인 대결이 벌어지기 전인 지금이야 '청와대 낙하산'에 비판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대구 지역의 특성상 '그래도 박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라면서 "박 대통령이 앞으로 내놓을 정치적 메시지도 대구 지역에는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중구 삼덕동에 '박근혜 대통령 생가터'임을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박 대통령 당선 당시 사진과 함께 표식된 이 터에는 현재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 남소연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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