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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밤, 복통과 구토 증세에 연이은 설사가 한두 시간 간격으로 계속 이어졌다. 몸에선 식은땀이 났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밤새 이어진 복통과 설사로 인해 잠도 못자서 두통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은 꼼짝하기 힘든 아침이었다.

그래도 하루는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자마자 엄마를 찾았고 배고프다며 보챘다. 복통이 심한데 누워있는 내 배 위에 올라타 일어나라고 아우성쳤다. 그때만큼은 아이들이 곱게 보이지가 않았다.

다행이자 고마운 것은 남편의 배려였다. 아이들이 보채자 달래며 아이들 밥을 해 먹였고 내가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올 수 있게 출근을 한 시간 정도 늦추었다. 덕분에 집에서 5분 거리인 동네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처방된 약을 먹을 수 있었다. 베테랑 같지만 무심하고 또 사무적인 동네병원 의사가 딱 두 마디 했다.

"밤새 설사했으면 배가 뒤틀릴 정도로 아팠을 텐데?"
"배 따뜻하게 하고 쉬세요."

밤새 아팠고 남편의 출근시간을 한 시간이나 늦출 정도로 내겐 꽤 대단한 일이었기에 너무 짧은 진료는 좀 괘씸하게까지 느껴졌다. 아쉬워서 내가 물었다.

"정확한 병명이 뭐예요?"
"급성 장염이에요."

더 물어볼 여유 없이 다음 환자를 부르는 소리에 그냥 황급히 옷을 챙겨들고 나와 계산을 하고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날씨가 추워지면 몸이 움츠러들어 내 몸의 소화력이 떨어진다고 느낀 건 몇 년 전 부터이다. 별다르게 먹은 게 없는데도 장염에 걸린 건,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의 영향 때문이라 여겨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의사의 진료태도는 아무래도 괜찮아졌다. 사실 큰 병원에 갈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급하게 갈 만한 동네병원에 간 건 처방받은 약을 먹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의사의 진료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전 경험에 의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동네 가까운 곳에 도보로 더 가볼 만한 병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의사라도 믿고 의지하고 싶을 만큼 난 의지할 데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쉴 수 없는 엄마

약이 주는 든든함
▲ 처방받은 약 꾸러미 약이 주는 든든함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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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출근준비를 끝낸 남편은 급하게 바로 출근을 했고, 아이들은 또 그때부터 내게 착 달라붙어 질문 연발이었다.

"엄마, 그거 엄마 약이야?"
"엄마 많이 아파?"
"엄마 병원 갔다 왔어?"
"엄마 약 보여줘."
"엄마 약 먹어봐."

아이들 다섯 마디에 한 마디만 대꾸하고 싶을 정도로 여력이 없었는데 아이들은 본래 그렇게 눈치가 없는 존재들이라 쉬지 않고 질문하고 끊김없이 대답받길 원했다. 얼른 약을 보여주고 먹으라더니 약 먹을 시간도 안주고 계속 귀찮게 구는 아이들에게 지쳐서 급기야 화를 냈다.

"엄마 많이 아프니까 좀 조용히 해!!!"
"너희들끼리 가서 놀아. 엄마 약 먹고 조금만 쉴게."

눈치 없는 애들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각자 흩어졌다 만났다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른 약을 먹고 누워 쉬려는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거실 한 구석에서 서 있다가 튀어나오며 딸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나 쉬야 했어."
"쉬야가 아니라 응가겠지."

쉬려고 누웠던 축 쳐진 몸을 다시 일으켜 18개월 그녀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나니 오늘 하루 쓸 체력을 다 쓴 것 마냥 몸이 가라앉았다.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침전물마냥 있을 수는 없었다. 쉬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일단 쌓여있는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어 돌려야 했고, 점심 먹일 시간이 더 지체되지 않게 간단한 것이라도 만들어놔야 했다.

아픈 것 보다 더 싫은 건 미안한 감정이 쌓이는 것

동네 친한 언니들에게라도 애들을 잠깐 맡기고 1시간이라도 눈을 붙일까. 생각도 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주변엔 낮 시간에 마냥 여유로운 사람들이 없다. 가족들뿐만 아니라 주변사람 대부분이 그렇다. 거의 나처럼 육아에 살림에 치여 생활하기 바쁜 엄마들, 아니면 직장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뿐이다.

똑같이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각자의 육아에 치여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나 힘드니 내 애들 좀 봐 달라'부탁하는 게 참 염치없는 짓인 것만 같아 금방 생각을 접었다.

아이 돌보는 것은 관계가 친밀한 것과는 별개로 신경이 쓰이는 문제이다. 만약 친한 언니가 사정이 생겨 그 집 아이를 몇 시간 봐 달라 하면 난 물론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또 내가 그 언니에게 지금 우리 애들을 부탁한다면 거절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 알지만 부탁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저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렇다.

미안한 마음을 쌓으며 살고 싶지 않은 것은 지금의 생활이 버거워서임을 잘 안다. 타인에 대한 미안함이 쌓이고 쌓이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보답에 대한 의무로 인해 내가 더 힘들 것이라는 걸 잘 안다. 내가 좀 덜 베풀고 더 받는 상황에도 마음이 편한 관계는 흔치 않다. 더군다나 나만큼이나 힘들, 애 키우는 엄마들과는 그런 관계가 쉽지 않다. 홀로 감내하는 게 차라리 더 낫다고 느낄 때가 많았던 건 아직 내게 마음의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얼른 아이들이 크고, 또 내가 더 크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모든 엄마들이 아프지 않고 잘 지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태그:#아프다, #아프지말고, #아픈, #아픈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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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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