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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
 전시장 입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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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왔던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베이컨까지' 展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전시 첫날의 풍경은 평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한산했다. 현대미술이 주류를 이루는 이번 전시는, 누가 들어도 이름을 알 법한 거장들이 대거 포진한 만큼 그 기대가 컸다.

거장들의 미술 전시, 한국판 아머리 쇼

예술의 전당은 '~에서 ~까지' 라는 제목을 사랑한다. 이번 전시회의 헤드라인도 그다지 참신하지 않았으나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는 명확했다. 전시회의 규모는 꽤 크다. 대가 20명의 작품 100점이 전시되며, 대부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만한 인물들이다.

현대미술의 근간을 이룬 인물들이 한 데 모였다는 사실은 1913년 미국에서 현대미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열렸던 아머리 쇼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 아머리 쇼를 구상했던 아서 데이비스는 현대 미술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미국의 무기고에서 열었고,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바 있다.

베네수엘라 재단이 수집한 광범위한 현대 미술 작품들은 아머리 쇼의 맥락과 서사구조를 닮아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전시회의 정당성과 의미를 부여한다. 다만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이전보다 높아졌기에 관객이 작품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시대적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좌)아머리 쇼의 포스터, (우)예술의전당 포스터
 (좌)아머리 쇼의 포스터, (우)예술의전당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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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머리 쇼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뒤샹의 작품 <Nu descendant un Escalier. No. 2>를 이번 전시에서 미니어처로나마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아머리 쇼 당시 '계단을 내려오는 음식', '널빤지 공장의 폭발' 등의 비아냥을 듣기도, 혹은 진지한 비평을 받기도 했던 작품이다. 전시회 공식 포스터 또한 아머리 쇼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는데, 의도한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그저 짐작만 해볼 뿐이다.

전시회장에서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샤갈의 작품들이 단연 돋보였다. 벨라스케스 원작의 <인노켄티우스 10세>를 그로테스크하게 재해석한 것으로 유명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여러 작품을 보는 드문 기회였다. 샤갈은 대부분 1980년에 국한된 작품들이긴 했으나, 한 데 모아서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만족스러웠다. 피카소의 작품들 또한 하나의 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는 전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나름의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었을까, 전시회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었다.

예상보다 적은 콘텐츠

전시회의 포스터에는 '20세기 서양미술 거장 20인의 작품 100점', '앤디 워홀의 작품 10점 등'이라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전시회에서 워홀의 스펙트럼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앤디 워홀의 작품 10점의 실체는 마릴린 먼로 실크스크린 연작 10점이 전부였다.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또한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조르주 브라크의 작품은 단 1점에 그쳤다.

한 곳에서 협찬을 받아 전시하는 한계는 명백하고, 그 사실을 인지해야 함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해서 보완적 텍스트, 연관성이 있는 작품의 작은 삽화 등으로 설명을 곁들인다면 기획은 더욱 풍성해질 여지가 있다. 이러한 아쉬움은 관람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개인적으로 텍스트는 미흡해보였고, 오디오가이드 또한 단순 개관에 그친다고 느꼈다. 최소한 피카소가 모티브로 삼았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들라크루아의 '알제의 여인들'을 제목 옆에 작은 삽화로 제시했더라면 기획의 정성에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예술의 전당은 그러한 시도를 많이 한 바 있다. 왜 이번 전시에서는 그 감사함을 박탈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 중 그리스의 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들을 모티브로 한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 오레스테이아를 이루는 비극 3부에 대한 설명이 짤막하게 오디오가이드로 제공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그리스 3대 극작가였던 아이스킬로스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비중이 상당하다. 오레스테이아를 이루는 아가멤논, 코에포로이와 에우메니데스 중 아가멤논은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그리스 비극에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는 제목만으로 작품의 모든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

서사 구조의 빈약함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들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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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까지'라는 제목은 제시된 모든 인물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겠다는 시도를 암시하며 관람객은 그 제목에서 다분히 느껴지는 기획의 의도를 체험하길 바랄 것이다. 여러 인물의 작품들을 하나의 서사 구조로 묶는 것은(그것이 현대 미술에 한정되었을지라도) 한 인물의 서사를 기획하는 것보다 더욱 큰 섬세함을 필요로 한다. 예술의 전당은 이런 기획의도를 가진 전시를 꾸준히 했지만, 이번 전시에서 그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례로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 단 1점은 '예술과 사회' 카테고리에서 산업화와 다다로서 제시되었는데, 비록 이번 전시회에는 없으나 라우센버그 이전에 유사한 작업을 했던 다다의 대표주자인 쿠르드 슈비터스와 다다이즘의 역사 등을 함께 설명했다면 한 점의 작품에도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혹은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의 추상표현주의 흐름을 마크 로스코까지 확대했다면 어땠을까. 이는 지나친 바람일 수도 있겠으나,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미술관인 만큼 모든 것들을 융합하고 서사를 맞추어나가는 실험적인 시도 또한 바로 이곳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도슨트도 하루에 단 한 번, 1시에만 제공된다는 점은 현대미술을 이해하고자 찾아온 관람객들을 더욱 감질나게 한다. 물론 전시회는 교육적인 의도만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잘 구성된 서사구조와 그에 대한 이해는 관객들로 하여금 교육적인 동시에 재미를 준다. 예술의 전당은 이 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회가 열리기 전, 현대미술에 대해 10회에 걸친 강의를 주관했으니 말이다. 다만 전시회 개막 이전에 이루어졌던 강연들이기에, 이번 전시를 접한 이후 현대미술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은 이미 늦은 셈이다. 강연 기간의 설정이 아쉽다. 2016년까지 전시가 이어지니 잉코르 강의를 해 보는 건 어떨까.

한가람전시관에 설치된 조명이 작품에만 집중되어, 작품의 제목은 코를 들이대야 보이는 불편함은 덤이었다. 조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너도 나도 경계선 안쪽에 머리를 내밀어야 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계속 연출될 것이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있지만 거장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임은 명백하다. 이제 푸념은 그만 내려놓고, 대작들을 볼 수 있게 해 준 주최 측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뿐이다.

전시 정보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베이컨까지
기간 : 2015. 11. 27 ~ 2016. 03. 01
장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시간 : 오전 11시 ~ 오후 7시(입장마감 오후 6시)
문의 : 02-580-1300
연령 : 전연령 관람가능
티켓 : 성인 13,000원 / 청소년 10,000원 / 어린이 8,000원 / 유아 6,000원


태그:#피카소, #프란시스베이컨, #피카소에서프란시스베이컨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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