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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오전 경남 함양군 천년의 숲 상림공원에 올 들어 첫 눈이 내리고 있다.
 지난 26일 오전 경남 함양군 천년의 숲 상림공원에 올 들어 첫 눈이 내리고 있다.
ⓒ 함양군청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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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오던 날, 아주 높은 곳에서 눈 내리는 것을 보았다. 눈은 지상에 도착하지 못하고 흩날렸다. 흰 눈이 아니라 건조한 무관심이 세상을 포근하게 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날 다름 아닌 무관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저 밑의 누가 나의 사랑과 친절을 첫 눈 소식처럼 기다릴까, 오늘 내가 보고도 못 본 척 한 것은 무엇일까? 오늘 나는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수도 있다. 울고 있는 사람 중에 적어도 한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첫눈 오는 날은 슬픈 날이었다.

4.16 인권선언 풀뿌리 토론이 있다. 인권선언을 시민의 힘으로 함께 만들어가자는 취지의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대략 1100명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회의를 하면서,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어떤 경험이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을 고쳐나갈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유달리 마음이 착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있긴 있구나. 조금 더 현명한 사람들(어쩌면 좀 더 체념한 사람들)은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인권선언이란 것을 만들어봤자 지켜지지도 않을 테고, 차라리 그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기나 바라면서 각자 열심히 살아봐야지. 그러나 나는 "잠깐, 판단은 금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월호와 광주, 두 유가족이 만난 날

지난 5월 5·18 유가족 김길자씨가 세월호 가족 권미화씨를 껴안고 위로하고 있다.
 지난 5월 5·18 유가족 김길자씨가 세월호 가족 권미화씨를 껴안고 위로하고 있다.
ⓒ 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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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늦가을일 것이다. 아직 낙엽이 지기 전이었다. 나는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광주로 갔다. 세월호 유족들과 오월어머니회의 만남에 따라 간 것이다. 광주에 도착하고 보니 유족들보다 오월어머니회 어른들의 수가 세 배 정도 많았다. 두 그룹은 서로 고개 숙여 인사하자마자 눈물을 터트렸다.

누구는 흐느끼고, 누구는 입을 틀어막고, 누구는 손바닥으로 눈을 눌렀다. 오월어머니회 어른들은 거칠고 쪼그라든 손으로 세월호 유족들을 안거나 등을 쓸어주었다. 말이 필요 없는 가슴 아픈 공감의 자리였다. 그날의 대화 중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세월호 유족들은 사과부터 했다.

"저희가 이 일을 겪어보기 전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오월어머니회 어른들도 사과를 했다.

"우리가 안산으로 갔었어야 하는데 이렇게 오게 해서 너무나 미안해요."

사과를 하자마자 세월호 유족들은 질문을 던졌다. 사실 세월호 유족들은 마음이 급했다. 세월호 유족들에겐 믿음이 있었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아직도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다시 만나지 못할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난다. 만난다. 우리는 분명히 다시 만난다.

"우리는 분명히 다시 우리 아이들을 만날 건데요. 다시 만나면 너 없는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야 하잖아요. 그때 나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고 말하려면, 너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려면 뭘 해야 하지요? 우린 벌써 지쳤어요. 도와주세요."

그러자 오월어머니회의 한 어머니가 대답했다.

"우선 이 사랑은 평생 가는 것이란 것을 받아들여야한다. 슬픈 날은 슬픈 날대로, 기쁜 날은 기쁜 날대로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죽어야 끝나는 것이다. 죽기 전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쳤다고 말해도 안 되고, 할 일은 다 해봤다고 말해도 안 되고, 징글징글하게 겪어도 시작조차 안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예전의 자신은 이제 없는 거다."

세월호 유족들은 겁에 질렸다. 그러나 이내 얌전한 학생들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오월어머니회의 한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길게길게 말했다.

"나는 처음에 아들이 도청에 가겠다고 할 때 말렸고, 아들이 죽었을 때 아들을 원망했고,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나가게 하지 못한 나를 미워했고, 그 다음엔 아들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못했고, 죽은 놈은 잊으려 했고, 그놈 때문에 인생 꼬였다고 생각했고, 그러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아예 집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집밖에 다시 나와 이렇게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내가 아들이란 대가를 치르고 알게 된 것은…."

사실 그 다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오월 아버지의 목소리가 잦아들어서 세월호 유족 어머니 한 분이 그를 향해 바짝 몸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말을 미처 다 듣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가장 슬픈자들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이유로든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그 대가를 치르고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뭘까? 인간은 누구나 홀로 죽는다는 것일까? 인간은 이기적이란 것일까? 대체 뭘까? 아버지의 말을 따라가자면 양심의 가책 너머 뭔가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누군가는 '대가를 치르고 알게 되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다면 내게도 조금만이라도 알려 달라.

어쩌면 세월호 유족들이 알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말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족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몰랐던 것에 미안해하고, 그 일에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한 자식의 부모인 것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쁨도 평화도 중단 되었을 때, 자신이 예상하고 계획하고 꿈꾸던 삶을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 너무나 놀라운 용기를 보였다. 즉 치명적인 비탄에 빠졌을 때, 가장 비인간적인 일을 겪었을 때, 원망과 증오에 빠지지 않고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가장 슬픈 자들이, 가장 고통 받는 자들이 오히려 책임을 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 책임.

우리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떠맡을까? 남달리 비범한 의지의 소유자여서일까? 그들은 무엇이 비인간적인 것인지, 그 비인간적인 것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4.16 인권선언 풀뿌리토론에 참여한 사람들도 유달리 이타적이어서 시간을 내고 머리를 맞댄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이 땅에서 함께 살기를 선택하고 싶어서일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4.16 인권선언에는 유족들과 그 아픔에 깊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 속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을 것이다. 가슴 찢어짐을 뚫고 올라온 말들일 것이다. 유족들은 수백  번 물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았어야 너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안산에 살지 말았어야 했을까? 내가 어떻게 사랑했어야 너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수학여행 전날 사랑한다고 말했었던가? 가기 전에 안아보기라도 했던가? 그랬다면 가슴이 덜 아플까?

그리고 알았을 것이다. 내 사랑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누가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 손으로 파괴되는 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일은 일어났다. 그리고 그 일을 빼놓고는 자신의 삶을 진실 되게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진실', '삶', '설명'…. 이제는 이 모두가 전과 다르게 중요해져 버렸다. 이제는 상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사랑했으면 달라졌을 일들에 대해서. 4.16 인권선언은 절대로 치르고 싶지 않았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사람들이, 그 대가로 알게 된 것을 담고 있는 성스러운 텍스트다.

이 인권선언문은 이제 "너를 사랑해"란 고백에는 감정이나 확신, 의무 말고 다른 것들이(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걸맞는 존중부터 국가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까지 포함해서) 너무나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너를 사랑해" 라는 말을 꾹꾹 누르고 피맺힌 가슴으로 뱉은 말이다.

"안녕, 오늘도 잘 지냈지?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계속 사랑하니까 다른 삶을 살아보기를 선택했어. 다른 말을 들려주기를 선택했어."

그러니 용감한 사랑의 편에 선 우리들은 판단하지 말자. 함께 겪어보자. 오늘은 같이 시를 한편 읽자.

<대중>

세자르 바예호

전투가 끝나고
한 사람이 죽은 전사에게 다가왔습니다
"죽지 말아!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두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를 두고 가지 마! 힘을 내! 다시 살아나!"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스물, 백, 천, 오십 만의 사람들이 와서 절규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힘이 없구나!"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수백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애원했습니다.
"형제여, 여기 있어줘!"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그러자, 전 세계 만민이 몰려와 그를 에워쌌습니다.
슬픈 시신은 감동이 되어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맨 처음에 온 사람을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걸어갔습니다

오는 11월 28일(토) 오후 1시, 안국역 수운회관에서 4.16인권선언 2차 전체회의가 열린다.
▲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2차 전체회의 오는 11월 28일(토) 오후 1시, 안국역 수운회관에서 4.16인권선언 2차 전체회의가 열린다.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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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지은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CBS 피디입니다.



태그:#정혜윤, #선언, #416, #인권선언,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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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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