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의 외국인 선수제도에서 오래된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장기계약 문제다. KBO은 원칙적으로 외국인 선수와 미리 다년간의 장기계약을 맺는 것을 불허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발생한 문제가 공들여 영입한 외국인 선수를 해외 구단에 뺏기기 쉽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최근 한국 무대에서 기량이 검증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삼성에서 활약한 밴덴헐크(소프트뱅크), LG 출신의 레다메스 리즈(라쿠텐) 등이 일본무대로 진출했다. 최근에는 넥센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앤디 밴헤켄이 세이부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동안 한국야구는 팀의 주력인 외국인 선수들을 일본에 빼앗기는 것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본과의 머니 싸움에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데다, 1년 계약만 가능한 규정상 외국인 선수들을 묶어둘 법적 근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밴 헤켄을 내보내면서 세이부로부터 30만달러(약 3억 4천)의 보상금을 챙긴 넥센의 행보는 속수무책으로 선수를 내줘야했던 이전의 사례와는 조금 차별화 된다. 세이부는 넥센으로부터 밴 헤켄을 영입하면서 '보유권을 양도받았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는 1년 단위로만 계약을 맺을 수 있는 KBO 규정상 2015시즌이 끝났음에도 밴 헤켄이 여전히 넥센 소속으로서의 계약관계가 유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다년계약을 체결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만일 밴 헤켄과 장기계약을 맺었던 것이라면 엄밀히 말해 KBO 규정 위반이 된다.

일단 넥센 구단은 이를 부인했다. 다년계약이 아니라 올 시즌을 마친 뒤 바로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을 뿐이라는 것. 하지만 계약 체결후 세이부의 영입 제의가 왔고 밴헤켄도 일본 진출에 의욕을 보이면서 합의 하에 원만한 이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사 장기계약을 했다고 해도 이를 확인하거나 제재할 방법은 없는 게 현실이다.

넥센과 밴 헤켄간의 장기계약 유무는 알 수 없게 됐지만, 최소한 이번 사건이 KBO에서 오래동안 제기되어 왔던 외국인 선수 장기계약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공론화 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실 야구계에서는 이미 외국인 선수의 장기계약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형식적으로는 1년 계약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달성하면 자동적으로 재계약을 보장하는 옵션을 걸어둔다거나, 혹은 이면계약으로 뒷돈을 챙겨준다는 식이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외국인 선수와의 장기계약을 인정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을 만하다. 장기 계약을 맺을 경우 실력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타 리그 진출을 핑계로 한눈을 파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이번 밴헤켄의 사례처럼 설사 선수를 이적시키더라도 최소한의 금전적인 보상이 가능하다.

그동안 야구계가 외국인 선수와의 장기계약 개방에 소극적이었던 명분은 비용부담의 증가였다. 기량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 선수들을 장기계약으로 영입했다가 실패할 경우,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게 되고 교체도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핑계는 국내 선수들과의 형평성을 감안하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일례로, 국내 FA시장만 해도 외국인 선수들을 능가하는 몸값을 기록하는 선수들이 속출한다. 국내에서도 웬만한 대어급이라면 4년 계약에 80억~90억은 이제 기본으로 부르는 시대가 됐다. 오히려 팬들 사이에서 '오버페이' 논란이 나올 때마다 야구계 관계자들은 프로야구의 특성을 이야기하며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받는 것", "시장 상황에 따랐을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액 연봉자들이 국내에서 그보다 낮거나 비슷한 몸값에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들보다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가 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심지어 국내 무대에서 10년 가까이 활약하며 기량을 검증받은 선수들조차 FA가 된 이후 먹튀로 전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국내 대형 FA에 배팅하는 것이나, 외국인 선수들과의 장기계약에 배팅하는 것이나 아무리 철저하게 검토한다고 해도 '복불복'인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다.

대형 계약으로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아예 외국인 선수 보유한도를 늘리는 발상의 전환도 고려해볼 만하다. 지난해부터 외국인 선수 보유한도가 3명으로 늘어났지만 경기 출전은 여전히 2명으로 국한되어 있다. 10개 구단 체제가 출범한 이후 각 팀마다 쓸 만한 선수가 부족해서 아우성이고 외국인 선수의 비중은 날로 늘어가는데 정작 시대착오적인 규정에 묶여서 필요한 선수들을 제대로 수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본처럼 1군에서 출전가능한 외국인 선수의 한도를 3~5명으로 늘리고 2군 이하는 무제한으로 두거나, 축구의 아시아쿼터제 등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반드시 검증된 메이저리그급의 선수들만 영입하느라 많은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마이너리그처럼 재능있는 유망주나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을 싼 값에 영입하며 한국에서 외국인 선수를 육성하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볼 만하다. 아시아쿼터제를 둔다면 기존의 외국인 선수제에 묶이지 않고 일본이나 대만에서 쓸 만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을 노려볼 수 있다.

제도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달라진 한국야구 실정을 반영하지 못하는 외국인 선수제도는 필연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선수에게도 장기계약과 FA제도 등을 도입하고 내부 경쟁과 해외 구단으로의 이적까지 고려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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