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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 들어 첫 얼음이 얼었습니다. 가랑눈이 잠시 내리기도 했습니다.
 올 들어 첫 얼음이 얼었습니다. 가랑눈이 잠시 내리기도 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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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월 26일, 올해 들어 처음 얼음이 얼고 쌓이지 않은 첫눈이 내렸습니다. 겨울 준비를 끝낸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로 남았고 사철 푸른 잎을 지닌 맥문동도 검은 종자로 바뀐 계절에 대비했습니다.

맥문동의 검은 열매가 유난합니다.
 맥문동의 검은 열매가 유난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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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위의 낙엽들은 화석처럼 얼음 속에 갇혔고 풀잎의 이슬도 얼어서 투명구슬이 되었습니다. 늦가을에 새로 순을 낸 쑥들은 그대로 얼어서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우두둑' 바스러지는 소리를 냅니다.

밟을 때마다 유리조각이 부딪는 소리를 내는 언 땅. 풀잎위의 모든 이슬은 모두 그 모습 그대로 얼음이 되었습니다.
 밟을 때마다 유리조각이 부딪는 소리를 내는 언 땅. 풀잎위의 모든 이슬은 모두 그 모습 그대로 얼음이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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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추운 날 새벽 누구도 아랫목의 이불을 박차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일 제가 잠을 깨기 훨씬 전에 방을 나가서 이미 쇠죽을 끓여놓고 어스레한 마당에서 겨울 잡도리를 하시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선명한 50년이 훨씬 더 지난 아버지의 풍경입니다. 그 아버지의 49재(四十九齋)가 어제였습니다.

어제는 아버지의 49재였습니다.
 어제는 아버지의 49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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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얼음이 언 이른 아침 냉기를 느끼며 낙엽을 쓸다가 아버지의 그 오래된 풍경이 떠올라 한동안 비질을 멈추었습니다. 이제 잠든 식구들의 시린 새벽을 면하도록 어둠 속에서 군불을 지피고 집안 안팎을 여미며 겨울 채비를 점검할 사람은 곁에 없습니다.

#2

91세의 아버지. 비록 연세가 적진 않지만 저는 아버지가 그렇게 황망하게 떠날 줄은 추호도 몰랐습니다. 지난 가을 어머니의 교통사고로 온 가족이 어머니의 안위에 매달리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홀로 사그라지듯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선산에 모시고 내려온 날 동네 어른이 아버지의 뫼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평생 아버지와 함께 고향을 지킨 동네 어른이 아버지의 산소를 바라보시며 아버지를 회고합니다.
 평생 아버지와 함께 고향을 지킨 동네 어른이 아버지의 산소를 바라보시며 아버지를 회고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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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사람 모두가 한 마음으로 애석해하는구만. 그 선한 어른을 다시 볼 길 없으니…….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알지만 언제 죽을지를 어찌 알겠나. 너무 서러워마시게."

평생 지독한 노동으로 가난한 살림을 일구어 자식들을 대처로 보내 공부를 가르쳤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스스로를 위해 시간과 재물을 허비해본 적이 없는 아버지였습니다. 

49재의 의례를 마치고 스님과 마주앉았습니다.

"스님,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의 뜬금없는 질문에 스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습니다.

"스스로 지은 복과 죄입니다."

마당으로 나오자 비가 그쳤습니다.

지은 복만 가져가신 아버지를 확인하고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지은 복만 가져가신 아버지를 확인하고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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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작별과 천도(薦度)의 마음으로 무거웠던 날들이 한결 견딜 만해졌습니다. 홀로 가시는 먼 길에 아버지가 지니신 것이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복을 짓는 것만 보았지 죄를 짓는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아버지, #49재, #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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