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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11월 19일자 김영호 전 감사위원의 페이스북.
 지난 11월 19일자 김영호 전 감사위원의 페이스북.
ⓒ 김영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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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서야 '그'가 감사원을 떠난 사실을 알았다. 어제(25일) 한 모임에 나갔더니 한 선배가 "그 사람 감사원에 사표 내고 진주 내려가서 열심히 총선 준비하고 있어"라고 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사실이었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지만 찜찜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감사원을 위해서라도 내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건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사원 고위직 신분을 유지한 채 주소지를 이전하고, 지역에 내려가 총선 출마를 준비해왔던 김영호(55) 전 감사위원 얘기다. 그는 감사위원에 임명된 지 반년도 안돼 사임하고 새누리당 총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감사원 국감에서 "총선 출마 고민중" 당돌한 답변

경남 하동군 옥종면 출신인 김영호 전 감사위원은 지난 1984년 공직(행정고시 27회)에 입문한 뒤 해운항만청을 거쳐 지난 1986년부터 감사원 근무를 시작했다. 감사원에서는 재정금융국 총괄과장, 국제협력관, 특별조사국장, 재정경제감사국장, 기획관리실장, 제2사무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 전 감사위원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지난 2013년 4월 감사원의 2인자 자리인 사무총장에 올랐고, 이후 감사원 역사상 최장수 사무총장('27개월')을 기록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13년 10월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실세총장이라서 그런지 자세가 아주 불량하다"라고 꾸짖었을 정도로 '실세 사무총장'으로 통했다.

'27개월 사무총장'을 마친 직후인 지난 7월에는 4년 임기가 보장된 감사위원에 임명됐다. 감사위원회의를 통해 감사원의 감사정책과 주요 감사계획 등을 결정하는 감사위원은 감사원장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이로써 그는 두 번(사무총장, 감사위원)씩이나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고위공직자가 됐다.  

원래는 정길영 제1사무차장이 감사위원에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애초 사무총장에 내정됐다가 외부인사(이완수 현 사무총장)에 밀린 정 사무차장을 감사위원 자리에 배려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선 출마설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 전 감사위원이 감사위원 자리를 꿰찼다. 감사원 안에서는 "김영호 감사위원의 정치적 야망이 감사원 인사를 꼬이게 만들었다"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감사원 '안'에서만 논란을 일으킨 게 아니었다. 감사원 '밖'에서는 총선 출마 준비 구설수에 크게 휘말렸다. 사무총장 시절부터 감사위원에 임명된 뒤에까지 진주를 수시로 방문하며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감사위원에 임명된 직후인 8월에 주소지를 진주로 이전했고, 부인과 딸까지 내려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이러한 사실들이 <오마이뉴스>의 연속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감사원 국정감사(9월 14일)에서 막판 쟁점으로 떠올랐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임내현 의원은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데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 안 된다"라고, 우윤근 의원은 "정치하려면 사표 내고 하라"라고, 박지원 의원은 "감사원장이 사표를 받든지 정치활동 못하게 경고해야 한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김 전 감사위원은 "총선 출마를 고민중이다"라고 당돌하게 답변해 야당 의원들을 경악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차관·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영호 감사원 감사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나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차관·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영호 감사원 감사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나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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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정치행보, 감사원 내부의 권력욕망을 대변?

김 전 감사위원은 지난 9월 11일 기자가 처음 연락했을 때에는 "지역주민들은 제가 제발 총선에 나왔으면 하고 있는데 아직 모르겠다"라며 "연말에나 가봐야 총선 출마 여부를 알겠다"라고 말했다. 출마 여부를 명료하게 답변하지는 않았지만, 지역 정가에서 나오는 증언들처럼 총선 출마 의지가 꽤 강해 보였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9월 18일 전화 인터뷰에서는 "(총선 출마를 준비하기 위한 지역구 방문이) 공직자 처신으로서 올바르다고, 잘했다고 할 수는 없다, 반성하고 있다"라며 한발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도 분명히 나가고 싶지만", "총선에 출마하고 싶어도" 등의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 국정감사에서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수차례 지적받았는데도 총선 출마 의지는 여전했다. 

기자는 지난 9월 13일자 기사에서 "김 위원은 이르면 11월 초, 늦어도 12월에는 감사위원직을 사임하고 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썼다. 이는 지난 10일 김 전 감사위원이 감사원에 사표를 내고, 16일 퇴임함으로써 현실화됐다. 사무총장과 감사위원 인사에서 연달아 밀렸던 정길영 사무차장은 뒤늦게 감사위원 자리에 올랐다.

김 전 감사위원은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32년간의 공직을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심하여 고향 진주로 돌아왔습니다"라고 알렸다. '새로운 사명'이란 진주을 새누리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로써 김재경 의원이 3선에 성공한 진주을의 새누리당 공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감사위원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는 감사원의 역사상 특별한 기록들을 남겼다. 두 번씩이나 박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았고, 고위간부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총선 출마를 치밀하게 준비해왔고, 4년 임기의 감사위원에 임명된 지 반년도 안돼 사임하고 바로 총선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이 그렇다.

그동안 감사원장이나 사무총장, 감사위원 등 감사원 고위급 인사들이 중도에 사임하고 바로 여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한 사례는 거의 없다. 외부인사들이 감사원 고위직에 임명됐다가 퇴임한 뒤 총선에 출마한 경우도 가뭄에 콩나듯 했다. 그런 상황의 역작용인지 모르겠지만 감사원 안에서도 '감사원 출신 국회의원'을 원하는 목소리가 꽤 있다.

감사원의 한 고위인사는 "감사위원 출신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라며 "김 전 감사위원이 이번에 국회의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더 나아가 이 인사는 "김 전 감사위원이 안 된다면 나라도 총선에 나가고 싶다"라고도 했다. 어쩌면 김 전 위원의 행보는 이러한 감사원 내부의 권력욕망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김 전 감사위원이 퇴임식에서 '이렇게 나가는 것이 개인적인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 밖에서도 감사원 사람으로서 계속 살아가겠다, 내 이름 석자를 기억해 달라'는 요지로 말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역사는 '김영호'라는 이름 석자를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30년 감사원맨'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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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김영호, #감사원, #감사위원, #사무총장, #진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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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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