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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운영하는 공방 이름이 '디오니소스의 흙심'이예요.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이잖아요? 제 친정이 있는 충남 한산에서 엄마와 언니, 여동생이 전통주인 한산 소곡주를 담가요.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에서는 큰언니가 양조장을 하고요. 남편이 제 친정식구들의 상황과 제 상황을 재치 있게 엮어 '디오니소스가 흙의 마음으로 작품을 빗는다'는 의미를 담아 공방 이름을 지어줬어요."

올해 6월, 인천 남구 숭의평화시장에 '도예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문화 공간, 디오니소스의 흙심'을 연 유은정(46) 도예가를 보러 지난 16일 공방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예술과 생활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자기의 세계를 만났다.

예쁘면서도 멋이 나고 장식용으로 두더라도 공간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생활용품으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생기는 도예작품들이 있었다.

흙과 불이 만나 도자기 예술로 탄생

유은정 도예가
 유은정 도예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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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어학사전을 검색하니 도예(陶藝)란 '도자기 공예(또는 도자기를 가공한 공예품)'라고도 '도기(陶器)의 예술(藝術)'이라고도 한다. 또한 도기란 도기와 자기를 합쳐 이르는 말인데 도기는 토기라고도 하며 초벌구이만 한 것이고, 자기는 유약을 바른 고급 유기를 말한다.

도자기가 완성되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손이나 물레, 석고물로 성형(만들기)을 한 후 건조한다. 건조 후 초벌구이(800~1000˚C)를 하고 유약을 발라 두벌(재벌)구이(1250˚C~1300˚C)를 하면 완성된다. 도자기에 그림을 넣으려면 초벌을 한 후 그 위에 그림이나 무늬를 넣어 유약을 바르면 된다.

"도예란 흙으로 만들어서 불에 구운 모든 것을 말하기도 해요, 초벌에서는 8시간, 재벌에서는 10시간 이상을 가마에서 굽죠. 같은 종류의 흙과 유약을 사용해도 가마에 구웠다 꺼내면 작품이 다 달라요. 색깔도 다르고 심지어 크기도 달라진다니까요."

이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실전 경험은 돈을 주고도 못 살 만큼 소중하단다. 유 대표는 "체계적인 이론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몸으로 부딪쳐 얻은 소중한 경험으로 방법을 많이 터득했어요"라고 했다.

운명처럼 만난 배우자와 시작한 제2의 삶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유 대표는 에어컨 제조회사를 10년 넘게 다녔다. 회사에서 갑자기 직원들에게 일본어 교육을 강요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우연히 티브이(TV)에서 일본어로 10분간 전화통화를 하면 실력이 늘어난다는 광고를 보고 곧바로 신청했다.

당시 일본에서 6년간 연극을 공부하고 귀국한 한 남자는 전화통화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남자는 유 대표와 연결돼 전화통화로 일본어를 가르쳤다. 전화로 공부하다 호감을 느낀 이들은 직접 만났고 늦은 밤까지 통화로 이어진 사랑은 몇 달 후 결혼에 이르렀다.

서울에 살던 남편은 유 대표가 사는 인천으로 와 남동구 만수동에 신혼집을 차렸다가 장수동으로 이사를 갔다. 연극 연출을 전공한 남편은 2008년에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를 벌였다. 2006년 '개 지옥 사건'이라는 오명을 얻은 장수동을 지역주민의 힘으로 새롭게 바꿔 동네를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호응과 입소문으로 많이 알려져 동네 축제로까지 발전했다.

그게 계기가 돼 유 대표 부부는 남구 우각로 문화마을을 조성할 때 남구로 이사를 왔다. 유 대표는 이곳에서 남편의 일을 돕다 우각로 문화마을에 있는 도예공방에서 처음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2012년 1월에 남구로 이사 왔어요. 남편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는데 정말 좋아요. 도예도 배우고 결국 공방도 차렸는데 제 꿈을 이룬 거죠. 사실 예전에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어요. 지금도 새로운 것을 개발할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새로운 창작품이 나올 때마다 행복하고 더 좋은 작품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이론이 부족하다'는 유 대표의 말은 대학에서 전공으로 배우지 않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었다. 유 대표가 걷고 있는 길은 '전공자가 아니어도 도예가의 삶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의 집중력 향상과 엄마의 스트레스 해소를 한번에

공방 ‘디오니소스의 흙심’에 진열돼있는 갖가지 도자기들.
 공방 ‘디오니소스의 흙심’에 진열돼있는 갖가지 도자기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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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방이 크다고 볼 순 없지만 처음 시작한 거 치고는 제겐 꿈의 공간이죠. 유약도 바를 수 있고 전기 가마시설도 갖춰놨으니까요. 매주 토요일에는 이곳에서 성인 대상 교육도 하고 있어요."

공방 안에서만이 아닌 엄마들이 모인 곳에서는 어디든 수업하기도 하고 엄마들의 추천으로 아이들 대상의 수업을 하기도 한다. 이밖에 구청이나 동 행사에서 체험코너를 하거나 작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한테는 도자기 체험학습이 정말 좋아요. 손으로 하는 작업은 온몸의 기관과 연결된 뇌를 자극해 창의력을 높여줍니다. 흙을 만지면 집중력도 높아지고요. '코일링'이라고 흙가래기법으로 흙을 코일처럼 동그랗게 올려 만드는 게 있어요. 아이들한테는 지렁이라고 재밌게 표현하는데 이 작업은 집중력을 필요로 해 어려워하면서도 차분하게 잘 따라합니다. 흙은 또 수정이 쉽잖아요. 만들다가 망치면 조몰락거려서 다시 만들면 되고요."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들도 도자기 체험을 좋아한단다.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작품을 완성하면 자아성취를 느낄 수 있다. 가정주부에게는 생활자기를 직접 만들어서 쓴다는 매력도 있다.

꿈의 공간인 이곳을 복합생활문화공간으로 남편과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한 경험이 있는 유 대표는 그냥 공방만 운영하기에는 이 공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숭의평화시장 상인과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이 동네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시장 상인이나 이곳에 사시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도예수업을 진행해보려고요. 시장이 활성화 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아 보기도 합니다."

지난 8월, 이곳 숭의평화시장에서는 남구 주최로 창작 공간 개소식 축제를 했다. 당시 필리핀 전통댄스와 인디밴드 연주 등의 초청공연이 열렸다.

유 대표는 "진정한 시장 축제가 되려면 시장 상인이나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돼야 하는데 손님으로 전락한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여름에 노상 카페를 한 적이 있어요. 세련된 커피숍은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에 커피나 다양한 차를 판매했어요. 도자기로 드립퍼를 만들기도 했고요. 사랑방처럼 많은 사람이 방문해 편하게 즐기고 모임도 하는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예쁜 도자기카페처럼 만들어 단순한 공방이 아닌 복합생활문화공간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유은정, #디오니소스, #흙심, #도예가, #숭의평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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