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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8일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당시 다음날 서울동물원에서 사슴이 매각되어 팔려나가는데 '도축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제보문자였다. 당황했다. 8월 19일 나는 휴가를 위해 유럽행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일 아침 다른 활동가들에게 사슴을 태운 트럭을 추적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공항으로 향하던 중 "사슴을 지금 태웠어요"라는 문자와 함께 동영상을 받았다. '파닥파닥' 움직이는 사슴의 발굽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아팠다. 얼마나 두려울까.

예정된 일이었다. 2012년부터 전국의 동물원을 다니면서 사슴이나 염소·토끼들이 전시용으로 쓰이는 일이 늘어났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그런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 동물들이 저렇게 계속 개체 수가 늘어나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뻔한 결말이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다른 곳에 가서 잘살고 있지요." 이것이 내 질문에 대해 돌아온 사람들의 답변이었다. 사슴 영상을 받은 것은 늘 의혹으로 삼던 생각이 증거를 잡은 순간이었다. 8월 19일 이후 언론에 보도되며 알려지기 시작한 '서울동물원 사슴매각사건.' 당시 사슴과 흑염소가 도착한 곳은 사슴과 염소·말 등을 키우는 농장이었고, 그 안에서 도축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전시용으로 쓰이던 동물들이 하루 만에 모두 '고기'로 생을 마감할 운명으로 전락했다.

8월 19일 아침 서울동물원에서 트럭에 태운 사슴들.
 8월 19일 아침 서울동물원에서 트럭에 태운 사슴들.
ⓒ Action for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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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 '케어' 활동가들은 사슴을 다시 재매입해줄 것을 서울동물원에 요구했다. 그러나 3번이나 매입자가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천만 원에 팔린 동물의 가격은 2500만 원으로 뛰어 있었다. 서울동물원은 '재매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출구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말렸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 이번 한 번은 용서하되, 다음부터 그러지 않도록 만들자."
"매입에 들어간 돈도 마련하기 어렵지만 이후 어디에 보호할 것인가."
"사슴 구하자고 시민들이 돈을 내겠는가."
"관에서 판 동물을 다시 사 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아마도 이런 시도가 실패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동물원 동물의 복지향상을 위해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나는 동물이 사람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함부로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는 이념에 따라 단체에서 운동하는 활동가다. 동물전시기관을 자처하는 곳에서 전시 용도가 끝난 동물을 매각한 후 그 동물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관심하다면, 과연 해당 기관이 동물을 사랑한다는 입장을 표방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것이 왜 잘못인가를 시민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케어의 미국법인 대표 가르시아(AJ Garcia)가 지난 10월 9일부터 서울시장 공관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이라는 극단적 행동 외에는 방법이 없는가'라는 의문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단식 5일을 넘기자 그제야 서울동물원 측과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틀 간의 협상을 통해 10월 17일 케어와 서울동물원이 합의문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내용은 '서울동물원이 향후 사슴과 염소를 재매입한다. 그후 다른 동물원과 목장 등으로 동물을 이송하게 되면 수컷에 한해 중성화 수술을 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며 평생 자연사 할 때까지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서울동물원은 이후에 동물을 매각하게 될 때 상업적 용도로 동물을 이용하는 곳에는 매각할 수 없게 된다. 두 달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10월 18일 이후 서울동물원과 우리는 사슴과 염소를 이송할 곳을 찾고 정착을 돕는 일에 착수했다. 전국의 여러 동물원과 목장 등을 섭외한 끝에 대전오월드 동물원과 경북에 있는 한 목장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11월 16일, 드디어 사슴과 염소가 농장을 떠나는 트럭에 올라탔다.

11월 16일, 드디어 도축농장을 떠나다

11월 16일 사슴이 농장을 떠나던 날. 배설물이 가득한 사육장에 방치된 모습.
 11월 16일 사슴이 농장을 떠나던 날. 배설물이 가득한 사육장에 방치된 모습.
ⓒ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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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아침, 사슴을 이송하기 위해 농장에 도착해서 사슴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전날 비가 왔는데, 배수가 잘 안 되었는지 바닥은 온통 진흙밭이었고 배설물과 뒤섞여 악취가 풍겼다.

농장의 환경은 몹시 열악했다. 축사는 좁고 배설물이 가득했다. 환기도 잘 되지 않았고 곳곳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말과 엘크가 보였다. 엘크는 다른 동물원에서 팔려온 것 같았다. 아마도 동물원에서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매각의 끝은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용도가 끝났으니 다른 곳으로 팔면 그만일까. 이 동물들은 언젠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시되었던 동물일 것이다. 화가 났다. 이것은 옳지 않다. 무엇이 동물사랑인가. 잠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기뻐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뿐인가. 진정한 동물사랑은 그 탄생부터 죽음까지 아끼고 애정을 쏟는 것뿐 아니라 고통과 죽음까지도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왜 이렇게 무심한가.

어디서 팔려 온 것일까? 동물이 악취가 진동하는 사육장 안에 방치된 모습.
 어디서 팔려 온 것일까? 동물이 악취가 진동하는 사육장 안에 방치된 모습.
ⓒ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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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농장을 벗어나는 순간!
 드디어 농장을 벗어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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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에 다마사슴 5마리를 태우고 대전 오월드로 향했다. 동물원에 사슴과 함께 도착하니 직원들이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전 오월드의 사슴전시관은 경사진 곳에 있었다. 사슴이 흥분해서 그냥 몰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수의사들이 와서 일단 마취 후 방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마취를 시도했지만 낯선 사람들이 있어서 사슴 마취가 잘 안 되는 상황. 사슴을 천으로 가린 후 조금 더 기다렸다. 잠시 후 소리가 잦아들었다.

천을 내리고 사슴을 한 마리씩 꺼내서 방사장으로 옮겼다. 두 마리를 옮기고 세 마리째. 마취가 잘 안 돼서 트럭의 위치를 바꿔 내린 후 사슴을 몰아가기로 했다. 트럭의 문을 열고 방사장 쪽으로 몰고 나니 한 마리는 중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두 마리는 방사장 쪽으로 몰아 전시관 안으로 넣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한 마리. 수의사가 사슴을 번쩍 안아 방사장 안쪽 길로 내려놓았다. 그 아이가 가장 반항이 심한 것 같았다. 그래도 길 안쪽으로 몰아넣으니 조금씩 걸어갔다. 드디어 마지막 사슴도 방사장 안으로 넣는 데 성공. 멀리서 사슴이 자기들이 살아갈 집 안과 밖으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항이 가장 심했던 사슴도 이리저리 뛰는 모습이 보였다. 다마사슴 5마리는 이렇게 평생 살 곳에 안착했다.

대전동물원에 도착한 다마사슴의 모습
 대전동물원에 도착한 다마사슴의 모습
ⓒ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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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측의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이 아이들이 서울동물원에서 온 애들인가요?"

나는 답했다.

"네."
"와, 복 받은 애들이네요."

눈물이 났다. 동물의 복지를 실현하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한편 경북에 있는 목장은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염소가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지만 사슴을 방목할 공간이 없었다. 사슴은 초지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방목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돈 한 푼 안 받고 사슴과 염소를 받아주기로 한 목장주 역시 난감해 했다. 어쩔 수 없이 서울동물원과 협의를 통해 다른 곳을 물색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11월 17일 부산 더파크 동물원과 대전오월드, 청주동물원에서 각각 5, 4, 2마리를 보호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11월 24일, 사슴이 평생 살 집에 정착하다

이송일은 각각 23일과 24일로 결정되었다. 케어 활동가 한 명과 서울동물원 직원 각각 한 명이 23일 부산 더 파크로 향했다. 나는 경북에 있는 목장으로 내려가 최종적으로 사슴 상태를 점검하고 트럭에 부산으로 내려갈 사슴 5마리를 태웠다. 23일 오후 5시 부산 더파크 동물원에 사슴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장에서 안정을 찾은 염소들
 목장에서 안정을 찾은 염소들
ⓒ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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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7시, 나와 서울동물원 측은 경북 농장에 들어가 나머지 사슴을 트럭에 태웠다. 목장으로 올 때부터 몸이 아팠던 사슴 한 마리가 걱정되었다. 대전오월드에서 아픈 사슴의 치료를 맡아주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대전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반,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 도착했다. 마취하고 사슴 3마리는 전시관으로 옮겼지만 아팠던 사슴이 마취가 잘되지 않았다. 사슴을 몰고 전시장 안쪽으로 수의사들이 올라갔다. 멀리서 사슴을 검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수의사가 내려왔다. 수의사 말에 따르면, 사슴이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고 다친 발이 아마 도축농장의 열악한 환경에서 감염된 것 같다고 했다. 패혈증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치료해도 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진단이었다. 안타깝지만 사슴을 맡겨놓고 나는 청주동물원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30분 청주동물원에 마지막 꽃사슴 두 마리를 내렸다. 멀리서 사슴 두 마리가 왔다 갔다 하다가 잠시 앉아 쉬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내 상황 종료. 이로써 사슴 11마리와 염소 14마리가 평생 살 집에 정착했다. 그동안 얼마나 먼 길을 돌아 얼마나 오랫동안 트럭을 타고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나. 동물들의 기구한 삶이 이제는 안정된 삶으로 지속하기를.

청주동물원 사슴의 모습.
 청주동물원 사슴의 모습.
ⓒ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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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프던 사슴이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8월 19일 이후 많은 사슴과 염소가 열악한 농장 환경에서 사망했다. 우리가 모든 동물을 구할 수 없다. 그러나 단 하나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 믿음 하나로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동물을 보면서 행복한가, 그렇다면 그 동물의 행복에도 책임을 지자

서울동물원 사슴매각 사태는 '동물원 동물의 복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사회에 제기하였다. 자신의 고유한 가치에 따라 살아가야 할 동물이 현재의 문화와 법 때문에 전시용으로 이용되었다면, 이후 그 용도가 다 했다고 판단되었을 때도 최소한 비인도적인 매각과 도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향후 동물을 전시하는 모든 기관은 자신들의 소유에 있는 모든 동물에 대한 개체별·종별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동물 한 마리 한 마리가 해당 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생활을 영위하게끔 해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물 때문에 먹고 살게 되었다면 최소한의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나.

넉 달의 기간 동안 '그깟 사슴 한 마리가 대수냐'는 말이 우리 활동가들을 외롭게 했다. 우리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 말은 살아있는 생명을 오직 생산성과 이윤으로만 평가해 온 사회의 한 단면인 셈이다. 생명이란 돈의 가치로 평가받을 수 없는, 소중하고 고유한 존재가 아닌가.

사람들은 흔히 '동물을 보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토록 좋아하고 열망하는 동물을 보러 우리는 끊임없이 동물원에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잠시 보고 즐거워했던 동물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는지 한 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동물의 복지를 실현한다는 것은 동물의 행복뿐 아니라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놓치지 않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잠시 즐기고 돌아선 사이, 어떤 동물이 어느날 트럭에 실려 가 낯선 곳에서 고통스럽고 외롭게 죽을 수 있다. 우리가 동물을 보고 즐거워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욕망을 위해 우리가 그들을 이용했다는 의미다. 우리가 즐겼다면 끝까지 책임져야 마땅하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동물원, #사슴매각사태, #서울동물원, #동물원법, #동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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