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하기 힘들다는 건 이 시대를 대변하는 사실 명구죠. 그래서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 후에 대학원으로 도피(?)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결국 취직인데요. 석사를 일종의 스펙으로 쓰기 위해서인 거죠. 또는 지도 교수님께 잘 보이면 어디 한 자리는 얻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을 거예요. 요즘엔 그마저도 포화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석사가 더 이상 쓸 만한 스펙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죠. 우리 사회의 현실이 이 이상으로 추락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지방대 인문학 석사가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취직하고는 거의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취직이 아닌 박사를, 나아가 교수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 같아요. 그럼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네요. 석사에서 끝나는 대학원 생활과 박사를 하려는 대학원 생활은 다를 게 분명하니까요. 대학원 생활이란 게 연구 외의 것까지 매달리면 죽도록 힘들고, 그렇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면 상대적으로 훨씬 힘들지 않다고 해요.

지방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시간강사를 하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표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표지
ⓒ 은행나무

관련사진보기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아래 '지방시')(은행나무)는 제목 그대로 지방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시간강사를 지내오고 있는 어느 평범한 연구인의 자신 이야기예요. 석사와 학사가 다른 게 있어요. 위에서 말했든 요즘엔 학사를 졸업하고 도피성으로 석사를 한다고 했는데요. 그건 어느 정도 재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해당되는 것일 테죠. 그렇지 않으면 도피성으로 석사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일 거예요.

그렇다면 도피성으로 석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재력이 있을 테고요. 그렇지 않은, 진정한 연구를 위해 석사를 하는 사람들은 재력이 있는 사람과 재력이 없는 사람으로 나뉠 것입니다.

<지방시>의 저자 309동1201호는 진정한 연구를 위해 석사와 박사를 했지만 재력이 뒷받침 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는 석사를 시작하자마자 생계를 걱정해야 했죠. 연구와 함께 조교 생활을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해도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에 '맥도날드'를 비롯해 많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죠.

거즌 필수 코스가 된 대학까지는 부모님께서 책임을 져주시는 게 시대의 인식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러지 못한 경우도 많지만요. 그에 반해 대학원부터는 스스로 전부를 마련하거나 부모님은 일정 정도만 보태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방시> 저자는 석사 시작부터 꼬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굴레를 박사 때까지 벗어나지 못합니다. 연구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함과 동시에 생계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대학원 생활

<지방시> 저자의 대학원 생활을 한 번 쭉 읊어보겠습니다. 학과 조교, 연구소 조교, 아르바이트 등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도 학비와 생활비를 대기 어려웠다고 해요. 조교를 할 당시에는 '잡일 돕는 아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4대 보험은커녕, 의무만 있을 뿐 그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고 해요.

무엇보다 그를 비롯한 대학원생들은 사회적으로 참 애매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여자라면 몰라도 남자라면 나이가 상당할 텐데, 웬만한 또래들은 직장을 다닐 테죠. 엄연한 '사회인'인 거예요. 반면 그들은 사회인일까요?

돈을 거의 벌지 못하는 거야 그렇다고 치고, 논문, 연구, 강의의 아카데미 생활만을 하는 그들을 결코 사회적인 인간이라고 할 순 없을 거예요. 저자의 친구 한 명이 애니메이션 감독인데요, 이들은 서로를 이루기 힘든 꿈을 꾸는 반사회적 인간이라고 생각하죠. 서로 응원해주는 모습이 보기 짠하면서도 좋았는데요. 지방대 인문학 석박사의 위치가 그 정도라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대학원 생활을 지인이 몇몇 있습니다. 누구는 저자와 엇비슷할 정도로 힘들게 생활했고, 누구는 아주 쉽게 생활했지요. 전자는 석사를 졸업한 후 몇 년 간 사회 경험을 쌓고 박사를 가려고 하고요, 후자는 바로 취직을 했어요. 전자의 지인이 걱정 됩니다. 저자처럼 시간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고자 하는데, 그 길이 험난해 보이거든요. 그래도 저는 후자의 지인보다 전자의 지인을 응원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같거든요.

<지방시>는 1부의 석박사 대학원 생활과 2부의 시간강사 생활로 나뉘어져 있어요. 1부가 주로 대학원 생활의 고난과 희망, 환희와 좌절,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기록과 알림이 주를 이뤘다면, 2부는 시간강사를 하면서 느끼는 희망과 구원이 주를 이룹니다. 1부가 학생으로서 선배와 교수님들과의 일이 주였다면, 2부는 교수로서 학생들과의 일이 주입니다. 다른 상황에서의 다른 이야기지만 일맥상통하는 느낌이에요.

시간강사 매뉴얼

2부는 매뉴얼의 느낌이 다분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체계적으로 세우고 알리고 실천하려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거든요. 강의를 처음으로 하기 전에 스스로 약속한 바 5가지, 첫 강의를 끝낸 후 해야 할 일 2가지, 강의를 해나가며 다짐한 3가지, 조별 발표에 관한 원칙 4가지, 학생들에게 한 쓴소리 3가지 등 이 매뉴얼을 실천한다면 누구라도 좋은 강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을 정도예요.

1부에서 불만에 가득 찬 학생이었던 이가, 2부에서조차 처음에는 들어온 강의도 거절했던 이가, 결국엔 정갈하고 단단한 교육인으로 발전해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게 다가옵니다. 그러며 자신이 걷고 있는 인문학으로의 길을, 후회하고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럼에도 설파 하려는 그 모습이, 같은 인문학도(?)로서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 말은 좀 해야겠어요. 1부와 2부의 온도 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요. 과연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다른 분위기였고, 결정적으로 2부의 저자는 너무 오글거렸습니다. 2부에서도 비판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닌데, 그 비판마저도 오글거렸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징징대는 게 아닌 합리적인 불만 표출이다

누군가 저자에게 반드시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누가 지방대 인문학 석사 하랬어? 별로 좋지 못한 대학 나왔으면 그에 맞게 취직을 하던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석사는 좋은 곳으로 가던가. 스스로 그렇게 판단해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 험난한 길을 간 건데, 왜 징징대는 거야?" 저도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포커스가 맞지 않은 것 같아요.

저자는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서 징징대는 게 아니고, 당연한 듯 지나가는 관행에 대해 합리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죠. 누구나 생각했겠지만 밖으로 표출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해줬다고도 할 수 있어요. 모르긴 몰라도 책에 차마 쓰지 못한 것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 지음, 은행나무 펴냄, 2015년 11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 지음, 은행나무(2015)


태그:#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학원, #시간강사, #사회인, #매뉴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