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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가야곡 왕주는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사용했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된 전통주이다. 소주의 도수가 내려가면서 그 명맥을 잃어가는 술들이 있다. 전통주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희석주인 소주다. 25도였던 소주의 도수가 점점 내려가다가 올해는 각종 과일향이 들어간 소주가 인기몰이를 했다. 

충청남도에도 다양한 전통주가 있었는데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진달래꽃의 빛깔이 술에 녹아들어 엷은 담황색을 자랑하는 당진 면천두견주, 백제의 궁중술로 선비들이 한두 잔 마시다가 과거를 치르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는 서천 한산소곡주, 왕비를 여럿 배출한 여흥민씨 가문의 곡주인 논산 가야곡 왕주, 하동정씨 종갓집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든 청양 둔송구기주, 일제시대의 주세령으로 인해 탄생한 아산 짚동가리술, 양조기간이 백일 걸린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공주 계룡백일주까지. 

그중에서 논산 가야곡 왕주는 고유 전통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으며,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57호 종묘대제에 제주로 지정돼 매년 제례의식에 사용되고 있는 조선시대 왕실주이다. 충남의 세력가였던 여흥민씨 가문의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곡주와 조선시대 중엽에 성행하던 약술을 접목시켜 만든 술이 논산 가야곡왕주다. 가야곡왕주에 사용되는 재료는 논산에서 나는 쌀, 논산 가야곡 150m 암반수, 야생국화(일명 구절초), 구기자, 참솔잎, 홍삼, 매실 등과 집에서 직접 띄운 자가누룩 등이 들어가 있다.

가야곡 왕주를 판매하는 공간
▲ 가야곡왕주 가야곡 왕주를 판매하는 공간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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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곡 왕주라고 이름이 붙은 것은 그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가야곡은 조선시대 가야실의 이름을 따서 가야곡면이라고 부른다. 위치상으로는 논산시의 중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곡의 중심으로 북부 평야 지대 위에는 탑정저수지가 있다. 동북부 경계지대에는 논산천(論山川)이 남북 방향으로 흐르고, 서부 및 중부 평야 지대에는 왕암천(旺岩川)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각각 흐르고 있다.

지켜지고 보존되어야 할 전통주이지만 판매량이 급감하고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가야곡왕주를 만드는 회사는 결국 부도가 나버렸다. 가야곡왕주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명인에서 명인으로 이어져야 할 제조기법은 이제 갈길을 잃어버리고 이제 그 존립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다양한 맛이 담긴 전통주들
▲ 다양한 모양의 전통주 다양한 맛이 담긴 전통주들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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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와 생산단가 비슷해, 판매처 확보 어려움

논산 가야곡 왕주를 만드는 술 제조 공장을 찾아간 이날 마케팅 및 제조를 총괄하는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담당자는 가야곡 왕주의 전통을 이어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와 지자체 등의 지원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인 지원이 아니라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의 금전적인 지원으로 한계상황에 봉착했다고 한다.

에틸알코올에 물과 화학적 재료를 넣어 만든 저도수인 소주에 밀리고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일본의 사케에 밀렸다. 증류하여 만든 술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고급술로 인식하고 있는 위스키와 생산단가가 비슷해지면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판매처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전통주를 고급화하기 위한 시도.
▲ 전통주의 고급화 전통주를 고급화하기 위한 시도.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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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생산단가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렴하게 묵은 쌀로 만들 수도 있지만 햅쌀로 만든 술과 현저한 맛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마저 쉽지 않다. 게다가 전통주와 증류주에 붙는 세금 또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한다.

좋은 재료로 만든 375mm용량의 증류주를 시장에 내놓으려면 생산원가에 각종 세금과 부가가치세 등을 포함하면 2만 원에 육박하는데 그걸 누가 사서 먹겠냐는 것이다. 돈을 조금만 더하면 12년산 위스키를 사서 먹을 수 있는데 네이밍도 없는 지역의 전통주를 사서 먹을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정부나 지자체의 금전적인 지원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브랜드 인지도 확보와 대량생산, 연구까지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대기업 등에 제공되는 각종 세제혜택이나 법인세 면제등 의 혜택이 이런 전통주를 만드는 기업에도 지원될 필요성이 있다. 이날 담당자도 금전적인 지원보다 세제혜택과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체계적 지원과 판매처 확보를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전통주는 우리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증신시켜줄 뿐만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음식·문화관광 등 다양한 분야와의 연계를 통한 농촌의 6차 산업화를 할 수 있는 고리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이날 담당자와 관련 실무자는 다음날 서울에서 사용자들의 호응을 보기 위한 행사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예산부족으로 인해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전통주의 명맥을 끝까지 이어보겠다는 그들의 노력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지원방식이 아닌 현실적인 지원책이 필요해 보인다.


태그:#유네스코문화유산, #가야곡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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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쓰는 남자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며, 역사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다양한 관점과 균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열심이 사는 사람입니다. 소설 사형수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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