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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유일한 본분으로 일컬어지는 공부.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질책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다양한 여러 곳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리고 청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같은 고민에 속해 있는, 청소년인 필자가 직접 인터뷰합니다. 또, 청소년들이 모이고, 주최했던 행사나 모임을 취재합니다. 청소년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동네 1318]입니다. 이번 차례에는 글이 좋아 글을 쓰기 시작해, 자신이 직접 만든 희곡 두 개를 무대 위로 올린 류연웅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 기자 말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입시 전쟁에 뛰어들면서 쓰는 자기소개서, 아니 '자소설'부터 시작해서 한 시간에 12만 원짜리 과외와 함께하는 논술 대비까지, 대학시절에는 수많은 에세이와 논문에, 취업 시장의 '자소설'과 이력서와 함께 취업을 한다면 이번에는 보고서와 여러 서식의 문서들까지, 우리는 평생 살면서 머리를 감싸쥐고 수많은 글을 쓰고, 또 그 글을 고쳐쓰며 수많은 고민에 빠져서 산다.

필자도 글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거나 얼이 반쯤 빠져나간 표정으로 생각없이 노트북 자판을 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 글에 빠진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것 없이 예고 문예창작학과에 왔다가 우연히 한 소설가의 작품을 읽고 작가의 꿈에 맹렬히 빠져든 사람이다.

1학년 때 백일장에서 언어유희에 착안해 '콩트'를 썼다가 선생님의 눈에 띄어 국립극단 공모전에 다시 대본으로 써서 내놓았다가 덜컥 당선되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극작가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이어 2015년 12명의 젊은 신예 극작가에 초점을 맞춘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의 '10분희곡릴레이 페스티벌'에도 10분짜리 희곡을 써내게 되었다. 아직 10대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세 개의 희곡을 당당하게 내놓은 극작가가 된 것. 무한한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가끔은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글을 써내는 그 사람. 고양예고 3학년 류연웅씨를 11월 27일 홍대 걷고싶은 거리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해보았다.

류연웅씨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 지 묻자, '어제 예쁜 우산을 샀다'며 우산을 들어보였다. 원하는 대로 그 우산과 함께 사진에 찍혔다.
▲ 홍대 거리 한 가운데에서 포즈를 잡은 류연웅씨 류연웅씨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 지 묻자, '어제 예쁜 우산을 샀다'며 우산을 들어보였다. 원하는 대로 그 우산과 함께 사진에 찍혔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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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쓰는 사람이 글 쓰는 사람을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다. 반갑다. 진부한 자기소개 대신, '나를 하나의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은 어떤가.
"볼링공이다. 나를 상대로 볼링 핀처럼 빳빳이 고개를 들고 서 있는 잘못된 관행, 부조리, 그리고 잘못된 사람들의 무리들을 그대로 스트라이크 하듯이 넘어뜨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이다."

- 예술고의 여러 과 중에서 문예창작학과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중학교 3학년때 내신 산출을 했는데 200점 만점에 190점이 나왔는데, 그 당시에는 애매한 숫자였다. 인문계를 가고 싶지는 않고, 기술을 배우기에는 나와 맞지 않아 도피처를 찾다가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를 도피처 삼아 입학 시험을 보았다. 얼떨결에 합격한 다음부터 고양예고에 와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 앞서 서문에서 대략적으로 이야기했지만, 극작가로 시작한 계기가 특별하다는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가.
"한 달에 한 번씩 실기 평가를 보는데, 한번은 늦잠을 자서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시간이 30여 분 밖에 안 남은 것이다. 시제로 '시계'가 나왔는데, 전에 '미소'라는 시제를 갖고 선배가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해 내용을 써서 1등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시계'를 '시간의 계략'으로 분해해서 음악시간에 가창시험을 보지 않기 위해 비트박스에 빠져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썼다.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감명을 받고 이것을 힙합 뮤지컬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어렸던 시절 힙합을 좋아해서 직접 불렀던 힙합곡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릴 정도였는데, 이게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만들어서 국립극단 예술가 창작벨트 공모전에 냈는데, 당선이 되었다. 그래서 열 일곱살에 내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첫 공연을 국립극장에서 하게 되었다. 중학교때 힙합 음악에 빠졌던 경험을 그대로 기억 속에만 두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실현되어서 놀라웠다."

- 벌써 세 개의 연극을 무대 위로 올리고 직접 그 연극을 프로듀서로서, 그리고 관람객으로서 보았다. 혹시 관람하면서, 희곡을 집필하면서 있었던 재미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인물을 만들 때는 새로운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웹툰작가 주호민씨처럼 친구들의 이름이나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따오는 편이다. 인물을 만들 때도 그 친구의 성격을 토대로 만드는 편인데, 작품을 종종 쓰고 연출가, 작곡가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원래 설정한 인물이 많이 바뀐다. 제 친구는 껄렁껄렁하고 조금 웃기는 아이인데, 극에서는 말끔한 '범생이'가 되어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많이 생겼다. 그걸 보면서 친구들은 자기 이름을 쓴 것을 좋아하면서도 성격이 바뀐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것이 제일 재미있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힙합에 빠졌던 경험을 희곡으로, 내게도 놀라운 경험"

처음 쓴 희곡은 국립극단의 책자에도 실렸다.
 처음 쓴 희곡은 국립극단의 책자에도 실렸다.
ⓒ 류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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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산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문화인 중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
"찰리 채플린을 좋아한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웃겨서이다. 사람을 웃길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재능이기 때문이다. 그냥 웃음만을 주는 것때문만은 아니다. 그 시대 사회 문제를 풍자하고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존경하는 국내 문화인은 콕 찝을 수가 없기도 하고, 다른 분들이 섭섭해 하실 것 같아서 말하지 않겠다."

- 긍정적인 마인드가 지금까지의 성공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긍정적인 마인드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허영이 있다. 나도 굉장히 허영덩어리인 사람이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페이스북에 잘 사는 척 하고, 일부러 어울리지도 않는 비싼 옷을 사입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 초라한 내 모습 자체를 만날 수 있던 경험이 있었다. 삶의 큰 위기가 왔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허영과 긍정은 한끗차이라고 생각한다. 허영을 통해 내 자신을 감추는 것이 아닌, 긍정을 통해 내 본연의 모습을 내보이는 방법을 그때 터득한 것 같다. 저 경험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전적인 작품을 써서 이야기할 것이다."

- 지금까지 나온 세 개의 희곡은 대학로 스타일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스타일 외에 다른 도전해보고 싶은 연극의 장르가 있다면 어떤 장르인가?
"고 신해철씨의 <A.D.D.A>라는 노래가 있는데, 한 사람이 아카펠라(사람의 목소리로만 만든 음악을 가리키는 말로, LG 휴대폰에 수록된 알람노래를 부른 '리얼 그룹' 등의 아티스트들이 있다)로 1000개 이상의 악기의 소스를 만들어서 만든 노래이다.

이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뮤지컬에도 아카펠라를 도입한다면 어떨까 했는데, 지금까지는 선례가 없다. 뮤지컬은 스테이지 아래에서 오케스트라나 피아노가 반주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들 없이 앙상블로 스테이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같이 한 파트씩을 맡아 부르는 아카펠라 뮤지컬을 한번 연출해보고 싶다. 지금 대본은 다 작성했고, 노래는 직접 만들고 있기 때문에 오래 걸린다. 3년 안에 완성시켜서 사람들 앞에 내놓고 싶다."

류연웅씨는 '10분희곡릴레이 페스티벌'의 작가 12명 중 하나이다.
▲ '10분희곡릴레이 페스티벌' 무대인사하는 작가들 류연웅씨는 '10분희곡릴레이 페스티벌'의 작가 12명 중 하나이다.
ⓒ 류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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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다고 해서 쉬지 않고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휴식이 필요할 때는 어떤 방법으로 휴식을 갖는가?
"지금 세 가지의 예술 장르 소설, 희곡, 음악에 발을 걸치고 있다. 소설을 쓰다가 재미없어지면 희곡을 쓰고, 희곡 쓰기가 재미없어지면 음악을 작곡하고, 음악 작곡도 싫증이 날 때쯤에는 소설이 쓰고 싶어진다. 가끔 셋 다 싫증이 날 때는 버스를 타고 산책을 한다. 무작정 마음에 드는 곳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서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린다. 새로운 길에서 '미아'의 마음으로 걷는 것이 재미있다."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 계속할 것"

- 현재의 예술계는 공모전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 신춘문예나 공모전 등을 통해 등단한 사람들이 중시받고, 직접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예술인이 된 사람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공모전 중시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비단 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너 어디 통해 등단했어?'와 '너 어느 대학 나왔어?'라는 질문의 성질이 같기 때문이다. 나도 국립극단의 공모전을 통해서 극작가로 활동하는 발걸음을 내딛었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비판하는 것이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스템을 바꾸려면 시스템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것이 슬프다.

어떤 학생들이 수능을 폐지해야 한다고 했을 때, 수능을 보지 않았다는 학생들이 말을 하면 '에이, 쟤네 뭐야'라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에 S대 수석 입학생이 그런 말을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 자체가 달라진다. 그 제도를 통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그 제도를 유지시키려 드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아직 정답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이것이 제도의 문제인지, 사회적 시선의 문제인지 아직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은 열심히 글을 쓸 수밖에 없다."

- 대학교를 중앙대학교 문학창작학과로 가게 되었다고 들었다. 원하는 과와 대학을 찾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삼아서, 비슷하게 '글쟁이'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펙을 함부로 쌓지 말라고 하고 싶다. 스펙 자체가 자신에게 '나는 이만큼 했어, 이만큼이면 괜찮아!'라는 쓸데없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안도하지 말고 많이 글을 써보고,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던지, 모르는 곳을 가본다던지, 가사 좋은 노래를 듣는 등 많은 경험을 쌓아보라고 하고 싶다.

나는 글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러 가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들 글을 써야 된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SNS를 열어보고, 게임을 먼저 켜고, 다른 일을 먼저 하고 최후에 글을 쓰지 않나. 자꾸 다른 생각이 난다면 산책을 하거나, 목욕을 하고 돌아와서 다시 노트를 열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시간의 인터뷰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고등학교 3학년에 3개의 극을 올리는 성공을 거두었고, 그리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긍정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그가 존경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찍힐 사진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았다. "어제 예쁜 우산을 샀어요"라며 "카페 안에서 찍으면 우산을 못 찍고 지금 눈도 오니까 밖에서 우산을 들고 인터뷰 사진을 찍으면 어떨까요?"라고 말한다. 남들이 보기엔 엉뚱하면서도 신기하게 생긴 우산을 들어보이며.

그대로 밖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눈발이 약하게 날리는 밤이었다. 그의 우산을 보면서 인터뷰 내내 톡톡 튀는 생각을 가졌던 그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을 앞에 둔 열아홉살의 성공 이야기가 결코 '얼떨결'이 아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 자신만의 희곡 '1막'인 셈이다. 자전적인 희곡을 쓸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그것이 진짜 연극이 된다면 인터뷰 따위보다는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또 다른 도전이 기대된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옆동네 1318은 우리 사회에 '멋진 청소년;이라면 누구라도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태그:#극작가, #연극,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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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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