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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받침대 하나만 구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11월 22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거주하는 B씨 집 문을 두드렸다. '면장입니다'라고 말하자 '들어오세요'라는 말 대신 '왜 왔느냐'는 눈빛이다.

말을 들어주는 것도 서비스 행정이다

"면장님께서 직접 방문하시는 것보다 계장님과 제가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B씨는 좀 까칠하신 분이거든요."

이틀 전, 복지계 직원은 B씨는 장애인이고, 사람 만나기를 꺼린다고 말했었다. 특히 공무원들이 찾았을 땐 '필요 없으니 가라'고 화부터 내시는 분이라고 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했지만, 조금 거리낌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밖에 보니까 연탄이 없던데, 방이 그다지 춥진 않네요?"
"거긴 옛날에 연탄을 쌓아 놓았던 곳이고 창고는 뒤쪽에 있어요."

들어서자마자 '불편한 것 없으세요?'라고 묻는 것 보다 주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앉자마자 프랑스 테러, 프리미어12 한국 팀 우승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방 한 귀퉁이에 TV가 덩그러니 놓인 것으로 보아 그것이 유일한 낙인 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B씨는 IS탄생 배경을 비롯해 한국야구의 결집력에 대해 전문가 뺨칠 정도의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문득 '이분은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장구도 치고 질문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생활하시면서 당장 필요하신 것 뭐 없으세요?"
"제가 한 가지만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뭘까? '집을 새로 고쳐달라거나 진입로를 넓혀 달라고 하면 감당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할 즈음 B씨는 뜻밖의 말을 했다.

"제가 한쪽 다리를 못 써요. 싱크대에서 설거지 할 때 불편한 다리가 방바닥에 닿으면 아파서 그래요. 받침대 하나만..."

B씨는 불편한 몸으로 시장에 한번 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쿠션이 있는 받침대 하나에 1만원도 되지 않지만, 그게 가장 시급했던 거다.

사회복지 수혜자, 간부 공무원들이 나서라

B씨에게 작은 받침대 하나 선물했습니다.
 B씨에게 작은 받침대 하나 선물했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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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군수 최문순)은 지난 10월, '사회복지 수혜자를 위한 공무원 현장 도우미 제도'를 시행했다. 형식적 월동 준비 돌아보기가 아닌 실·과장을 비롯한 읍·면장들이 생활이 어려운 가정 방문을 통해 필요한 것이 뭔지 확인을 통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시책이다. 군수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말했다. 1006가구를 선정했다. 확인할 사항은 건강상태, 주거환경, 가족 간 갈등, 경제활동 희망여부 등 필수 4개 항목과 월동준비, 의·식·주, 의료서비스 필요 여부다.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행정 및 사회단체와 연계한 지원 시스템을 만들자는 취지다.

12월 2일, 방문결과 발표회도 연다. 군수를 시작으로 실과·소장, 읍·면장들이 조사한 결과에 대해 행정, 민간·사회단체 합동 지원체제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도움이 절실한 가구에 대한 대책도 논의된다.

난 지금껏 말로만 '현장행정'을 했다

'담당직원은 왜 내가 B씨를 방문하지 말 것을 제의했을까!'

찾을 때마다 '올 필요없다'는 식으로 화부터 내는 것에 대한 염려로 볼 수 있다. 일종의 면장인 나에 대한 배려? 그러나 B씨가 왜 화를 내며 문전박대를 했는지 근본적 원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면사무소에서 왔는데요. 불편한 것 없으세요'라는 사무적 접근방식이 문제다. 뚜렷한 해법도 내놓지 못하면서 지속적 방문에 대한 거부감도 있을 수 있다. 때론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한 충분한 경청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어려우시겠지만, 법적검토 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B씨는 1996년까지 5년여 특수 용접공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후 한쪽 다리 마비 증세를 느꼈다. 그것이 결국 골다공증 골수염으로 이어질 때까지 원인을 몰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용접공으로 일할 때 발생한 가스가 문제인 듯싶었다. 인터넷 등 관련 서적을 뒤져 유사한 사례를 찾았다. 그러나 이미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B씨는 법적으로 구제가 가능할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12월 1일, 우리 군에서 전문가를 모시고 법률상담을 열기로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시니까 제가 대신해서 상담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게 현장행정이구나! 돌이켜보니 난 지금까지 책상에서 현장행정을 부르짖는 또 다른 탁상행정을 하고 있었던 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태그:#화천군, #사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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