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살타 아쉬운 손아섭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

1회 초 1사 주자 1, 3루 때 대한민국 손아섭이 병살타를 친 뒤 아쉬워 하고 있다.

▲ 병살타 아쉬운 손아섭 지난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 1회 초 1사 주자 1, 3루 때 대한민국 손아섭이 병살타를 친 뒤 아쉬워 하고 있다. ⓒ 연합뉴스


KBO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손아섭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를 응원해온 팬들과 KBO로서도 씁쓸한 장면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24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손아섭(27·롯데)에 대한 포스팅 결과를 전달받고 원소속구단인 롯데에도 통보했다. 결과는 참가 구단 전무. 2002년 2월 진필중(당시 두산)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나온 결과다.

손아섭은 올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수많은 한국 선수 중에서도 유독 평가가 엇갈리던 선수였다. 애당초 강정호나 박병호만큼의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은 여러 차례 예상된 바 있다. 하지만 아예 포스팅에 참가한 구단 자체가 없다는 것은, 국내 전문가들은 물론 미국 현지 언론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다.

포스팅 구단 전무, 진필중 이후 13년 만에 처음

MLB 포스팅 결과발표 하루 앞둔 손아섭 메이저리그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프로야구 롯데 자 소속 손아섭이 23일 세종시 32사단 훈련소에 입소하며 웃음을 짓고 있다.

▲ MLB 포스팅 결과발표 하루 앞둔 손아섭 메이저리그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소속 손아섭이 지난 23일 세종시 32사단 훈련소에 입소하며 웃음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앞서 진필중이 포스팅 굴욕을 당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프로야구에 대한 평가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상황이었다.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등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코리안 1세대는 모두 국내 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미국 무대에 직행하거나 마이너리그를 거친 선수들이었다.

한국프로야구 선수 출신들은 그나마도 이상훈이나 구대성처럼 일본을 거쳐 간접적으로 검증을 받고서야 겨우 메이저리그에 근접할 수 있었다. 그만큼 미국 야구계에서 한국야구의 수준을 트리플A나 더블A 이하 정도로 낮게 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류현진-강정호처럼 KBO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한국 야구의 수준에 대한 미국 야구계의 인식을 바꿨다.

최근 박병호는 포스팅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로부터 1285만 달러라는 높은 가격을 제시받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고타자이자 국가대표이기도 한 손아섭의 충격적인 포스팅 결과는, 최근 불고 있는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열풍에 가려진 냉정한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손아섭의 굴욕은 지난해 김광현-양현종-윤석민 같은 KBO 출신 투수들의 실패 사례와 더불어, '메이저리그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투수들의 경우, 메이저리그에서 우선순위로 보는 능력치는 선발요원으로서의 능력이다. 메이저리그의 빡빡한 경기일정과 5인 로테이션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 그리고 이닝 소화력을 갖췄는지가 중요한 기준이다.

그 기준에 부합한다고 평가받은 류현진은 LA 다저스로부터 파격적인 포스팅 금액을 제시받으며 메이저리그에 연착륙했다. 그러나 김광현과 양현종은 류현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를 제시받으며 메이저리그 선발투수가 지녀야 할 능력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윤석민은 FA를 통해 포스팅 없이 볼티모어와 계약했지만, 메이저리그는 단 한 경기도 밟아보지 못하고 1년여 만에 국내 무대로 유턴해야 했다.

박병호 대박 vs. 손아섭 쪽박... 나머지 선수들은 어떨까

MLB 노크하는 5인방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

경기 전 식전 행사 때 대한민국 김현수(오른쪽부터), 이대호, 박병호, 손아섭, 황재균이 3루 선상에 도열해 있다.

▲ MLB 노크하는 5인방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 경기 전 식전 행사 때 대한민국 김현수(오른쪽부터), 이대호, 박병호, 손아섭, 황재균이 3루 선상에 도열해 있다. ⓒ 연합뉴스


그럼 타자는 어떨까.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거나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강정호-박병호-이대호-김현수 같은 타자들과 손아섭이 차별화된 부분은 '교타자 형 코너 외야수'라는 점이다. 이 점은 손아섭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할 때부터 최대 약점으로 거론된 부분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한국 야수들을 영입하면서 보는 기준은 장타력이 우선순위였고, 그다음이 포지션 소화 능력이었다.

손아섭의 장점은 KBO 현역 타율 1위라는 기록에서 보듯, 뛰어난 선구안과 콘택트 능력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 외에는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무엇 하나 뚜렷한 장점을 찾기 어려웠다. 국내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한 부분도 "손아섭 같은 스타일의 타자는 마이너리그에도 많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손아섭의 포지션은 장타력을 갖춘 선수들을 훨씬 선호한다. 한국보다 많은 메이저리그 야수들을 배출한 일본에서도, 교타자 형 외야수로 미국에서 성공한 사례는 '타격 천재' 스즈키 이치로 이외에 딱히 없다.

결국, 손아섭의 패인은 시장 상황과 수요, 타이밍을 현실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팀 동료 황재균과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하면서 포스팅 시기를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소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윈터 미팅이 끝난 이후까지 기다려보는 게 나았다.

11~12월은 메이저리그 각 구단이 다음 시즌을 대비한 전력구상에 한창 바쁜 데다, 대형 FA들의 거취가 한창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점이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윈터 미팅 이후 전력보강에 다급해진 구단들의 빈자리를 노려보는 전략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물론 포스팅 제로의 무관심에서 보듯, 설사 포스팅 시기를 늦춰서 관심을 보이는 구단이 나왔다고 해도 낮은 수준의 계약 제시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손아섭의 메이저리그 도전이 좌절되면서, 후발주자들도 영향을 받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손아섭의 포스팅 바통을 이어받게 된 팀 동료 황재균을 비롯하여 손아섭과 포지션 상 같은 딜레마를 안고 있는 김현수 등의 거취가 관심을 끌고 있다. 심지어 이들의 영입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몇몇 구단들 역시 손아섭 때와 같다.

최근 박병호의 대박과 손아섭의 쪽박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이어지며, 전문가들의 예측도 신중해지는 분위기다. 황재균은 일단 국내 무대에서의 성적이 손아섭에 비하여 크게 나을 것이 없다. 김현수 역시 경쟁이 치열한 코너 외야수로서 메이저리그의 기준을 만족할 수 있을지 관건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메이저리그의 기준'상 이들의 상황이 손아섭과는 다를 것이라고 보는 전망도 있다. 황재균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받은 강정호나 박병호처럼 장타력을 갖춘 내야수라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다. 김현수는 손아섭보다 펀치력도 갖춘 중·장거리형 타자인 데다 포스팅이 필요 없는 완전 FA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최근의 활약에 참고될 만한 프리미어 12에서도, 상대적으로 벤치에 많이 머물렀던 손아섭에 비하여 두 선수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황재균과 김현수는 이미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한 이대호와 함께 대회 '베스트 9'에도 이름을 올렸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메이저리그 도전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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