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역대급 MVP 경쟁이었다. 치열했던 경쟁의 승자는 에릭 테임즈(NC 다이노스)였다. 테임즈는 24일 서울 양재동 더 K 호텔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시상식'에서 MVP 투표 결과 총 99표 중 50표를 획득, 시즌 최우수 선수의 영광을 누렸다.

테임즈는 1998년 타이론 우즈-2007년 다니엘 리오스 이후 외국인 선수로서는 역대 세 번째이자 타자로만 국한하면 두 번째 MVP가 됐다. 테임즈의 2015시즌 성적은 그야말로 PC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기록이다.

타율 3할8푼1리 출루율 4할9푼7리 장타율 0.790 47홈런 40도루 140타점 130득점을 기록하며 타율-득점 -장타율- 출루율 네 부문에서 리그 정상에 올랐다. 평생 한 번 달성하기도 힘든 사이클링 히트를 올시즌에만 두 번이나 기록했다.

그러나 역시 테임즈 신드롬의 하이라이트는 KBO 역사에 불멸로 남을 역대 최초의 40-40(홈런-도루)이다. 테임즈는 지난 10월 2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서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3회 2루 도루를 성공시키며 대망의 40-40 클럽에 가입했다. 시즌 최종성적은 47홈런 40도루였다.

40-40은 한국보다 경기수가 더 많고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호세 칸세코(1988년), 배리 본즈(1996년), 알렉스로드리게스(1998년), 알폰소 소리아노(2006년) 등 불과 4명만이 이 고지를 밟았을 만큼 희귀한 기록이다. 일본프로야구에도 사례가 전무하여 테임즈가 이 기록에 관한 아시아 야구 사상 최초의 선구자가 됐다.

테임즈가 2014년 프로야구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성적을 올릴 거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테임즈는 메이저리그 통산 2시즌 181경기 타율 2할5푼 21홈런 62타점으로 그리 성공한 편은 아니었고 선수경력의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한국무대에 오기 직전인 2013시즌에도 더블A와 트리플A를 오가며 마이너리그에서 98경기 타율 2할8푼3리 3할6푼7리의 출루율, 장타율 4할3푼2리 정도에 그쳤다.

그런 테임즈가 한국무대에 오자마자 펄펄 날면서 본의아니게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한국 선수들과 비교 대상에 오르내리며 '간접 디스'를 당하는 해프닝도 자주 벌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변변찮았던 테임즈도 펄펄 날 정도로 KBO 리그의 수준이 높지 않은 게 아니냐는 선입견이었다. 물론 강정호의 ML 연착륙과 박병호의 포스팅 대박 등으로 이런 오해는 상당히 풀렸다.

테임즈가 분명히 한국무대에서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테임즈는 팀 동료들도 칭찬할 정도로 노력파였고, 경기장 안팎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며 기량을 끌어올렸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주로 백업에 그쳤지만 출전할 때마다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을 만큼 재능 자체는 이미 검증된 선수였기에 한국에서는 고정적인 선발로 기용되며 자신의 기량을 만개할 수 있었다.

또한 테임즈는 야구는 물론 지역 소외 아동을 돕고 세월호 참사 1주기 때는 자신의 SNS에 추모의 글을 올리는 등 선행으로 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야구에 관한 본인의 꾸준한 노력-한국문화와 정서에 대한 유연한 적응 등이 뒷받침되며 다른 외국인 선수들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2년째 MVP 놓친 박병호, 그래도 잘했다

한편으로 테임즈의 MVP 수상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바로 경쟁자 박병호다. 40-40을 달성한 테임즈와 마찬가지로, 박병호 역시 4년 연속 홈런-타점왕, 2년 연속 50홈런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달성했다. 테임즈만 아니었다면 박병호 역시 언제든 MVP를 수상하고도 남을 엄청난 성적이었다.

더구나 박병호는 지난해도 50홈런을 쏘아올렸지만 최다안타 기록을 달성한 팀동료 서건창에 밀려 MVP 타이틀을 놓쳤던 아쉬움이 있다. 지난 시즌의 동정표와 맞물려 내년 메이저리그 진출이 유력한 박병호의 KBO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박병호에게 표가 쏠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자단 투표는 근소하게 테임즈의 '희소성'(40-40과 사이클링 히트)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줬다. 6표 차이라는 박빙의 결과에서 보듯 누가 MVP를 수상해도 이상하지 않았을만큼 치열했던 경쟁이었다. 어찌보면 2년 연속 불운한 조연에 그치고 만 박병호지만 이번에도 박수와 미소로 테임즈를 격려하며 결과를 받아들이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

1998년 이승엽-우즈, 2003년의 이승엽-심정수, 2010년의 이대호-류현진처럼 치열했던 MVP 경쟁은 여러 차례가 있었지만, 테임즈와 박병호의 경쟁은 그야말로 KBO의 수많은 역사를 갈아치운 '최초'의 연속이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40-40이나 한 시즌 사이클링히트 2회, 2년 연속 50홈런 모두 엄밀히 말해 개인 타이틀이 걸려 있는 기록은 아니지만 야구사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위대한 기록들로 평가받는다. 야구 선수라면 평생 한번 달성하기도 힘든 대기록들을 두 선수는 올시즌에만 무수히 갈아치우며 역사를 바꿨다.

더구나 앞으로 이들의 뒤를 잇는 후발주자가 나온다 할지라도 이들이 'KBO 역사상 최초'였다는 상징성은 세월로 흘러도 깨지지 않는 불멸로 남는다. 단지 올시즌 누가 MVP가 되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부분이다. 훗날 야구의 역사는 두 선수가 활약했던 2015년을 KBO를 빛낸 위대한 시즌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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