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바닥에 누워서 사원의 탑을 찍는 인도인
 바닥에 누워서 사원의 탑을 찍는 인도인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2014년 2월 27일, 늦은 오후, 남인도 타밀나두 주 탄자부르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에서는 마침 시바신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하여 시바 신에게 예배와 기도를 드리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를 가나 사람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들렀던 수많은 성당과 교회에서는 예수를 보았지만 이곳처럼 진한 사람냄새는 없었다. 그러나 인도의 힌두사원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들끓는다. 

인도에서 탄생한 힌두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주된 신은 누구인지, 성서나 코란처럼 정해진 경전은 있는지 의문을 가질수록 그 의문덩어리는 자꾸만 커져간다. 힌두교를 다른 종교와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 같다. 힌두교의 신은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창조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새로운 신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인도사람들은 힌두교를 통해서 생각하고, 결혼하고, 생활하고 죽어간다. 힌두교는 바로 그들의 생활 자체이다.

남인도는 드라비디언들이 힌두문화를 꽃피운 땅이다. 탄자부르에 위치한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은 인도에서 가장 큰 사원 중의 하나다. 198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힌두사원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마크 어빙 저)에 선정된 촐라왕조의 걸작이다.

촐라왕조 라자라자 1세(985~1012)가 건축한 이 힌두 사원은 높이가 66m로 남인도에서 가장 높다. 피라미드형 탑 꼭대기에 올린 시카라(sikhara, 힌두사원의 꼭대기)는 무게가 81.3톤이나 된다. 성인 1500명에 해당하는 엄청난 무게다. 천 년 전 기중기나 운송장비가 없던 시절에 저렇게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올렸을까?

사원 입구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시바 신에게 바칠 공양물을 사느라 부산하다. 이방인에게는 낯선 소리와 냄새가 진동한다. 꽃과 향, 음식물 등 여러 공양물 중에서 사람들은 시바 신에게 바칠 공양물을 골라 정성스럽게 들고 간다.

힌두 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가야 한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신발 저장소가 매우 혼잡하다. 현지 사람들은 그냥 입구에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던지고 간다. 그 모습이 매우 자유롭게 보인다.

신발장에 보관하려면 몇 푼의 보관료를 줘야 한다. 그러나 신발장에 보관하지 않으면 나중에 나올 때 신발을 찾기가 어렵고 다른 사람이 신고 가버릴 수도 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보관료를 주고 신발장에 신발을 보관했다. 신발 하나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사원 안에서는 누구나 맨발로 걸어야 한다. 맨발로 신성한 사원 바닥의 돌을 밟는 기분은 뭐랄까?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맨발로 걷는 인도인들의 표정이 참 행복하게 보인다. 삼삼오오 사원의 잔디밭에 앉아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표정도 무척 평화롭다. 모든 것을 훌훌 놓아버리고 함박꽃 같은 미소를 짓는 표정이 넉넉하고 행복하게 보인다.

행복한 얼굴로 사원을 찾는 인도 사람들

석양노을에 불타는 듯 서 있는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의 고푸람
 석양노을에 불타는 듯 서 있는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의 고푸람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본당에 들어가려면 두 개의 고푸라(gopura, 사원정문)를 지나가야 한다. 거대한 고푸라가 석양노을에 불타는 듯 다가온다. 고푸라 그 자체만도 사람들을 압도한다. 육중한 돌로 건축된 고푸라에는 시바 신의 춤추는 모습이 각양각색으로 새겨져 있다. 유연한 자세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시바 신의 모습은 어쩐지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고푸라를 통과하니 거대한 난디(Nandi, 시바 신이 타고 다녔다는 황소) 석상을 안치한 사당이 나온다. 사당 중앙에는 거대한 흑색 난디 상이 안치되어 있다. 무게 25톤, 높이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난디 상이다. 어이쿠, 이렇게 큰 난디 상은 처음 본다.

시바신이 타고 다녔다는 황소 난디상
 시바신이 타고 다녔다는 황소 난디상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난디 상 앞에서는 힌두교의 사두(sadhu, 힌두교 요가 수행자)들이 끊임없이 힌두 주문을 독송한다. 웃통을 벗은 채 음유시인이 노래하듯 암송하는 힌두 경전은 마치 이슬람의 코란을 암송하는 것에 비유된다. 이곳의 사두들은 모두가 미남이다. 매끈하게 생긴 이목구비가 매력이 넘친다.

사람들이 난디에게 공양물을 바치려고 줄을 길게 서 있다. 저마다 가져온 공양물을 두 손으로 받들고 기도를 올리며 사두에게 건네준다. 사두는 건네받은 공양물 중 꽃은 난디 상에 뿌리고  다른 공양물은 난디상 주변에 걸어 놓거나 밑에 놓아둔다. 그 모습이 매우 경건하다.

▲ 시바신축제 남인도 탄자부르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시바신축제현장
ⓒ 최오균

관련영상보기


난디에게 공양물을 바친 사람들은 시바 신에게 경배를 하기 위해 비마나(vimana, 본전 성실)로 향한다. 높이 66미터에 달하는 비마나는 시바신이 거처를 하고 있다는 카일라스 산(Mt. Kailasa)을 유추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도 그 긴 줄 뒤에 서서 비나마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이윽고 만다파(mandapa, 예배를 준비하는 공간)를 지나 본당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시바의 링가(linga, 남근 상)가 보였다. 높이 4미터, 둘레 7미터, 무게가 20톤이나 된다고 하는데… 어휴! 이렇게 큰 시바의 링가는 처음 본다. 이건 남근이 아니라 거대한 기둥이다!

링가와 요니(yoni, 여자의 성기)에는 흰 우유를 부은 흔적이 이색적으로 남아 있다. 링가에 우유를 붓는 것은 시바의 은총으로 농사 등 모든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천주교의 성수와 비슷한 의미라고 할까? 하지만 링가에 흰 우유를 부어 흘러내리는 모습은 이방인에게는 매우 생소하게만 보인다.

본당을 빠져나오니 현란한 조명을 받은 거대한 비나마가 밤하늘에 아득히 서 있다. 현지인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더니 완전히 바닥에 누워서 포즈를 잡으며 찍어준다. 내가 보아온 사진사 중에서 가장 멋진 포즈다. 나도 그의 포즈를 따라 바닥에 누워 탑을 올려다보았다. 원더풀! 서서 볼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바닥에서 몸 전체에 뭔가 전율 같은 것이 전달되고, 하늘에는 신비한 탑이 두둥실 떠간다. 나는 아득히 먼 천년의 역사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당신도 이렇게 소원을 하나 빌어보세요"

난디 상의 귀에 대고 소원을 속삭이는 인도인(남인도 탄자부르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난디 상의 귀에 대고 소원을 속삭이는 인도인(남인도 탄자부르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인도인처럼 바닥에 누워서 찍은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인도인처럼 바닥에 누워서 찍은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비나마를 한 바퀴 돌아 나오다가 나는 작은 난디 상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며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 한 중년 남자를 만났다. 난디 상의 머리와 등에는 꽃과 풀로 덥혀있고, 입에는 쌀밥이 잔뜩 묻어있다.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묻혀 놓은 것이다. 그는 이 작은 난디의 귀에 가만히 입을 대고 매우 진지하게 뭔가 소원을 빌고 있었다.

난디는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암소다. 힌두교도들은 이 암소의 몸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든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난디의 귀에 대고 소원을 말하면 그 안에 있는 신들이 그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는다.

그 남자가 너무 진지하게 소원을 빌고 있어 그 모습을 촬영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그는 내가 촬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기도를 계속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진지하고 경건하게 보였다. 나는 난디의 귀에 입을 때고 일어선 그에게 다가가 합장을 하고 난디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물었다.

▲ 시바신축제 난디에게 소원을 비는 인도인
ⓒ 최오균

관련영상보기


"다음 생에는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당신도 이 난디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해보세요. 간절하게 빌면 저 난디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 줄 겁니다."
"아, 그래요?"

여행은 현지의 종교와 풍습을 체험하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감사표시를 하고 그의 말대로 작은 난디상의 귀에 대고 한 가지 내 소원을 속삭였다. 내 소원은 내생을 기원하는 그 남자의 소원보다 더 현실적이고 가까운 현재의 일이다.

"난디님, 부디 아내를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지금처럼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내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사원 밖 의자에 앉아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어지러워서 걷기가 힘들단다. "밖에서 바라보아도 사원은 다 보이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사진이나 잘 찍어 오세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군중 속을 헤집고 다니기가 지친 아내에게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다. 저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아내의 유일한 희망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난디 사당 앞에서는 축제공연이 한창이다. 화려한 원색의 복장을 한 무희들이 시바 신이 추었다는 전통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시바의 춤을 잠깐 구경하다가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사원 밖으로 나갔다. 밤은 깊어 가는데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시바신 축제에서 전통춤을 추는 인도의 무희들
 시바신 축제에서 전통춤을 추는 인도의 무희들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태그:#남인도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시바신축제, #시바신 축제, #링가, #남인도기행, #탄자부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