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남 창원시가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세스페데스 공원'을 조성하고 있어 논란이다. 스페인 사람인 세스페데스 신부는 1577년 일본에 선교사로 왔다가, 1593년 12월 정유재란 당시 왜군과 함께 창원 진해 웅천으로 들어왔고, 1년 정도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인 김유철 시인이 세스페데스 공원에 반대하는 글을 보내와서 싣는다 [편집자말]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웅천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만든 성으로, 현재 경남도 기념물 79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웅천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만든 성으로, 현재 경남도 기념물 7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창원시는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역사 국정교과서 논란이 한창이다. 아니 한창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진행 중이다. 역사교육이 잘못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창원시가 직접 보여주려 세금 3억여 원을 쏟아서 하고 있는 일이 있다. 창원시는 도대체 왜 이 일을 하려는 걸까?

창원시는 현재 진해구 남문동에서 '세스페데스 공원'을 11월 30일 개장식에 맞추어 공사를 하고 있다. 이미 있는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비를 공원 한가운데로 옮기고, 주변에 스페인식 정원을 조성한다. 또 공원 둘레에는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첫발을 내딛는 장면을 황동으로 형상화한 조형물을 세운다. '세스페데스' 공원을 입안하고 승인하고 최종 결재한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에게 임진왜란은 어떤 전쟁이었느냐고?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왜', 즉 현재의 일본이 한반도 전역을 짓밟았다. 정유재란을 포함하여 그것을 우리는 임진왜란이라 부른다. 이 당시 왜(일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봉건적인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으며, 싸움에서 얻은 강한 무력과 유럽 상인들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새로운 무기를 바탕으로 신흥 세력을 억제했다. 나아가 정권의 안전을 도모하려 대륙 침략의 길을 시작했다. 그 시발점이 임진왜란이다.

1592년 5월 23일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장으로 병선 700여 척이 부산포에 상륙한 뒤 30여만 명의 왜군이 조선을 파죽지세로 유린했다. 알다시피 조선의 임금인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로 도피했다. 이 전쟁을 통해 왜군에게 한민족은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았을까? 그것은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왜란이 끝난 후 조선의 인구가 매우 감소했다는 점과 많은 사상자가 왜군의 '코 베기' 작전으로 코가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세스페데스(Cespedes, G.) 신부는 스페인 사람이다. 그는 1577년 일본에 선교사로 왔다.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세스페데스 신부는 1593년 12월 고니시 유키나가의 초청으로 조선땅 웅천(지금의 창원시 진해구)으로 건너와 1년 정도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2006년 천주교 마산교구가 주최한 세스페데스 관련 심포지엄에서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철 총장은 "지금까지 자료만으로 세스페데스 신부가 한국인들에게 복음 사업을 했는지에 관한 직접적인 기술을 충분히 찾을 수 없었다. 발견된 자료와 편지에 의하면 세스페데스 신부는 일본군의 요새 주위에서만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스페데스 신부의 고향인 스페인 알까르데떼 주민들은 그가 웅천에 온 지 400주년이 되던 해인 1993년 기념비를 만들어서 당시 진해시에 전달했고 현재의 창원시는 그 기념비를 두어 번 옮겨가며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918번지에 두었다. 그것으로 이 땅에 온 최초 서양 도래인에 대한 기념은 된 것이다.

현재 공사와 관련하여 창원시의 "세스페데스 공원을 관광 명소화 하여 후대에 역사적 사실을 전승하기로 했다"는 말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임진왜란 동안 코 베이고, 귀 베이고 말로 다하지 못할 치욕을 겪은 이 땅의 후손들이, 그것도 왜성이 있던 지역의 후손들이 임진왜란에 일본군을 따라 조선에 온 신부의 기념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임진왜란은 1598년 일본의 퇴각으로 끝난 전쟁이 아니라 그로부터 300년 후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이 완전히 망한 치욕의 역사로 이어지는 전쟁임을 기억해야 한다. 천주교계에서도 세스페데스 공원 사업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하며, 창원시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곳은 국내에서 가장 큰 가마터 유적이 발굴된 우리 문화유산의 터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창원시, #공원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