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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표정으로 토론을 하는 학생들, 대부분 학생들 표정이 이랬다.
 진지한 표정으로 토론을 하는 학생들, 대부분 학생들 표정이 이랬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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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우리 학교 교장이라면, 내가 만약 우리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음 직한 일이다. 이 상상이 현실이 된다. 경기도 교육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쉼표 형 꿈의 학교'가 바로 이런 학교다.

이 학교는 학생이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학교다. 학습 과목, 교육 과정은 물론 평가와 학습 방법까지 학생이 직접 결정한다. 심지어 교장, 교감, 교사까지 학생이 직접 하지만, 필요에 따라 전문 지식이 있는 교사를 초빙할 수도 있다.

이 학교의 목적은 학생들의 진정한 휴식이다. 학교 이름에 '쉼표'가 들어간 이유다. 그러나 쉰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해서 건강한 에너지를 회복한다는 의미의 '쉼'이다.

쉼표 형 꿈의 학교 대상은 중1~고3 학생이다. 기숙·통학 형으로 운영 가능한데, 이 또한 학생이 직접 결정한다. 경기도 교육청 소속 시설이나 민간 시설을 학습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 학교 설립을 위해 11월 20일~22일 2박 3일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동양인재개발원'에서 '2015 쉼표 형 꿈의 학교 운영을 위한 콘퍼런스'를 열었다. 학교를 만들어 직접 운영하고 싶은 학생 100여 명이 콘퍼런스에 참여해 자신들이 작성한 학교 설립 계획안을 발표했다.

'뭔데이 학교',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학교일까

자신들이 직접 작성한 쉼표 형 꿈의 학교 설립, 운영 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자신들이 직접 작성한 쉼표 형 꿈의 학교 설립, 운영 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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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설립 운영 계획안을 발표하는 모습.
 학교 설립 운영 계획안을 발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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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설립 운영 계획안을 발표하는 모습.
 학교 설립 운영 계획안을 발표하는 모습.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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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전, 학생들은 모둠별로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완성된 계획안을 참석자 전원에게 발표한 뒤 다시 아이디어 회의를 열어 그 계획안을 다듬었다. 콘퍼런스 마지막 날인 22일 오전에 최종 계획안을 경기도 교육청 꿈의 학교 담당 팀에 제출했다.

학생들이 제출한 계획안은 총 44개다. 역사와 요리, 음악, 경제 등 그 분야가 다양하다. 이름만 가지고는 무엇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학교도 있고 이름만 들어도 무엇을 공부할지 대충 짐작이 가는 학교도 있다.

▲ '그 시절 기억 학교'는 역사적 인물들의 유적을 찾아 그 뜻을 기리는 학교이고 ▲ '새이레 이뿌 학교'는 우리 사회에 박힌 고정관념을 깨는 게 목표인 학교다. ▲'뭔데이 학교'는 월·화·수·목·금요일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일종의 '행복학교'다.

이밖에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꿈을 펼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 '한량학교'와 역사적 사실을 연극으로 표현하는 ▲ '내가 조선의 왕이다 학교' 등이 있다. 이 학교들은 심사를 거쳐 겨울방학 기간인 내년 1~2월에 실제로 운영된다.

박재동 "아이들, 기회만 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박재동 화백
 박재동 화백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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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직접 학교를 설립해 운영한다는 게 신선하긴 한데, 과연 가능할까?' 이 의구심을 가슴 한편에 품은 채 콘퍼런스 첫날인 지난 20일 오후 '동양인재개발원'을 찾았다.

학교를 직접 만들고자 하는 통 큰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대체로 표정이 진지했다. 큰 소리로 깔깔거리거나 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고만고만한 아이 100여 명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분위기도 차분했다.

만화가로 유명한 박재동(64세) 꿈의 학교 운영위원장이 기자의 의구심을 풀 대답을 내놓았다. '가능할까?'라고 묻자 박 화백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가능하다"라고 단언한 뒤 그 이유까지 설명했다. 박 화백은 '쉼표 형 꿈의 학교 설립'을 제안한 장본인이다.

희고 긴 생머리와 근엄한 표정.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한 외모와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반말 말투가 어우러져, 그의 단호한 말이 무척 설득력 있게 들렸다.

"내(내가) 미술교사 하면서 내린 결론이, 아이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거야. '너희 힘 모아서 하고 싶은 거 해봐' 하니까, 어떤 반은 영화를 만들고 어떤 반은 책을 만들었어, 어떤 반은 집을 지었고. 집을 지을 수 있으면 학교도 만들 수 있는 거지. 방학 때 모여서 함께 공부하듯이 자기들끼리 배우고 자기들끼리 가르칠 수도 있는 거야."

곧바로 박 화백은 '쉼표 형 꿈의 학교'가 필요한 까닭을 설명했다.

"어른들은 훌륭한 선생님 모셔다가 좋은 교육만 하려고 해.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받기만 하는 거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책만 보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교사가 돼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생활인이 돼서 돈도 벌어보는 그런 공부를 해야 해. 그러다가 실패도 해 봐야 하고. 그러면서 인생을 배우는 거지. 사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도 깨우치게 되고. 이런 과정 거치면서 고등학교 졸업해야 든든한 아이가 되는 거야.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 할 정도로."

이 설명을 하는 중 우리 교육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국어, 영어, 수학만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 험한 일 안 한다, 이게 우리 교육이야. 그러니까 꿈을 꾸라고 해도 현실적인 꿈을 꾸지 못하고 고상해 보이는 꿈만 꾸는 거야. 아이들은 어른들 세계를 직접 체험해 봐야 해, 그래야 이 꿈이 정말 내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어. 안 그러면 계속 모르는 거야. 학교 다 졸업해도 길을 찾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 무엇인가를 하다가 '어 이거 아니네!' 이렇게 되는 거지."

윤계숙 장학관 "이 학교 성공하면 입시제도 바뀔 수도"

박재동 화백과 윤계숙 꿈의 학교 담당 장학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박 화백은 꿈의 학교 운영위원장이다.
 박재동 화백과 윤계숙 꿈의 학교 담당 장학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박 화백은 꿈의 학교 운영위원장이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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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은 '쉼표 형 꿈의 학교'가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 자신했다. 윤계숙 꿈의 학교 담당 장학관은 '학교 문화와 대학 입시제도가 바뀔 수도 있다'라고 예상했다. 그 힘의 원천이 꿈의 학교 바탕에 깔린 '학생 스스로 정신'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계숙 :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높아지면 학생들이 입시 제도를 거부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겠다'고 주장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입시제도가 변할 수 있는 거죠. 학교 문화도 스스로 바꿀 수 있고요. 지금까지는 강요된 문화 속에 살았잖아요. 또 마마보이나 캥거루족 같은 말도 사라지겠지요."

박재동 : "민주주의가 발전할 거야. 스스로 자기 삶을 디자인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되거든. 그게 약하면 민주주의가 될 수 없어. 약하니까 공포심이 커지고, 그러다 보면 시키는 대로 하게 되고, 강한 곳에 붙게 되고. 어릴 때부터 자기가 살아갈 길을 스스로 찾는다면 강해질 수 있어. 분명한 자기주장을 하는 민주시민이 되는 거지."

교장, 교감, 교사까지 모두 학생이 할 수 있는 '쉼표 형 꿈의 학교'는 '학생 스스로 정신'의 정점에 있는 학교다.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푸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은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 있는 학교'이기도 하다. 물론 성공을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해서 진정한 휴식을 얻는 게 목적이라 특별히 실패할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실패라고 한다면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뿐인데, 이 또한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패할 기회까지 적극적으로 주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가 민주주의 발전을 견인하거나 입시 제도를 바꿀 만큼 파격적인 변화를 이끌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무엇인가 변화를 가져올 것만은 분명해 보이다.

'쉼'을 중요시 하는 학교 답게 회의하다 피곤한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인 텐트를 설치해  놓았다. 학생들이 오목을 두고 있다.
 '쉼'을 중요시 하는 학교 답게 회의하다 피곤한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인 텐트를 설치해 놓았다. 학생들이 오목을 두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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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꿈 깨는 게' 목표, 이런 학교도 있습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쉼표 형 꿈의 학교,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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