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K-1이 한창 붐을 타던 시절 경량급 'K-1 맥스' 역시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링을 꽉 채울 듯한 덩치 큰 거구들의 한방 싸움이 주는 비주얼적인 임팩트는 적었지만 뛰어난 테크니션들이 펼치는 기술 공방전은 또 다른 느낌의 재미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맥스를 더 선호하는 팬들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국내 선수들의 참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었다. '치우천왕' 임치빈, '미스터 퍼펙트' 이수환. '파이팅 뷰티' 임수정을 필두로 최우영, 이성현, 김태환, 권민석, 김동수, 김성욱, 노재길 등이 K-1 맥스에서 기량을 뽐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시기가 국내 입식 파이터들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K-1 맥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른바 '4대 천왕'의 존재다. K-1이 초창기 피터 아츠, 마이크 베르나르도, 앤디 훅, 어네스트 후스트의 '4대 천왕' 영향을 많이 받았듯 K-1 맥스 역시 맥스판 '4대 천왕'이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각자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앨버트 크라우스(35·네덜란드), 마사토(36·일본), 앤디 사워(33·네덜란드), 쁘아까오 반차메(32·태국)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수많은 전설을 썼다.

K-1에 이어 세계 최고의 입식 단체로 군림하고 있는 최근의 '글로리(Glory)' 라이트급을 보면 K-1 맥스가 연상된다. 다양한 입식기술자들이 펼치는 폭풍전야의 공방전이 흥미를 끌어가고 있기 때문으로 특히 상위권 4인은 K-1 맥스의 '4대 천왕'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량도 굿! 캐릭터도 굿!' 글로리 라이트급 '4인 4색'

챔피언 로빈 반 루스말렌(25·네덜란드)은 K-1 맥스 시절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단신 펀처 마이크 잠비디스(35·그리스)의 '업그레이드판'으로 불린다. 루스말렌은 신장은 168cm로 체급 평균에도 못 미치지만 '펀칭머신'이라는 별명답게 근접전에서의 펀치 공격이 매우 매섭다.

루스말렌은 내구력이 좋고 가드가 탄탄하며 방어에서 공격으로 이어지는 동작이 기민해 조금의 허점만 발견해도 묵직한 펀치를 틈새로 꽂는다. 상대가 충격을 받은 순간에는 폭풍처럼 몰아치며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다. 펀치가 워낙 강해 가드 위로 타격이 들어가도 휘청거리는 상대가 대다수다. 상대의 파이팅 스타일을 따지지 않고 자신만의 패턴으로 꾸준히 압박해 결국은 때려 부순다.

마사토가 그랬듯 자국 단체 주최 측의 총애를 받고 있는지라 간혹 판정에서 이익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실력이 받쳐줘야만 얻을 수 있는 장점이다. 가장 최근 경기였던 '글로리 25' 타이틀전에서는 도전자 싯티차이에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경기 내내 끌려다녔지만 의외의 판정승을 거두며 팬들 사이에서 '편파판정 논란'에 서기도 했다.

'더 머신' 앤디 리스티(32·수리남)는 '양날의 검'으로 불린다. 좋은 신체조건과 엄청난 탄력 거기에 다양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어떤 상대라도 격파할 수 있는 기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체력적인 부분에서 약점이 뚜렷해 팽팽한 흐름이 중후반으로 넘어가면 현저하게 움직임이 떨어지고 만다. 템포조절을 무시한 채 워낙 초반부터 강력하게 타격을 집어넣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몸에 밴 파이팅 스타일인지라 쉽게 고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이런 약점은 누구나 공략할 수는 없다. 중후반까지 리스티의 엄청난 화력을 견디어낼 내구력을 갖춰야 하고 체력을 유지해 반격을 펼칠 선수여야만 한다. 근성과 투지가 좋은 다비트 키리아(27·조지아)와 챔피언 루스말렌은 그러한 조건을 갖췄기에 리스티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경량식 입식 격투 최강국은 태국, 그러나...

경량급 입식 격투의 최강국은 단연 태국이다. 무에타이의 원산지답게 국가적으로 무수히 많은 강력한 낙무아이들이 매년 쏟아진다. 그런데도 K-1 시절은 물론 글로리 경량급에서도 태국 출신 파이터들을 많이 볼 수 없다. 그들의 능력을 주최 측에서 어느 정도 경계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규정 차이에서 오는 이유가 크다.

낙무아이의 가장 큰 무기는 '빰 클린치' 기술과 거기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팔꿈치-무릎 공격이다. 안타깝게도 K-1과 글로리는 킥복싱 단체인지라 '빰 클린치'와 팔꿈치 공격이 금지되어있다. 낙무아이 입장에서는 차·포를 떼고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과감하게 킥복싱 단체에 뛰어들어 새로운 규정에 적응하고 위상을 떨치는 낙무아이들도 있다. K-1 맥스 시절의 쁘아까오가 그랬고 현 글로리 최고의 신진파이터 싯티차이 싯송피농(23·태국)역시 그러한 경우다.

싯티차이는 미들킥을 필살기 겸 주무기로 들고 나왔다. 잽과 앞차기로 거리를 조절한 다음 가공할 힘으로 상대의 몸통을 통째로 후려 갈리는 미들킥은 엄청난 위력을 자랑한다. 가드에 걸리게 되면 한 방에 쓰러지지는 않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 내내 차고 또 찬다. 워낙 파워가 넘치는지라 막아낸다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충격은 고스란히 쌓인다.

나중에는 가드를 한 팔마저 이상 증세를 보이며 수비는 물론 공격을 해야 할 펀치 공격까지 영향을 줄 정도다. 이러한 '알고도 못 막는 패턴'에 키리아와 전시가 연달아 무너졌으며 얼마 전 맞붙은 챔피언 루스말렌마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다.

하지만 판정단은 경기 양상이나 선수가 받은 데미지보다 포인트 자체에 중점을 뒀고 잔타격을 좀 더 많이 맞춘 루스말렌의 손을 들어주었다. 싯티차이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K-1 맥스 시절의 쁘아까오가 당했던 견제가 떠오른다. 만약 싯티차이가 포인트성 잔 타격에도 익숙해진다면 챔피언의 자리는 바뀔 가능성이 높다.

최근 복귀전을 치른 '닥터' 조르지오 페트로시안(30·이탈리아)은 한창 글로리에서 맹위를 떨치던 시절의 기량만 유지하고 있다면 4인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파이터임이 분명하다. 탁월한 경기운영 능력에 정상급 파이터들마저 절망케 하던 극강의 수비력을 갖추고 있는지라 정상 컨디션의 그를 무너뜨리기는 매우 어렵다.

페트로시안은 K-1 맥스가 문을 닫기 직전 보여주던 엄청난 기량을 글로리까지 끌고와 삽시간에 체급을 평정했다. 리스티에게 생애 첫 KO패를 당하며 관계자와 팬들을 놀라게 했지만 리벤지 매치를 벌인다면 페트로시안의 승리를 예상하는 의견이 많다. 뚜렷한 허점을 노출한 리스티의 약한 구석을 놓칠 페트로시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챔피언 루스말렌 역시 한차례 무너뜨린 바 있다. 기술을 파괴력으로 상대하는 싯티차이 정도가 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 루스말렌-리스티 구도에 '신성' 싯티차이가 가세하고 페트로시안이 돌아온 글로리 라이트급 판도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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