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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수행 교수와 자본론 공동작업 한 강성윤 박사.
 고 김수행 교수와 자본론 공동작업 한 강성윤 박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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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의 시선은 고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사진을 향해 있었다. 강성윤(45) 박사. 그는 지난 20일 새롭게 나온 2015년판 <자본론>(비봉출판사)을 김 교수와 함께 번역했다. 김 교수 스스로도 책 서문에서 "(강 박사가) 이번 번역 작업에 최대 기여를 했다"라고 적었다. 지난 7월 김 교수는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자본론> 최종 검토작업을 강 박사에게 맡겼다.

강 박사는 "선생님이 출국하시면서 '내가 없는 동안 전체를 한 번 더 꼼꼼히 검토해 달라'고 하셨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 말씀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번 <자본론> 서문을 소개한 기사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관련 기사 : 수많은 어린 학생 죽이고... 김수행 교수의 마지막 말). 김 교수가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카를 마르크스 사진을 뒤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회한에 잠기는 듯했다.

그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를 찾은 그의 손에는 <자본론> 여섯 권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어제(16일) 오후에서야 책이 나와, 이제야 받아봤다"라고 말했다. 시중 대형서점에 나가기도 전이었다. 책이 나온 지난 20일엔 한국사회경제학회 주최로 출판기념회도 열렸다.

- 원래 10월에 책이 출판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7월 말에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그동안 해왔던 책 마무리 작업이 중단됐어요. 그러다가 유족과 이야기를 한 뒤, 10월 중에 책을 내기로 했는데, 출판사 쪽의 이런 저런 사정으로 늦어졌죠."

노(老) 학자와 젊은 마르크스 경제학자와의 만남

- 책 표지 디자인이 예전 오렌지색과는 완전히 달라졌네요.
"지난 여름에 선생님이 직접 고르신 거예요. 출판사 쪽에서 일곱 개 디자인 시안을 보내왔는데, 마르크스 사진과 함께 한글, 영어, 한자와 독일어까지 다 들어갔고, 평화를 상징하는 푸른색이 있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그는 서울대에서 학부시절부터 정치경제학에 빠져 살았다. 부전공이던 경제학을 살려 아예 대학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강 박사가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정작 김 교수는 학교에 없었다고 한다. 연구년으로 쉬고 있었기 때문에, 이듬해서야 김 교수와 만나게 됐다는 것. 강 박사는 이후 김 교수의 지도 아래 정치경제학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다.

- 어떻게 김 교수와 <자본론>을 공동 번역하게 됐나요.
"대학원 진학 이후에도 <자본론> 관련 세미나 등을 계속했었는데, 2011년 쯤인가 선생님께서 <자본론>의 새로운 번역판 출간 계획을 밝히셨어요. 그때 선생님이 저를 지명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들었죠."

이번 번역 작업은 김 교수의 말 그대로 '<자본론>의 대중화'였다. 김 교수는 기자에게 올해 초에 "요즘 젊은 친구들이 취업뿐 아니라 결혼까지 포기하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라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는 경제 현실을 젊은층이 좀 더 잘 이해하고, 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라고 말했었다. 그런 면에서 강 박사와 같은 젊은 학자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다음은 강 박사의 말이다.

"10년 넘게 '자본론 읽기' 세미나를 해오면서 나름대로 어색한 언어 표현이나 오탈자, 무리가 있는 번역 등에서 수정할 부분을 정리해놓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여럿이 공부하면서 검증을 계속하게 됐고, (서울대에서) 자본론 강의를 맡으면서 젊은 학생들과 소통을 해온 점 등이 이번 작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선생님께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노(老)학자와 젊은 마르크스 학자와의 작업은 지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강 박사는 "수시로 선생님과 메일로 번역 원고를 주고 받으며 작업을 진행했다"라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서문에서 "사실상 그가 먼저 번역하면 내가 다시 고치고, 내가 먼저 번역하면 그가 다시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라고 적었다. 2년여 동안 수십여 차례에 걸쳐 강 박사와 김 교수 사이의 원고 수정이 이뤄진 것이다.

고 김수행 교수와 자본론 공동작업 한 강성윤 박사.
 고 김수행 교수와 자본론 공동작업 한 강성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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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떠나면서 남긴 말, "내가 없는 동안 한 번 더 꼼꼼히 검토해달라"


- 선생님과 작업을 함께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는지.
"(미소를 띄며) 그분은 정말 열정적이고, 부지런하셨어요. 제가 선생님의 작업 속도를 따라가질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수정 원고를 (선생님께) 보내드리면, 곧장 검토 답장 메일이 온 뒤에 다음 일정을 재촉하시기도 하고…. 항상 원고 작업에 쫓기는 분위기였어요."

- 김 교수는 이전 책에서 나오는 한자어와 영어 표현들 때문에 대중들이 책을 읽는 기회를 빼앗는다고 하시면서, 자신 스스로도 크게 반성을 하셨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이 전 책의 번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꿔보자고 하셨어요."

- 예를 들면요?
"책 1권 1장의 첫 문장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방대한 상품의 집적으로 나타나며…' 이렇게 시작해요. 국내 다른 자본론 번역서뿐 아니라 일본어판 등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집적'이라는 표현을 순 우리말인 '더미'로 바꿨어요. '방대한 상품더미'로 말이죠."

- '더미'라는 표현이 쉽긴 한데, 당초 '집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는 다른 느낌도 있습니다.
"그렇죠. '집적'이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나타나는 '집적'(concentration of  capital)과 혼동될 수도 있어요. 원래 독일어 원본에서 씌여진 표현은 'Warensammlung'인데, '상품 따위를 모아놓은 무더기'라는 뜻이예요. 그래서 이번에 '상품 더미'로 바꾼 거예요."

이밖에도 자본론 2권 1편에 나오는 자본의 '변태'(형태 변환, metamorphosis)라는 표현도 자본의 '탈바꿈'으로 고쳤다. '윤작'(輪作)은 '돌려짓기'로, '간작'(間作)은 '사이짓기'라는 우리말로 바뀌었다. 이런 번역 수정은 자본론 5권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물론 그들의 이런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김 교수 스스로도 "알기 쉬운 말로 바꿔 내용을 좀 더 알기 쉽게 하는 것 조차 어려웠다"라고 했다.

"보수뿐 아니라 진보정권이 들어서도 현 체제 아래선 변혁 어려워"

강 박사는 "다른 나라에서 내놓은 <자본론> 출판 작업의 최신 성과를 거의 망라해 놨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책은 지금까지 출간된 어떤 <자본론>보다 충실한 내용을 담았다고 자부한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 어떤 최신 성과를 말하는지.
"이번에 주로 참고한 두 가지 책이 있는데, 하나는 영어판인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Marx-Engels Collected Works) 제35권부터 37권인데요. 원문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을 받는 책입니다. 영어판 중 가장 최신판이죠. 또 하나는 일본어판인데요. 1980년대 첫 출간이후 수차례 책을 내온 신일본출판사의 <자본론(2003년판)>인데, 이 책에는 원문인 독어판 뿐 아니라 불어·스페인어 등 각 나라 판본 번역자와 편집자들이 원문을 이해하고, 수정한 내용들이 다 들어있어요. 이런 최신 정보와 자료를 본문과 역자 주 등에 자세하게 반영해 놓은 거죠."

이 때문에 2015년판 <자본론>의 경우, 전 3권을 한꺼번에 내놓으면서 각 권의 참고문헌과 인명해설 등을 따로 모아 별도의 책으로 묶어냈다. 강 박사는 "이번 작업을 한글판 <자본론>의 최종본이라고 할 수는 없다"라면서도 "일반 독자뿐 아니라 전문 학자들도 전보다 더 쉽게 읽을 수 있고, 연구할 수 있게 했다"라고 말했다.

그 와의 대화는 어느새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김수행 교수와 책 이야기만을 하면서도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에게 <자본론> 3권 가운데 가장 감명읽게 있었던 부분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강 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자본론> 전체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특정 부분을 꼽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에게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느냐'고 물었더니, "1998년부터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다"면서도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세어 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강 박사에게 <자본론>은 어떤 의미인가'라고. 그의 답변은 이렇게 돌아왔다.

"지난 1998년 이후 제 삶을 바꿔놓은 중요한 텍스트죠. 이제는 워낙 익숙한 책이 됐지만…. 일부에서는 19세기의 마르크스 이론을 21세기에 적용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계속 있잖아요.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자본론>이 더욱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기적인 공황(경제 위기)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마르크스가 분석한 자본주의 모순이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점점 더 깊숙이 쌓여왔고, 그 결과 점점 더 큰 공황, 더 심각한 위기로 터져나왔습니다."

고 김수행 교수와 자본론 공동작업 한 강성윤 박사.
 고 김수행 교수와 자본론 공동작업 한 강성윤 박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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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왜, 지금 다시 자본론을 꺼내 읽어야 하는가'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곧장) '왜 내 삶은 이렇게 힘들고, 팍팍한가'라는 답을 찾기 위해서죠. 김 교수님께서 책에서 정확히 지적하신 것처럼,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나 21세기 현재의 자본가나 지배계급은 언제나 자신들의 재산이나 권력을 확대하는 데에만 열중해왔어요. 이들과 반대인 노동자·서민·빈민들은 언제나 착취의 대상일 뿐이죠. 이게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특징이에요. 마르크스는 이런 자본주의 모순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의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죠."

김수행 교수는 이런 불평등한 체제를 '민주적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예를 들면 노동자·서민 등이 나서 공장이나 회사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자기들의 집단 지성에 따라 운영하면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합해 만든 새로운 사회도 가능하다는 것. 이는 김 교수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강 박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르크스 경제학자로서 그는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정권이 바뀌면 좀 나아질까. 그에게 연달아 물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고,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마지막을 향해 있었다.

"사실 지난 진보적인 정권이 있을때도 우리 삶은 전혀 나아지거나 좋아지지 않았죠. 오히려 '우리 편'이라는 생각에, 반노동적인 정책이 큰 저항없이 추진됐어요. 보수정권은 아예 대놓고 지배계층을 위한 각종 정책들을 대놓고 진행하잖아요.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구조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죠. 현실의 부당한 억압에 대해서는 맞서 싸워야죠."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고 김수행 교수, #자본론, #강성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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