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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2월 12일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금마시장을 방문, 한 방앗간을 들러 갓뽑은 가래떡을 맛보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12일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금마시장을 방문, 한 방앗간을 들러 갓뽑은 가래떡을 맛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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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1년도 안 된 햇병아리지만 700만 자영업자 틈에 끼여 생존의 전장에서 오늘도 살아 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 시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펜을 잡겠다던 손으로 어설프게 잡은 칼이 금세 몸에 맞을 리 없다.

하물며 20여 년 직장이라는 온실 속에 살다 어느 날 갑자기 거친 야생의 벌판에 나섰으니 이런 시행착오는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다. 독하게 맘 먹고 출발했지만 정글 같은 야생의 생존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거세고 매섭다.

가게 문을 조금 일찍 닫은 저녁, 늦은 식사를 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다 간판만 보고 무작정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선해 보이는 사장님이 환한 얼굴로 우리를 반겼다. 벽면에 크게 붙어 있는 독특한 이름의 메뉴가 시선을 사로 잡았다.

'해물갈비탕', '매콤해물갈비'

숨은 맛집 '한가정' 이 집에는 해물에 숨은 갈비가 있다?
▲ 전주 ‘한가정’ 매콤해물갈비 숨은 맛집 '한가정' 이 집에는 해물에 숨은 갈비가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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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있는 해물이 무엇일까? 고갈비의 고등어? 아니면 상어? 고래? 일단 '해물갈비탕'을 주문했다. 잠시 후 나타난 이 놈의 정체는 헉! 이것은 진짜 갈비! 그랬다. 각종 해물과 어우러진 갈비탕이다.

'참 신선한 메뉴다. 그리고 정말 끝내주는 맛이다.'

전주 인후동에 숨어 있는 맛집 '한가정' 심한철 사장님은 이렇게 우연히 만났다. 음식은 사장님은 첫인상처럼 맛깔나게 나왔다. 소주 한 병을 시키고 보니 사장님도 마침 식사 중이라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되었다.

국숫집을 한다고 했더니 '전주 인후동 맛집'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며 급관심을 보였다. 말문을 연 사장님은 그동안 겪었던 산전수전 공중전까지의 경험담을 이 집 음식 맛처럼 맛깔나게 풀어 주었다.

"음식 장사는 다 임대료 싸움이지요. 나도 한때는 돈도 좀 벌어봤고 힘들어도 봤는데 지금은 그나마 이 건물이 내 건물이라 임대료 부담이 없으니 그럭저럭 버틸만 한 거지요."

이 바닥 수십 년 선배인 심 사장님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후배의 앞길이 안쓰러웠는지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한가정' 사장님의 말을 듣고 나니 가게 오픈하겠다며 동분서주했던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진짜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돌이켜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퇴직 후 글쟁이 코스프레 하면서 근 1년을 지냈고 그 다음 찾은 길이 바로 국수장사였다. 말로만 듣던 사장님 소리를 직접 들으니 처음엔 괜히 들뜬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자영업자 사장님이라는 타이틀이 그리 부러워할 만한 타이틀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전에는 몰랐다.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문제라고 생각했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만난 '메르스'라는 괴물 같은 역병은 차원이 달랐다.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는 손님은 힘없는 동네 자영업자를 멘붕에 빠뜨렸다.

그때 다시 깨달았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도 정치가 나와 멀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정부는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주고 위험이 닥쳤을 때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가 일어나자 정부는 우리 곁에 없었다. 뽑아 주기만 하면 국민을 위해 목숨 바칠 각오로 일하겠다던 그 흔한 정치인도 우리 곁에 없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도생 해야 했다. 매일 자기 밥그릇 싸움 하는 것이 역겨워 그동안 정치로부터 무관심해지려 했던 나를 돌아봤다. 그때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정치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삶이라는 것을. 정치는 선거에서부터 시작이고 그 선거를 통해 누구를 뽑느냐가 이리 중요한지를.

'식당이나 차리지' 과연 그럴까?

"에이 뭐 갈 데 없으면 식당이나 하나 차리지 뭐."

직장인들이 술자리서 종종 하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국숫집 사장으로 사는 지금 나는 이제 '식당이나 하지 뭐'라는 말의 헛헛함을 뼈아프게 되새기고 있다.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무모하고 어려운 도전이 바로 음식 장사인 것 같다.

실제로 국세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자영업자의 생존율은 불과 16.4%에 불과하다고 한다. 2004~2013년까지 창업한 개인사업자 건수 949만 건 중 현재까지 버티고 있는 업체는 불과 156만건이라는 말이다. 이들 자영업자 중 음식업 종사자가 가장 많으며 폐업율 또한 가장 높다고 한다. 음식점 창업을 다들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은퇴자나 퇴직자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음식점이고 기존의 음식점업 폐업자들이 재창업 시 뛰어 드는 곳은 도로 음식업이다. 실제 2014년 치킨집을 창업한 자영업자는 3920명이고 폐업한 치킨집도 2775명이라 한다. 지금 이 시간도 누군가는 폐업하고 그 자리에 누군가는 또 치킨집을 창업하고 있다는 말이다. 창업 3~4년 뒤 살아 남는 치킨집은 4분의 1도 안 된다고 하니 이 나라 자영업자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행인지 2015년 10월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창업 관련 국민의식 변화와 시사점' 조사자료에 의하면, 창업에 대한 인식은 점점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한다. 그럼에도 아직 수많은 예비창업자가 대기하고 있으며 그 중 만일 창업을 할 경우 여전히 27.3%는 무덤 같은 음식, 숙박업을 하겠다고 하니 뭔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왜 이 무모한 길을 선택 했을까?

수많은 자영업자들: 저 간판 뒤에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숨어 있다.
 수많은 자영업자들: 저 간판 뒤에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숨어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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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허허벌판에 서 보니 퇴직이라는 현실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한겨울 옷이 벗겨진 채 눈보라 치는 벌판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랄까. 현실은 상상보다 더 냉혹하고 살벌했다.

40대 후반 20여 년 경력자를 선뜻 받아 안을 수 없는 것이 이 나라 기업의 현실이다. 답답한 마음에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하여 서푼 어치 잡글을 쓰며 연명하던 시기 우연히 국수장사라는 인연이 내게로 왔다.

국수는 어릴 적부터 늘 곁에 있었던 애정이 가는 음식이다. 출출할 때 후루룩 먹으면 맛있는 어머니 맛과 고향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음식이다. 퇴직 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폭될 즈음 국수라는 음식이 흔들리는 내 마음의 틈을 파고 들었다.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먹어봤을 음식, 지금도 시장 한구석에서 뜨거운 육수에 한 그릇 말아 주면 뚝딱 해치울 그런 음식이기에 쉽게 생각했고, 선뜻 하고자 하는 욕심이 일었다. 장사도 해 본 사람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찌 잘 되겠지' 하는 마음에 동업자만 믿고 무작정 질러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무모했었는지 그 배짱에 내가 놀랄 지경이다. 나 또한 이 땅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밟았던 시행착오의 길을 따라 걸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후회하거나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바로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꾸며 발은 항상 현실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나의 우상 '체게바라'의 신념을 믿기 때문이다.

어찌 버티다 보니 이제 어느덧 임직원이 6명이나 되는 국숫집 사장 8개월차다. 나는 이제는 홀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에 이미 적응되었다. 나는 이제 정부가 좋은 정책을 펴서 자영업자들이 더 좋아질 것을 믿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은 그저 자기 밥그릇 지키기만 관심 있다는 것을 안 지 오래다.

지난 대선 때 내세웠던 자영업자를 위한 공약을 믿지 않은 지는 한참 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곁에는 우리를 위한 정치인은 없다. 보라, 이번 민중총궐기 때 늙은 농부가 턱도 없는 쌀값에(올해 15만 원 선) 지난 대선 공약 시 내걸었던 쌀값 인상(17만 원에서 21만 원으로)에 대해 항의하러 갔다가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는데도 농촌지역 일꾼이라는 정치인 중 어느 하나 나와 맞서 싸워주지 않는 게 지금 현실이다.

비록 앞길이 힘들고 위태위태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길이니 자영업자는 오늘도 국숫집 문을 힘차게 연다. 장사는 잘 안돼도 직원들이 생기니 아직 어설프지만 사장의 마음 자세를 세운 것 같다.

'내가 여기서 놔버리면 저 직원들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인데, 어쩌랴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보자.'

초보 사장은 오늘도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초보 장사꾼이라 장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마음 속에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기준도 하나 새겼다. 조선말의 거상 임상옥의 가르침이다.

거상의 심오한 철학을 다 이해 할 수는 없지만 국수라는 음식을 통해 만나는 세상은 이전의 내가 알던 세상 알기와 전혀 다름은 이제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국수를 통한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을 지키기 위해 정한 우리 국숫집의 수줍은 가치 철학은 바로 이거다.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아... 내가 아직 뭘 몰라 아직도 꿈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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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전병호, #락락국수, #전주국수, #전주맛집, #한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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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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