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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대학교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힌 총학생회장 후보 김보미씨가 학우들의 전폭적인 지지 끝에 당선됐다. 그는 후보 당시 출마 이유를 밝히는 교내 간담회 자리에서 커밍아웃했다. '서울대 구성원들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 그가 밝힌 커밍아웃의 이유였다.

언론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일부 기독교 언론들은 학생회 후보가 '기숙사 입주 시기에 무단 침입하는 기독교 전도인들을 청원경찰과 협력해 제재하겠다'고 공약했다는 주장과 그의 성적 지향을 엮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전도 제재를 공약으로 내건 레즈비언'으로 김씨를 묘사하고 또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김보미씨가 내건 공약은 '전도 제재'가 아닌 '무단 침입인 제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며, 전도인 무단침입 제재와 그가 여성 성소수자라는 사실은 함께 언급돼야 할 그 어떠한 이유도 없지만, 이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동성애자들은 기독교인들의 적'이라는 지극히 일차원적이고 폭력적인 편견이 빚어낸 두서없는 혐오만이 기사의 행간에 흐른다.

'커밍아웃'에 집중된 보도, 의미를 따져보면 아쉽다

서울대 제58대 총학생회 선거 투표 결과 김보미(23·소비자아동 12학번)씨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김씨는 선거운동 기간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해 학내외 화제를 모았다.
 서울대 제58대 총학생회 선거 투표 결과 김보미(23·소비자아동 12학번)씨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김씨는 선거운동 기간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해 학내외 화제를 모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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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기독교 언론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단어 선택이 신중하지 않은 기사들도 상당수 보인다. 수많은 언론들이 '최초의 동성애자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그를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정확하지 않다. 김보미씨 이전의 총학생회장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최초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총학생회장으로 소개돼야 옳으며 이 둘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한 그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스스로 밝혔다는 데만 주목, 그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게 된 '이유'와 그것의 '의의'에 대한 언급이 아예 누락된 기사도 상당수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김씨의 커밍아웃의 이유는 명확하다. 본인이 직접 밝힌 이유 외에도, 출마의 변을 밝히는 자리에서 한 커밍아웃인 만큼 정치적 의도 즉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것이 당선에 이로운 영향이 있을 것이란 계산도 이유의 하나였을 수도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이 전략이 매우 주효했다는 것. 그의 당선은 적어도 '정치적 공정성'의 영역에서만큼은 고학력의 젊은 세대들이 성소수자의 인권, 나아가 다양성의 존중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이들 젊은 세대들이 '단일민족'임을 '자랑거리'로 가르칠 만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 성소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데 공감한다는 사실 또한 함께 유추해낼 수 있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반갑고, 동시에 아쉬웠다. 25년전 세계보건기구 WHO는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님을 공식화했고, 성소수자들의 성적 지향이 마치 피부색과 같은 개인의 지극히 타당한 형질이란 사실은 임상심리학적, 뇌과학적으로 그보다 더 오래전에 밝혀진 상태다. 이성애자가 아니란 사실이,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성소수자들은 고작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며 거리를 걷는' 평화적 시위 한 번을 위해 자신들에게 엄청난 언어적, 심리적,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보수단체들과 대립해야 한다. 정부의 태도 또한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2015년 올해, 대한민국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에 성소수자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대전시 성평등조례에서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내용의 삭제를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김보미씨의 커밍아웃은 적잖은 화제를 낳았지만, 사실 그는 그 자신을 설명하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 하나를 그저 드러낸 것뿐이다. '저는 서울 출신입니다'처럼 취급돼야 할 발언이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정치적 구호'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그만큼 억압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앞서 말한 '반가움과 아쉬움의 교차'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많은 언론들이 김씨의 당선을 '향상된 성소수자 인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주장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나의 추측이다.

그의 앞날을 지지하며

YTN 등 수많은 언론이 김보미씨의 당선을 보도하며 홍석천씨를 언급한 점 역시 눈에 띈다. 아직까지도 우린 '성소수자'하면 '홍석천'을 바로 떠올린다. 이는 15년 전 당시 그의 커밍아웃이 당시 사회에 가져왔던 파장이 적지 않았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게이 등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15년 전의 수준에 고스란히 멈춰있다는 방증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목표해야 할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우린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나는 김보미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또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강하게 지지하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을 설명하기 위해 홍석천씨의 이름을 다시한 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전 문단에서 말했듯 홍석천씨의 커밍아웃 이후 발전없이 머무르는 것이 한국 성소수자 인권의 현재이기 때문이다.

홍씨는 '게이'여서 방송에서 퇴출됐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게이' 캐릭터로 돌아왔다.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일종의 '역할극'에서 그는 '게이'의 '역할'을 맡아 출연했고, 오로지 게이로만 소비됐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다른 형태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의 출연이 결정적이었다. 해당 방송에서 홍씨는 '게이'가 아닌 '셰프'다. 물론 그가 성소수자임은 종종 언급되고 그것이 유쾌한 웃음의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웃음엔 혐오나 타자화가 담겨있지 않다. 그렇다고 성소수자 인권을 애써 주창하지도 않는다. 다른 이성애자 남성 셰프들 사이에서 그는 그냥 셰프다. 미카엘 셰프가 '외국인'인 것처럼, 그가 게이인 것은 셰프 홍석천의 특징 중 고작 하나인 것이다.

홍석천씨가 방송에서 이런 이미지로 소비되기까진 사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어쩌면 우린 성소수자인 사람을 성소수자가 아닌 한 개인으로 보는 연습을, 홍석천씨를 통해, 또 앞으로 '레즈비언 총학생회장'이 아닌 '그냥 총학생회장'으로서 일해나갈 김보미씨를 통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회는 용기있는 한 개인의 '당당한 고백'과 뜻있는 이들의 연대로 진보한다. 곧 총학생회장 임기를 시작할 김보미씨의 앞날을 마음 깊이 응원하는 바이다.


태그:#서울대학교, #김보미, #총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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