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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 말

멜버른에는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공항 입국장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무료하게 기다리다가, 입국 수속을 밟는 줄과 나란히 있는, 예상 외로 큰 면세점에서 1+1양주를 더 샀다. 큰애 친구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마셔야 하니까 한 병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입국장 면세점을 입국심사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긴 줄과 나란히 설치한 것은 제법 괜찮은(?) 장삿속으로 보였다. 줄을 따라 가다가 고개만 돌리면 사고 싶은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그럼 줄에서 잠시 벗어나 물건을 산 후 일행이 줄 서 있는 곳으로 되돌아 오면 되는 것이다. 양주 이외에도 나의 시선을 끌던 여러 가지 물건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에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줄은 천천히 줄어 들었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우리는 공항 밖에서 차를 주차시켜 놓고 기다리던 큰 애와 감격의 포옹을 했다. 그런데 왠지 우리 만남이 3년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큰애는 나중에 그게 카카오톡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다. 이러한 상황을 어떤 사람은 지구가 평평해졌다는 말로 표현했다. 물리적으로는 엄청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우리 가족들은 카카오톡을 이용해서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큰 애가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고 있다. 매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주고 받다 보니 떨어져 있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이다.

큰애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 ▲ 큰애의 아토피 사진 ?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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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의 포옹이 끝나고 난 후 큰애 피부 상태를 보니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고등학교 무렵에 시작된 큰애의 아토피는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을 계속 다니고, 민간에서 좋다고 하는 온갖 처방을 다 사용해보았지만 치료가 되지 않았고, 그 상태로 호주로 간 것이다. 나는 공기가 좋은 호주에서 생활하면 아토피 증세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아토피는 음식, 수면, 스트레스 등에 의하여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혼자서 생활하다 보니 아무래도 패스트 푸드를 많이 먹고, 수면시간도 불규칙적으로 되고, 장래문제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데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인지 큰애는 아토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호주의 의료비는 보통의 유학생에게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아토피 때문에 병원 다니겠다고 했으면 무리해서라도 돈을 보내 줬겠지만, 큰애는 아토피에 그 정도 돈을 소비할 엄두를 못 낸 것이다. 나도 이 정도로 심한 줄 몰랐기 때문에 치료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우리도 얼마 전까지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술비가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된 사람에 관한 뉴스를 심심찮게 들은 기억이 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사소한 치료도,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에서는 어려운 선택이 된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의료보험이 없으면 치료비가 천문학적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이 파산신청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의료비 때문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호주에서도 시민권자가 아니면 의료비는 보통의 유학생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고 한다. 큰 애 이야기에 의하면 자기가 아는 사람이 계단에서 굴러 어깨 골절상을 입어서 응급실에 갔는데, 의사가 당신은 도저히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응급처치만 우선 해줄 테니 한국에 돌아가서 치료를 받고 오라고 했다고 한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거북 등같이 변해버린 피부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큰애가 겪은 고통의 시간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잘했더라면 큰애는 자신의 상태를 내게 알려 주었을 것이고, 그러면 뭔가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호주의 의료비가 아무리 비싸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늘어가는 잔소리 때문에, 또는 현실을 벗어난 이야기 때문에, 나는 고민을 함께 나눌 아버지로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후회와 자책감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이제 상태가 파악되었으니 해결방법을 찾아야지. 그렇게 아픈 마음을 누르면서 큰 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멜버른 아침 공기는 더 없이 상쾌했다

 ? 맑은 공기, 강렬한 햇볕이 인상적이었다
▲ ▲ 멜버른 중앙상업지구 ? 맑은 공기, 강렬한 햇볕이 인상적이었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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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내 마음과 달리 멜버른의 날씨는 청명하였고, 비가 막 그친 후의 아침 공기는 더 없이 상쾌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비가 억수 같이 쏟아졌고, 큰 애는 우리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고 한다. 그 비가 온도를 낮춰 주고 대기 중의 먼지를 씻어줘서, 그렇지 않아도 깨끗한 멜버른의 대기를 더욱 상쾌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지금 내가 사는 곳의 비 온 뒤 풍경이 내가 자랐던 시골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산이나 비옷이 귀하고, 실내에서 하는 놀이가 별로 없던 시절, 비가 그쳐 비로소 집밖으로 놀러 나갔을 때 마주쳤던 상쾌함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그 느낌이 없는 것은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당연한 대가려니 여기다가 몇 차례 외국여행을 하면서 이러한 상실이 모든 국가에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인구가 모여 살면서도 환경을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도쿄도 그 중의 한 곳이었다. 출장으로 갔던 도쿄에 도착한 날 밤에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친 다음 날 아침 전철을 타기 위해 도쿄 시내를 걸어 가면서, 나는 어릴 적 살았던 시골마을의 정취를 느꼈다. 흰색 와이셔츠를 며칠씩 입을 수 있다는 도쿄의 골목길을 걸어 가면서 어린 시절 그 정취를 다시 한번 느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환경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 것 같다. 포스코 제철소가 있는 포항시 외곽에는 포스코 직원들이 거주하는 주택단지가 있다.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고,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제철소에서도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공기도 포항에서 가장 깨끗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여기에 있는 포스코 인재개발원에서 미국인 여교사로부터 영어회화를 배운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에 살다가 한국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는 페이스라는 이름의 여교사 남편은 작가인데, 그리 유명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돈을 벌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서 머나먼 이국 땅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키가 장대 같이 컸던 그 여교사는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포항의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도저히 천식이 있는 아들을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도대체 캘리포니아 대기 환경이 얼마나 좋기에 포항에서 가장 공기가 좋은 포스코 주택단지에서도 살 수 없다는 것인가? 우리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는 자동차의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 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흥분한 우리 가족을 태운 자동차는 내가 처음으로 와보는 도시인 멜버른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태그:#호주유학, #워킹홀리데이, #쉐프, #영주권, #베이비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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