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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진다.'

조선 시대 영남과 충청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문경새재를 넘어 배를 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추풍령을, 세 번째는 죽령을 지나 단양 장회나루에서 남한강 물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선비들 중에는 죽령을 지나면 과거에 낙방한다는 속설 때문에 죽령을 피해 다닌 이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시험을 보러 가는 유생들은 단양 길을 피했다지만, 관직에 오른 선비들은 단양을 찾는 이가 많았다. 남한강과 산이 만드는 절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율곡 이이,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구운몽을 쓴 김만중 같은 많은 문인과 화가가 단양을 칭송하는 시와 그림을 남겼다. <단비뉴스> 취재팀은 지난 13, 14일 이틀간 중국 <인민일보> <신화통신> 등 국내외 언론사 관계자가 참가한 '단양 관광 홍보 팸투어'를 함께 했다.

고구려군과 신라군이 피 흘리며 싸운 곳

남한강 물줄기가 가로지르는 단양은 고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구려, 신라, 백제는 단양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특히 고구려와 신라는 6세기에 단양에서 치열하게 싸웠고, 최후의 승자는 신라였다. 잘 알려진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의 배경도 이곳이다. 이해송 문화해설사는 온달이 신라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는 온달산성 근처를 지나며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설화에 새로운 견해를 소개했다.

"온달은 하급 귀족쯤 되지 않았을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귀족사회인 고구려에서 미천한 신분과 공주가 결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평민인 온달이 장군으로 신분 상승했다는 이야기는 과장해서 전해 내려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단양에서도 요충지였던 적성(赤城)은 말 그대로 ‘붉은 성’이란 뜻인데, 성을 쌓은 돌에 붉은 색깔이 감돈다.
 단양에서도 요충지였던 적성(赤城)은 말 그대로 ‘붉은 성’이란 뜻인데, 성을 쌓은 돌에 붉은 색깔이 감돈다.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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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이 치열하게 다퉜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단양에는 온달산성 말고도 가은암산성, 죽령산성, 공문산성, 석토성 등 삼국시대에 쌓은 산성이 많다. 그중에서도 온달산성과 멀리 마주 보고 있는 적성산성에서는 1978년에 신라 진흥왕 시대 비석이 발굴돼 학계를 흥분시켰다. 적성비라 명명된 이 비에는 적성을 차지하는 데 공을 세운 신라 장군과 고구려인에게 상을 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적성산성이 있는 성재산의 높이는 낮지만 경사가 70도라 오르기 만만치 않다. 성곽 한쪽에는 가파른 절벽 밑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사방을 고루 살필 수 있어 수비하기에 적격이다. 사실 단양은 82.7%가 산악지대라 어디에서 싸우더라도 공격하는 쪽보다 방어하는 쪽이 유리했다. 두 나라가 기를 쓰고 단양 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이유이다.

남한강 물길 따라 보는 단양8경

고구려와 신라가 전투를 벌인 단양은 '단양8경'으로 조선시대 들어 문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였다. 9개월간 군수로 머물렀던 퇴계 이황은 시를 지어 제1경인 도담삼봉 등을 극찬했다. '도담'(嶋潭)은 '섬이 있는 못'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강이 아니라 연못에 기암괴석 셋을 넣어 꾸민 아름다운 정원처럼 보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도담삼봉 세 꼭대기에 때마침 큰 새가 한 마리씩 앉아있어 정취를 더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도담삼봉 세 꼭대기에 때마침 큰 새가 한 마리씩 앉아있어 정취를 더했다.
ⓒ 서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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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경인 사인암은 수직절리로 병풍 모양의 붉은 바위가 빼어난 풍경을 자아낸다. 사인암은 조선 성종 때 단양 군수가 고려시대 정4품 '사인(舍人)' 벼슬에 있던 우탁을 기려 이름 지었다. 조선시대에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등 사인암의 절경을 알아본 인물이 많았는데 우탁은 그 선구자 격이다.

우탁은 고려 말 충선왕이 선왕의 후궁을 숙비로 봉하는 패륜을 저지르자 상복에 도끼를 들고 대궐로 찾아가 상소를 올렸다. 반듯하게 우뚝 솟은 사인암은 죽음을 각오하고 임금에게 간언한 우탁의 충직함을 닮았다.

암벽 아래 계곡의 바위에는 바둑판과 장기판이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도끼자루 썩는다'는 뜻의 '난가'(爛柯)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나무꾼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다가 도끼자루가 썩어버리고 마을에 돌아오니 아는 사람이 다 죽었더라'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사인암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인근 사찰에서 설치한 비닐하우스 진입로가 있어 호젓한 분위기를 해친다.

사인암(위)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비닐하우스 진입로(아래)에는 ‘소원성취의 등을 달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는데, 명승지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인암(위)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비닐하우스 진입로(아래)에는 ‘소원성취의 등을 달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는데, 명승지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서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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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수로는 예로부터 물건과 사람을 운송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뱃길을 따라 목재와 곡식이 한양으로 내려가고 소금을 비롯한 생필품들이 산간지역으로 올라갔다. 큰 나루가 형성된 충주나 청풍에서는 죽령을 넘어 경상도로 물자가 오고갔다. 당시 남한강은 고속도로이자 철도 구실을 했으나 오늘날 단양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낯선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단양8경을 따라가는 여정은 장회나루로 이어졌다. 유람선을 타고 청풍호를 가로질러 3경과 4경인 구담봉과 옥순봉의 자태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광활한 청풍호를 둘러보면 굳이 구담봉과 옥순봉이 아니더라도 주변 산세가 모두 인간이 그린 산수화를 초라하게 만드니 유람선에 오른 승객은 신선놀음을 하는 듯하다.

청풍호 유람선에서 바라본 옥순봉과 옥순대교.
 청풍호 유람선에서 바라본 옥순봉과 옥순대교.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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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연풍 현감으로 재직한 김홍도는 옥순봉도를 그렸다.
 충청도 연풍 현감으로 재직한 김홍도는 옥순봉도를 그렸다.
ⓒ 한국미술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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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에 사활을 거는 단양군

문인들의 유람지였던 단양은 20세기 중반 들어 한국 시멘트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한다. 석회석 지대라 많은 양의 시멘트 원료를 채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한국 굴지의 시멘트 회사 공장들이 들어선 뒤 지난 50여 년간 전국 시멘트의 30%를 이곳에서 생산할 정도였다. 그 덕택에 70~80년대에는 인구가 9만 명에 이르렀지만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과 예전 같지 않은 시멘트 수요에 인구가 3만으로 격감했다. 학교도 계속 사라지고 몇 년 전부터는 인근 제천시와 통합 논의가 나오곤 했다.

팸투어에 참가한 기자 등이 청풍호 유람선을 탄 뒤 장회나루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팸투어에 참가한 기자 등이 청풍호 유람선을 탄 뒤 장회나루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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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이 팸투어를 기획한 이유도 거기 있었다. 팸투어 일정에는 클레이사격장과 민물고기 전시관인 '다누리 아쿠아리움'을 둘러보는 시간도 있었다. 빼어난 풍광과 역사 유산들이 즐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변화하는 관광 행태에 부응할 수 없어 나름대로 자구책들을 마련한 듯했다. 특히 이번 팸투어에는 <인민일보> <신화사> 등 중국 유수 언론사 한국 특파원들이 10명쯤 동행했다. 단양군은 이를 통해 중국인 관광객 증가를 꾀하고 있다.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단양군의 노력에 군민도 호응하고 있다. 전통시장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마늘을 이용한 마늘고추장, 흑마늘빵 등을 판다. 식당도 '마늘정식' '마늘불고기' 같은 음식을 판다.

팸투어 일행이 절경을 감상한 뒤 허기진 배를 채우려 향한 곳도 '육쪽마늘'로 차린 한정식 식당이다. 초고추장으로 양념한 마늘장아찌, 찐 마늘을 곁들인 오리 훈제와 떡갈비, 마늘 세 쪽을 올린 솥밥 등 거의 모든 반찬에 마늘이 올라간다. 맛과 향이 독특한 육쪽마늘 정식은 아삭한 매운맛과 부드러운 고소함을 동시에 제공한다.

팸투어에 참가한 중국 <신화통신> 한국 특파원 장청(29) 기자는 여행이 끝날 무렵 "경치도 좋았지만 마늘 한정식이 인상 깊었다"며 "맛있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단양 특산물인 육쪽마늘 등으로 차린 한정식.
 단양 특산물인 육쪽마늘 등으로 차린 한정식.
ⓒ 서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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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운영하는 비영리 언론매체 <단비뉴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태그:#단양 팸투어, #도담삼봉, #사인암, #`육쪽 마늘, #마늘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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